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화가 많았던 나는, 사춘기를 지나며 화로 인한 사건들을 겪고 나서부터 화를 내는 내 모습을 싫어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화를 건강하게 소화하는 방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인간관계가 내 기대와 다르다는 것을 자주 느끼게 되었고, 사람에게 기대하는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게 되었다. 기대 대신 ‘맞춤’을 선택했다. 한없이 맞춰주다가 지치면 그만두는 일을 반복했다.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나를 편해했고, 그래서 종종 아낌없는 조언을 건네기도 했다. 그중에는 선을 넘는 말들도 있었지만, 나는 대부분 묵묵히 받아들였다. 그러다 감당하지 못하면, 결국 관계를 놓아버렸다.
덜 가까운 관계일수록 기대하지 않는 것이 쉬웠다. 그래서 서운할 일도 많지 않았다. 애초에 바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까운 사람에게는 달랐다.
왜인지 모르게 기대가 생겼다.
내가 보기 좋은 방향,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함께 가고 싶어졌다.
사람은 저마다 자라며 자신만의 기준을 만든다. 나도 그렇고, 우리 가족도 그렇다. 가족이라고 해서 똑같은 모양으로 빚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어쩌면 ‘가까운 남’으로 바라봐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오히려 가까운 만큼, 그들을 나처럼 여기게 된다. 그래서 내가 배운 좋은 것들을 권하고 싶어진다.
‘그렇게 하면 안 돼, 그것보다는 이게 더 좋아.’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을 하게 된다.
최근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만큼 가까운 짝꿍이 생겼다. 그러면서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서운함을 자주 발견하게 되었다.
그에게도 그의 사정이 있고, 어쩔 수 없는 지점들이 있을 텐데도
나는 더 많은 것을 바라게 된다.
더 함께하고 싶고, 더 나를 이해해주길 바란다.
그가 변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생각해보니 나는 타인은 그대로 두는 편이지만, 가까운 사람에게는 잔소리를 하는 편이었다. 가까워질수록 기대가 생기고, 그 기대가 욕심이 된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자존심을 잘 부리지 않는 편인데, 가까운 사람에게는 가끔 그러게 된다.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도 쉽지 않다.
아직은 성숙하게 선을 지키는 일이 어려운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주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더 의연하게, 더 성숙하게 타인을 대할 수 있을까.
자존심을 부리고 난 뒤에는 늘 돌아보게 된다.
나와 다른 그 사람의 모양을.
그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그저 그런 모양의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모두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걸까.
지금까지는 그저 맞추며 지내왔기 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조율’이라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다.
그래서 더 어렵고, 더 어색하다.
아마 다들 그럴 것이다.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를 인정하고, 타인을 인정하는 일.
그리고 그 사이에서
보완할 것과 양보할 것, 이해해야 할 것들을 찾아가는 일.
그걸 천천히 배워갈 수 있으면 좋겠다.
어떤 파도가 와도 포기하기보다
풀어나가는 방법을 먼저 떠올릴 수 있기를.
짝꿍을 떠올리며,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