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보면 클로버가 가득한 풀밭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가 멈춰 서서 클로버를 자세히 들여다볼 때는 대개 네잎클로버를 찾을 때다. 세잎클로버가 가득한 그 속에서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일까. 발견하는 순간, 괜히 더 기뻐진다.
요즘은 소품샵에서도 네잎클로버를 박제한 키링을 판다. 네잎클로버의 꽃말은 행운. 모두가 행운을 원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계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세잎클로버의 꽃말을 알게 되었다. 행복이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행운만 바라보다가, 정작 행복을 놓치고 사는 건 아닐까.
나는 늘 특별하고 커다란 행운을 꿈꿨다. 그 꿈은 시간이 지날수록 내 어깨를 짓눌렀다. 현실은 기대와 달랐고, 나는 번번이 로또에 실패한 사람처럼 시들어갔다. 늘 과거 아니면 미래에 머물러 있었다. 현재에는 내가 없었다.
기대가 어긋날 때마다 누워서 우울함을 곱씹었다. 지금을 느끼지 못하니, 지금을 견뎌낼 힘도 없었다. 그럴 때마다 잠으로 도망쳤다. 잠들어 있으면 현실에서 잠시 벗어난 기분이 들었으니까. 늘 이곳이 아닌 다른 어딘가를 꿈꿨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행복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감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하나씩 나를 바꾸기 시작했다. 자기계발 영상을 수없이 보았다. 모두 비슷한 말을 했다. 현재를 살아야 한다고, 지금을 느껴야 한다고.
한때 유행했던 ‘소확행’이라는 말을 시니컬하게 바라보던 때도 있었다. 사소한 행복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사소한 것에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 행복의 총량도 커진다는 것을. 아주 큰 행운이 와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었던 건, 어쩌면 내가 지금을 살지 못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네잎클로버보다 세잎클로버가 더 값지게 느껴진다. 길가에 가득한 세잎클로버만큼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 네잎클로버의 가치도 알아볼 수 있으니까.
행복을 느낄 줄 모르는 상태에서 찾아온 행운은, 행운이 되지 못한다.
지금을 온전히 느끼는 것.
소소한 행복을 하나씩 쌓아가는 것.
그러다 보면 어느새, 네잎클로버를 애써 찾지 않아도 행운은 자연스럽게 곁에 와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