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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YEU Weekly

투자의 경계가 바뀌고 있다

Lightspeed의 RIA 전환이 말해주는 것

by 정진

미국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벤처캐피탈(VC) 중 하나인 Lightspeed Venture Partners가 최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등록 투자자문사(RIA, Registered Investment Adviser)로 전환했다. 이는 단순한 자격 변경이 아니라, 벤처캐피탈 업계의 구조적 전환을 상징하는 움직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Sequoia Capital, Andreessen Horowitz, General Catalyst 등이 이미 밟아온 이 경로는, 이제 Lightspeed도 그 흐름에 올라탔음을 뜻한다.




RIA 전환은 투자자가 SEC의 감독하에 고객의 이익을 최우선하는 수탁자(Fiduciary)로서의 책무를 지고, 투자 전략, 수수료 구조, 이해상충 가능성 등을 명확히 공개하며 투명성을 확보하는 제도적 전환이다. 동시에 이 전환은 기존 VC의 제한적 운용 범위를 벗어나 상장주식, 암호화폐, 세컨더리 거래 등 다양한 자산군에 전략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연성을 제공한다.


Lightspeed는 310억 달러에 달하는 운용자산을 기반으로, AI 유망 스타트업 Anthropic에 35억 달러를 투자하며 공격적인 포트폴리오 확대에 나섰고, 세컨더리 거래 강화를 위해 골드만삭스 출신 인재를 영입하는 등 RIA 전환 이후 투자 방식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이와 같은 변화는 단순히 제도적 여건을 넘어서, VC가 직접 기업의 변화와 가치 창출에 개입하는 파트너로서 역할을 강화하는 흐름이라 생각한다.


이는 전통적인 VC 모델이 빠르게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초기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고 성장 과실을 나누는 구조가 일반적이었다면, 이제는 오퍼레이션 역량, 산업 이해, 기술 적용 능력까지 포함한 밸류업 파트너십으로 역할이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전환은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스타트업 생태계가 직면한 복잡성과 지속 가능성 문제에 대한 필연적 응답이 아닐까.


특히 나는 최근 글로벌 PE 업계에서 주목받는 AI 기반 Value-up 전략의 구조적 가능성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유사한 사업군을 통합 인수한 후, AI를 활용해 운영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새로운 성장 곡선을 창출하는 전략이다. PE의 전통적 M&A 모델에 AI라는 전략적 촉매제를 접목시킨 이 방식은, 복잡성이 부쩍 높아진 시장 환경에서 지속가능한 성장을 실현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다.


이 전략의 대표적 사례 중 하나가 바로 Thrive Capital의 'Thrive Holdings' 설립이다. Thrive Holdings는 인스타그램, Stripe, OpenAI 등에 투자해온 Thrive Capital이 만든 영구 자본(permanent capital) 기반 투자 지주회사로, 단기 회수보다는 장기 소유와 운영을 목표로 한다. 회계, IT, 주택관리 등 전통 산업군을 AI와 내재화된 기술 역량으로 혁신하려는 전략을 택하고 있으며, Crete(회계법인), Long Lake(주택관리) 등 전통 산업 기업에 대한 인수를 통해 기술 중심의 운영 효율화를 실험하고 있다. 첫 펀드로 약 10억 달러를 조성 중이며, 내부 엔지니어링 역량과 AI 네트워크를 결합해 운영 효율성을 직접 구현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는 VC와 PE의 경계를 넘는 신(新)지주회사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General Catalyst, Thrive Capital 등이 AI 전략 중심의 투자와 창업을 동시에 실행하는 새로운 형태의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는 단순히 기술 투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축으로 한 산업 구조의 재편을 선도하려는 투자자의 새로운 역할 정의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글로벌 트렌드는 한국형 PE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는 지금 한국의 중소·중견기업들이 마주한 현실, 즉 조직 내 전략 부재, 미성숙한 브랜딩 전략, 시스템화되지 않은 경영 인프라 등을 마주할 때, 기존의 재무적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고 느낀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형 PE는 이제 단순한 자본 제공자에서 파트너쉽 행동주의 파트너로 역할 확장을 모색해야 할 때다. 특히, 지분율과 무관하게 기업 내부의 전략 기획, 실행 지원, 데이터 분석, 브랜드 고도화 등에 참여하며 실질적인 변화의 동반자가 되는 모델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핵심은 기업과의 신뢰 구축이며, 이는 공개적 압박보다는 조율과 설계, 실행 중심의 접근이어야 한다.

Oscar Health의 공동창업자 Joshua Kushner와 Kevin Nazemi. Joshua는 Thrive Capital의 창업자이기도 하다 (출처: NYT)

투자의 본질은 자본을 넘어서 변화를 설계하고, 성장을 함께 디자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흐름을 단지 글로벌 VC의 변신이나 PE의 전략 확장으로만 보지 않는다. 이는 투자자가 기업 외부에서 관찰자 역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경영진과 함께 전략을 설계하고 실행을 지원하는 실질적 동반자로 자리매김하려는 흐름이라 본다 Lightspeed의 RIA 전환은 이런 맥락으로 봤을 때 의미가 더 와닿는다. 우리는 이 흐름을 목격하는 데 그쳐선 안 된다. 이제 한국의 투자자들도 이러한 방향성에 동참해야 한다. 기업의 내재가치를 함께 설계하는 파트너십 모델, 그것이 한국형 PE의 다음단계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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