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나도 결국 나의 일부라서

by 다미

나는 한때 완벽주의가 심한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완벽주의인 줄도 몰랐다. 그저 되고 싶은 모습이 있었고, 그 모습에 가까워져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야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게는 유독 미워하는 내 모습들이 많았다.

내 안에서 그런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애써 덮어두었다. 그러면 고쳐진 거라고 믿으면서. 미디어 속 사람들의 좋은 모습을 볼 때면 저렇게 살아야 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한다고, 자주 스스로를 비교했다. 사실 그것은 그들의 삶 전체가 아니라 잘 편집된 장면일 뿐인데도 그랬다. 내 눈에 보이는 건 예쁘게 오려 붙인 일상뿐이었으니까.


머리로는 늘 알고 있었다.
완벽한 사람은 없고, 누구나 부족한 면을 지니고 있으며, 그래서 인간적인 것이라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사실은 마음까지는 잘 내려오지 않았다. 인간적인 건 인간적인 거고, 나의 수치심은 또 별개로 움직였다.


최근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알게 되었다.
나는 생각보다 내 특정한 모습들을 아주 많이 싫어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동안 나는 그것들을 받아들인 게 아니라, 그저 보이지 않게 감춰두는 데 익숙했을 뿐이었다. 고쳐진 것이 아니라 외면해온 것이었다.


나는 나를 자주 미워했다.
꾸며진 일상 속 누군가와 나를 비교했고, 드라마 속 인물처럼 힘들어도 꿋꿋이 버텨내고, 결국 사랑까지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무의식 깊은 곳에서부터 그걸 당연하게 여겼다. 그래서 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쉽게 자책했고, 자주 수치심을 느꼈다.

늘 눈치를 보고, 내가 타인의 마음에 들었을지 과하게 걱정했던 것도 같은 이유였던 것 같다.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니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그러니 타인의 부족한 모습을 받아들이는 일도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겉으로는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기면서도, 속으로는 전혀 괜찮지 않은 날이 많았다.

나는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일도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 감정은 언제나 내가 감추고 싶어 하는 내 모습을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눌러둔 감정들은 조금씩 쌓이다가, 어느 순간 둑이 터지듯 넘쳐흘렀다. 그러면 나는 칼같이 관계를 끊어냈다. 그런 식으로 버텨왔다. 내 미운 모습이 건드려지는 게 싫었다. 덮어두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에게조차 관대하지 못해서, 내 감정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했다. 그래서 갈등은 늘 버거웠고, 불편한 감정은 좀처럼 쉽게 지나가지 않았다. 감정은 자주 극단으로 치달았고, 그걸 가라앉히는 일도 늘 어려웠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세상에는 이렇게나 다양한 사람이 살고,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의 폭도 이렇게 넓은데, 나는 왜 자꾸 좋은 감정만 느껴야 한다고 믿었을까. 정말 나쁜 감정이 필요 없는 것이었다면, 우리는 애초에 그것을 느끼지 않도록 진화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건, 분명 그 감정들에도 어떤 역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싫은 감정도, 미운 모습도, 내 안에서 완전히 떼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그것들을 없애야만 괜찮아지는 것이 아니라, 들여다보고 소화해야 조금씩 편안해진다는 걸.


아직은 미운 나까지 자연스럽게 끌어안는 사람이 된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예전처럼 모른 척하며 덮어두기만 하지는 않으려 한다. 미운 나도 결국 나의 일부라면, 언젠가는 그 사실을 조금 더 덜 아프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조금은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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