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게 크는 브랜드들

한국 패션 산업의 다음 10년, 브랜드는 제대로 성장하고 있는가?

by 정진

지난 4월 11일, 저는 한국패션협회가 주최한 2025 글로벌 패션 포럼 패널토론에 참여했다. '한국 패션의 글로벌 성장 전략'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 자리에서, 패션 브랜드의 글로벌 진출을 위한 다양한 시각과 전략이 논의됐고, 나는 투자자 관점에서 '좋은 브랜드'란 무엇이며, 이 브랜드들이 구조적으로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지를 중심으로 의견을 나눴다.


패널토론 내용을 되짚으며, 정리 차원에서 이날 나눴던 생각들을 글로 기록해본다.




한국의 패션 브랜드들은 지금 잘 성장하고 있을까? 많은 브랜드가 소셜미디어에서 반짝 주목을 받고, 다양한 콜라보레이션이나 팝업스토어로 팬덤을 형성하며 성장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이 브랜드들이 지속 가능한 구조 속에서 성장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저 이슈의 파도 위에 잠깐 올라탔다가 사라지는 건 아닌지 자문하게 된다.


한국 브랜드들이 흔히 겪는 문제는 바로 '다음 단계'같다. 초기 주목 이후에도 브랜드가 장기적으로 성장하고, 해외 시장으로 확장하며, 기업으로서 내실 있는 구조를 구축하는 데에는 뚜렷한 길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브랜드는 자라고 있다기보다는, 외롭게 크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좋은 브랜드는 무엇인가? 수익 구조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패션은 감성의 산업이지만, 브랜드가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수익 구조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좋은 브랜드라는 정의를 나는 재무적 관점에서 정리해보고 싶었다. 투자자의 시각에서, 좋은 브랜드는 단순히 멋진 디자인을 가진 브랜드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수익 구조를 설계할 수 있는 브랜드다.


브랜드의 수익 구조는 단순한 매출이 아니라, "가격(P) × 수량(Q) - 비용(Cost)"이라는 공식으로 분석된다. 이 공식 속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보는 요소는 세 가지다.


첫째, 가격의 하방경직성이다. 브랜드가 자신만의 세계관과 스토리를 구축해 소비자에게 '이 브랜드는 이 가격을 지불할 만하다'는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브랜드가 단순히 제품이 아니라, 하나의 경험이자 문화로 소비자에게 인식될 때 가격 방어력이 생긴다. 둘째는 확장성이다. 가격과 수량의 조합, 즉 매출은 브랜드가 얼마나 다양한 제품군, 유통 채널, 시장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즉, 브랜드 철학이 뚜렷할수록 오히려 확장의 방향성이 선명해진다. 하나의 미학으로 여러 시장과 제품을 아우를 수 있다면, 브랜드는 단단한 기반 위에서 성장할 수 있다. 나는 이 확정성을 성장성으로 해석한다.


셋째는 비용의 최소화가 아닌, 최적화다. 이는 창업자나 운영팀이 밸류체인. 즉 생산, 유통, 마케팅, 재무 구조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와 직결된다. 창의성과 예술성만으로는 운영의 효율성을 담보할 수 없다. 비즈니스 마인드를 가진 팀, 혹은 그것을 서포트하는 파트너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 세 가지가 균형을 이룰 때, 브랜드는 매출의 예측 가능성을 갖춘다. 매출의 예측 가능성은 투자자 입장에서 리스크를 줄여주고, 요구 수익률을 낮춰준다. 동시에 브랜드의 성장성 즉, 확장 가능성은 미래 밸류에이션에 대한 기대를 높인다. 낮은 리스크와 높은 성장성의 조합은 결국 기업가치(EV, Enterprise Value)를 극대화한다.

IMG_6893.JPG 패션협회 글로벌 패션 포럼 2025

단위 브랜드를 넘어선 산업구조로 진화해야 할 타이밍

브랜드는 더 이상 단순한 제품이나 감성의 총합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시스템이자, 세계관이며, 전략의 산물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이 브랜드들이 독립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구조를 설계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그 구조란 무엇일까? 가격을 지킬 수 있는 스토리, 확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전략, 비용을 최적화할 수 있는 운영 인프라다. 이 세 가지가 유기적으로 맞물릴 때, 브랜드는 자생력을 갖춘다. 그리고 그 자생력이 확보됐을 때, 투자자는 EXIT을 할 수 있고, 대기업은 유통 파트너가 될 수 있으며, 브랜드는 문화가 된다.


다음 글에서는 이러한 구조가 어떻게 현실에서 작동했는지를, 뉴욕 퀸즈 기반의 브랜드 Aimé Leon Dore(ALD)의 사례를 통해 고민해보고자 한다. 아직 완전 성공했다 볼 수 없지만, ALD는 창의성과 전략, 자본과 운영이 어떻게 한 브랜드의 성장 동력으로 결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뛰어난 레퍼런스다. 중요한 건, 브랜드가 자라는 생태계를 설계할 주체가 우리 안에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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