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패러다임, 조직 설계, 그리고 바이아웃 전략의 미래
감사한 지인의 배려로 지난 목요일, 2025 글로벌 대체투자 컨퍼런스 GAIC(Global Alternative Investment Conference)에 다녀왔다. 이번 컨퍼런스는 기술의 진보, 자본의 전략, 조직 설계가 어떻게 얽혀 새로운 투자 패러다임을 만들어가는지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 자리였다. 특히 ‘트럼프 2.0 시대의 대체투자 기회’와 ‘AI와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한 그로스 및 바이아웃 전략’이라는 두 세션은, 인공지능(AI) 시대인 지금 우리가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고, 어떤 방식으로 대응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Every technology paradigm shift is born with a bubble, But AI..”
첫 번째 세션은 오크퍼시픽인베스트먼트(OCPI)의 제임스 지앤 리우(James Jian Liu) 대표가 진행했다. 그는 미국과 중국의 기술 혁신 방식을 비교하며, 투자자들에게 명확한 선택지를 제시했다. 미국은 TCP/IP, 스마트폰, SaaS, 대형 언어모델(LLM)에 이르기까지, 기술 패러다임이 시작되는 파괴적 혁신의 진원지다. 반면 중국은 기술 자체를 발명하기보다는 이를 압도적인 속도로 채택하고, 현지화하며, 대중화에 성공하는 장인적(Craftmanship) 스케일업의 강자다.
특히 중국 내에서의 AI 확산 속도는 놀라울 정도였다. 제조업, 법률, 통신 등 전통 산업 전반에서 AI가 빠르게 도입되고 있으며, 조직 구조 자체를 재편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DeepSeek, Moonshot 등 신생 AI 기업들은 월간 사용자 수(MAU), 하루 처리 토큰 수(token/day) 등에서 이미 글로벌 빅테크와 대등한 수준을 보이며, 사용자 리텐션과 연산 효율성에서도 강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AI가 단순히 기술이 아닌 조직 구조와 생산성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 리우 대표는 “Don’t bet against China”라는 말로 발표를 마무리했다. 중국은 더 이상 미국 기술의 대체재가 아닌, 독자적인 기술·조직·시장 역량을 갖춘 경쟁재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어진 질문은 이 시대 가장 큰 담론 중 하나였다. "AI는 또 하나의 버블인가?" 이에 대해 리우 대표는 모든 기술 패러다임의 전환은 항상 거품과 함께 시작되지만, 지금의 AI는 그와 동시에 실제 매출을 수반하고 있는 산업이라는 점에서 과거와 다르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24년 기준, 주요 AI 상장사들의 연간 매출은 1,300억 달러를 넘어섰으며, OpenAI, Databricks, Anthropic 같은 비상장사들도 수십억 달러 규모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과거와는 달리, 이번 기술 혁신은 출시 직후부터 곧바로 캐시플로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구조적 전환의 진입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Anthropic CEO가 언급한 “12개월 안에 대부분의 코딩은 AI가 담당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은, AI가 단순한 보조(co-pilot)를 넘어 주도자(agent)로서 소프트웨어 개발을 대체하는 시대의 도래를 시사한다.
“Build, Don’t Strip”
세 번째 세션에서는 루미네이트 캐피탈(Luminate Capital Partners)의 창립자인 홀리 무어 헤인스(Hollie Moore Haynes)가 무대에 올랐다. 그녀는 전통적인 바이아웃 전략에 대한 근본적인 전환을 제안하며, "Build, Don’t Strip"이라는 명확한 메시지를 던졌다.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 이제는 더 이상 쥐어짜지 말고, 제대로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EBITDA 중심 비용 절감, 레버리지 확대, KPI 최적화와 같은 재무기술 중심의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그녀는 주장한다. 대신 제품을 중심에 둔 유기적 성장 전략, 즉 고객이 반복해서 찾게 되는 제품을 기반으로 한 성장 구조가 핵심이라는 철학을 제시했다. 마케팅 비용을 줄이거나 매출만 키우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고객이 스스로 다시 찾게 될 만큼 유용한 제품을 만들고, 그 제품이 실제로 사용자들이 겪는 문제를 명확히 해결해주고 있는지가 핵심이다.
헤인스 대표는 SaaS(Software as a Service) 시대에서 RaaS(Results as a Service) 시대로의 전환을 강조했다. 이제는 단순히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결과를 제공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다. 결과가 상품이 되는 이 구조 속에서, 투자자 역시 이제는 KPI나 재무지표만으로 기업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제품이 실질적으로 고객의 문제를 얼마나 잘 해결하고 있는지, 사용자가 얼마나 자주 그리고 꾸준히 사용하는지, 그리고 특정 기능이 사람들에게 어떤 가치를 주고 있는지, 이 모든 것을 더 섬세하게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 기능을 다른 이에게 추천하고 싶은지 여부는, 제품의 진정한 힘을 판단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이러한 논의는 단순히 기술 트렌드를 논하는 것을 넘어, 투자자로서의 관점을 신선한 시각으로 전환하게 만들었다. 기술이 어떻게 바뀌었느냐보다, 그 기술이 어떻게 고객의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고 해결하는지가 중요하다. 헤인스 대표의 표현을 빌리자면, AI는 전략을 보완하는 도구가 아니라 전략 자체를 리셋하게 만드는 트리거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고객을 가장 잘 이해하는 제품이 있어야 한다.
오늘날 사모펀드의 진정한 경쟁력은 재무적 기법이나 레버리지 기술을 넘어, 변화하는 시장 환경 속에서 문제를 정확히 정의하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팀과 제품, 그리고 그 실행력을 보는 안목에 달려 있다. AI 시대의 투자자는 단순한 기술 소비자가 아니라, 기술이 만들어내는 변화의 흐름을 함께 설계하고 동반할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 우리는 이제 Build할 수 있는 기업에 투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도태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