무기력을 겪어내는 중입니다

by 다미

나는 생각보다 번아웃을 자주 겪는 편이다.
바로 전 회사에서도 3년 동안 일하며 내가 가진 에너지를 나도 모르게 초과해서 써버렸다. 발전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조직, 정치질 속에서 방치된 일들의 뒷수습을 감당하던 시간들. 그렇게 버티다 못해 번아웃이 왔고, 결국 나는 처음으로 사표를 던졌다.


그 후 번아웃과 우울감을 치료하기 위해 정신과 상담을 다니기 시작했다. 상담을 받으며 조금씩 나를 관찰하게 되었고, 새로운 회사에 다시 입사했다.
하지만 입사 후 몇 달 동안 적응은 쉽지 않았다. 전 회사에서 겪은 일들 때문인지 모든 것이 조심스러워졌기 때문이다. 회사 생활에 몰입할수록 상처도 깊어졌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때까지도 이전의 후유증을 앓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업무를 하면서는 내 장점을 잘 살리고 싶었다. 나는 일정 관리에 강한 편이었고, 어떻게든 프로젝트를 완수하려 했다. 무엇보다 소통을 잘한다고 믿었다. 서로 다른 성격의 업무를 정리하고, 각 업무의 특성을 고려해 방향을 조율하고, 이후 변경 가능성까지 미리 고지하며 함께 일하는 것. 나는 그런 방식에 분명한 강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또다시 원치 않는 일이 벌어졌다. 내가 몸담고 있던 부서가 사라졌고,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다른 역할로 밀려났다. 나 역시 갑작스럽게 다른 일을 해야 했다. 한동안은 충격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내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된다고 하지만, 현실은 늘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생활이 나를 붙잡고 있었다.


그러다 스스로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영역이 생겼다.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때 또다시 같은 문제가 반복됐다. 나는 내 에너지를 과소평가했다. 미친 듯이 일했고, 새벽에 집에 가는 날이 잦아졌다. 그렇게 반년 정도를 버틴 뒤 다시 사무실 업무로 복귀했다. 하지만 회사의 운영 방침은 자주 바뀌었다. 그 안에 있는 나는 그 흐름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될 때마다, 나는 조금씩 닳아갔다.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생각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향상심과 창의성이 내 장점이라고 믿어왔는데, 그것을 발휘할 수 없다는 감각이 나를 짓눌렀다. 그렇게 무기력이 찾아왔다. 업무에 대해서는 더 이상 크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돈을 벌고, 주어진 시간을 일하고, 퇴근하는 것. 어느 순간 나는 그렇게 바뀌어 있었다.

무기력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하자 그렇게 좋아하던 작곡도, 글쓰기도 더는 자연스럽게 떠오르지 않았다. 생각은 자꾸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렀고, 잘할 수 있다고 믿었던 창작마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일상 전체가 버거웠다.

2주쯤 전 면담을 했다. 동기부여가 무엇인지, 어떤 업무를 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지만 아무 답도 할 수 없었다. 정말 모르겠다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생각보다 훨씬 많이 자신감을 잃었고, 자존감도 크게 깎여 있었다는 것을.

입사할 때만 해도 나는 분명 내 장점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그 어느 것에도 자신이 없었다. 면담 이후로 생각이 많아졌다. 나는 무엇에 동기부여를 받는 사람인지, 나의 장점은 무엇인지 계속 되묻게 되었다.

돌아보니 나는 납득되지 않는 업무, 이해할 수 없는 지시가 떨어질 때마다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일 때마다 더 빠르게 소진되었다. 반대로 내가 좋아하는 일은 분명했다. 끝이 있는 일, 결과물이 남는 일,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이었다.


같은 프로젝트를 하는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고, 더 좋은 결과물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
나는 사실 그런 일을 하고 싶어서 입사했었다.


지금도 어쩔 수 없는 일들을 해내며 차분히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서 겪어내고 있다. 이 무기력을, 이 무력감을, 낮아진 자존감과 자신감을. 언젠가 이 깊은 늪에서 빠져나오는 날이 올 거라고 믿으면서.

이번 시간을 지나며 분명히 알게 된 것도 있다. 내가 나를 인정하지 않고 계속 채찍질할수록 더 깊이 무너진다는 사실이다. 나는 늘 나를 자책했고, 내 힘듦을 다른 사람의 기준과 비교하며 이 정도로 힘들면 안 된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건 나를 더 힘들게 할 뿐이었다.


내가 힘들다면, 힘든 것이 맞다.

물론 내 부족함도 있겠지만, 모든 것이 다 내 잘못은 아니다. 불합리한 구조에서 오는 소진까지 전부 내 탓으로 돌릴 필요는 없다. 그때의 나는 나에게 그렇게 말해주었어야 했다. 너는 충분히 힘들 수 있다고.

무기력이 찾아온 덕분에 나는 오히려 나를 더 알아가고 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 앞에서 지치는지, 왜 힘들었는지를.

나는 세상의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다고 믿는다. 나쁜 일이 언제나 나쁘게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어쩌면 이번 일도 그런 종류의 시간이 아닐까.
적어도 나는 이 시간을 지나며, 나를 조금 더 정확히 이해하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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