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논의에서 드러난 다양한 시각과 변화의 흐름
최근 미국 의회에서는 GENIUS Act, 즉 스테이블코인 합법화 법안이 심의 중이다. 법안의 명칭부터 전략적이며, 그 내용 또한 향후 글로벌 디지털 금융 질서에 상당한 파급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다. 미국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개발을 보수적으로 접근해 온 반면, 민간 부문에서 스테이블코인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이를 어떻게 제도권으로 끌어들일 것인가가 중요한 정책 논쟁으로 떠올랐다.
이 흐름 속에서 세계적인 경제학자 폴 크루먼은 지난 5월 블로그글을 통해 스테이블코인 산업에 대해 매우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그의 주장은 단호했다. 스테이블코인은 금융적 효용이 거의 없으며, 범죄적 목적으로 사용될 소지가 크고, 나아가 미국 국채 시장과 금융 시스템 전반에 불안정성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크루먼은 스테이블코인이 사실상 과거 미국 남북전쟁 전(Antebellum) 시대의 사설 은행지폐처럼 불투명한 민간화폐이며, 그 합법화를 추진하는 배경에는 크립토 로비와 정치적 타협이 깔려 있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반면, 크립토 및 Web3 투자 분야에서 깊이 활동하고 있는 CoinFund의 대표 크리스토퍼 퍼킨스는 정반대의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퍼킨스는 스테이블코인이 단순한 사설 디지털 달러가 아니라 미국 달러의 API화(Programmable Dollar)라는 점에 주목한다. 즉, 기존 금융시스템이 제공하지 못했던 글로벌, 24/7 결제 인프라와 스마트 계약 기반 자동화 금융 서비스의 핵심 인프라로 스테이블코인이 발전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이 디지털 경제 패권을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기술적 기반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스테이블코인이 투명한 규제 하에서 미국 경제 전략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본다.
사모펀드(PE) 관점에서 보면 이 논쟁은 단순한 규제 논의 그 이상이다. 스테이블코인의 제도화 여부는 향후 글로벌 금융 패권 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며, 동시에 새로운 금융 인프라 Value Chain이 형성되는 중요한 모멘텀을 제공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향후 수 년간 PE 투자자들이 새로운 투자 기회를 선제적으로 탐색해야 할 영역과 깊이 연결된다.
본 글에서는 폴 크루먼과 크리스토퍼 퍼킨스, 두 명의 대표적 논객의 논리를 차례로 살펴본 뒤, 우리가 주목해야 할 투자 지점과 시사점을 정리하고자 한다.
폴 크루먼은 스테이블코인 산업에 대해 단호하고 근본적인 회의론을 제기했다. 그의 논지의 출발점은 명확하다. 스테이블코인은 기술적 혁신이라기보다는 본질적으로 범죄적 익명성을 활용하기 위한 도구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는 크립토 산업 전반을 두고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경제 활동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사례가 거의 없다”고 지적한다. 스테이블코인 또한 예외가 아니며, 소비자들이 Venmo나 Zelle 같은 기존 결제 수단보다 우월한 실질적 효용을 경험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크루먼이 특히 경계하는 지점은 스테이블코인이 갖는 구조적 리스크다. 그는 이를 19세기 남북전쟁 이전(Antebellum) 미국의 'Wildcat Bank'에 비유한다. 당시 규제받지 않는 사설 은행들이 자체 지폐를 발행하며 금융 시스템에 심각한 불안정을 초래했던 것처럼, 오늘날의 스테이블코인도 규제의 공백 속에서 시스템 리스크의 씨앗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주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은 발행한 토큰 가치를 보장하기 위해 상당한 규모의 미국 국채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크루먼은 바로 이 점이 역설적인 위험을 만든다고 본다. 그의 우려는 다음과 같다. 만약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 대규모의 신뢰 붕괴(Bank Run)가 발생한다면, 발행사들은 보유한 미국 국채를 대규모로 시장에 매도해야 한다. 이는 단기적으로 국채 금리의 급격한 상승과 유동성 경색을 초래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금융 시스템 전반에 전염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특히 현재 국채 시장은 이미 전 세계적 자금흐름과 긴밀히 연결돼 있어, 이런 이벤트는 글로벌 금융 안정성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 크루먼의 분석이다.
이러한 경제적 논거와 함께 크루먼은 스테이블코인 산업을 둘러싼 정치적 환경에도 비판의 날을 세운다. 그는 현재 진행 중인 GENIUS Act 입법 추진의 배경에 대해 극히 냉소적인 시각을 보인다. 이 법안은 크립토 로비의 막대한 정치자금과 영향력 덕분에 급물살을 타고 있으며, 미국 정치가 디지털 마피아에 의해 사실상 포획(captured)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GENIUS Act는 스테이블코인의 법적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오히려 범죄적 활용 가능성과 금융 리스크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폴 크루먼은 스테이블코인의 제도화를 강하게 반대한다. 그는 금융시스템과 사회에 실질적 혜택을 제공하지 못하는 기술에 불필요한 합법성을 부여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미국 경제의 건전성과 공공 이익에 역행하는 조치라고 평가한다. 따라서 GENIUS Act는 반드시 저지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명확한 입장이다.
폴 크루먼과는 다른 관점에서 스테이블코인을 바라보는 인물이 있다. 바로 CoinFund의 대표 크리스토퍼 퍼킨스다. 크리스 퍼킨스는 글로벌 크립토 및 Web3 투자 시장에서 활발히 활동해온 투자자로, 스테이블코인이 단순한 사설 디지털 화폐가 아니라 미래 디지털 달러 인프라의 핵심으로 작동할 것이라고 본다. 그의 시각에서 볼 때, 스테이블코인은 금융 혁신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구성요소이며, 미국의 경제적, 지정학적 전략과도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퍼킨스가 가장 강조하는 개념은 스테이블코인의 'USD API화'라는 비전이다. 기존 금융시스템 내에서 달러는 본질적으로 물리적 또는 계좌 기반의 자산으로 존재해 왔다. 그러나 스테이블코인은 달러를 온체인 상에서 프로그래머블하게 만드는 첫 번째 실질적 구현체다. 이는 기존의 송금 시스템이나 결제 네트워크가 제공하지 못하는 속도, 자동화, 글로벌 가용성이라는 새로운 기능적 가치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그는 스테이블코인이 특히 세 가지 측면에서 기존 금융 시스템과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한다고 본다. 첫째, 24시간 365일 실시간 결제 인프라로서 기존의 은행 중심 시스템이 가진 시간적 제약을 해소한다. 둘째, 스마트 컨트랙트와 결합하여 자동화된 금융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으며, 이는 디파이(DeFi) 뿐 아니라 기존 기업 금융(B2B 결제 등)에서도 적용 가능성이 크다. 셋째, 국경을 초월한 결제 수단으로서 현재의 고비용, 저효율적인 크로스보더 송금 시장을 혁신할 수 있다.
물론 퍼킨스도 스테이블코인이 AML(자금세탁방지)과 KYC(고객확인제도) 측면에서 명확한 규제 프레임워크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는 스테이블코인의 성공적 제도화는 결국 '활동(Activity) 기반 규제'를 통해 가능하다고 본다. 즉, 스테이블코인이라는 기술 자체를 억제하거나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활용한 행위(예: 자금세탁, 사기 등)에 대해 규제와 통제를 가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것이다.
퍼킨스는 또한 스테이블코인을 미국의 경제적 국익 차원에서 전략적 자산으로 본다. 현재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디지털 화폐 경쟁에서 선도적 위치를 확보하려 하고 있다. 유럽도 디지털 유로 프로젝트를 본격화하고 있다. 이에 비해 미국이 민간 주도의 스테이블코인 생태계를 적절히 지원하고 제도화하지 않는다면,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달러 패권이 점진적으로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퍼킨스는 GENIUS Act를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 그는 이 법안이 스테이블코인을 명확한 규제 틀 아래 제도화함으로써 미국 내에서 안전하고 투명한 스테이블코인 시장을 육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미국 달러의 디지털 경쟁력을 글로벌 수준에서 유지·확장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한다.
궁극적으로 퍼킨스는 스테이블코인이 투명성과 규제 준수를 전제로 할 때 미국 경제와 금융 시스템에 오히려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크루먼의 근본적 회의론과는 다른, 기술 진보와 경제 전략이 결합된 낙관적 시각이라 할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논쟁은 기술적, 정책적 쟁점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사모펀드(PE) 투자자의 시각에서 볼 때, 이 논쟁은 글로벌 금융 Value Chain의 재편과 미래 투자 기회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신호로 읽힌다.
먼저, 크리스 퍼킨스가 강조한 'USD API'라는 개념은 매우 유의미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지금까지 달러는 물리적 혹은 은행 시스템 기반으로만 유통되어 왔다. 그러나 스테이블코인이 이를 블록체인 기반으로 전환하면서 '프로그래머블한 디지털 달러'라는 새로운 금융 자산 유형을 창출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결제 혁신을 넘어 금융 서비스의 구성 원리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다양한 투자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우선,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핵심 인프라 영역에서 새로운 Value Chain이 빠르게 형성되고 있다. Treasury Management Infrastructure, 즉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보유하는 국채 및 고유동성 자산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리스크를 관리하는 전문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이 영역은 기존 자산운용사 및 기술 기반 Treasury 서비스 기업들이 새롭게 진입할 수 있는 시장으로 성장 중이다.
또한, Cross-border Payment Infrastructure 분야에서도 PE 투자자들이 주목할 만한 기회가 열리고 있다. 기존의 국제 송금은 높은 비용과 느린 속도로 인해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비효율적이었다. 그러나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Cross-border 송금 서비스는 실시간 처리와 비용 절감 측면에서 명확한 경쟁우위를 제공한다.
RegTech 분야 역시 주목할 만하다. 퍼킨스가 강조했듯, 스테이블코인의 지속 가능한 성장은 투명하고 강력한 규제 준수를 전제로 한다. 이에 따라 On-chain Monitoring, AML/KYC 솔루션 등 RegTech 분야에서 새로운 서비스와 기술이 등장하고 있으며, 이 시장은 향후 투자자들이 전략적 지분 확보나 플랫폼 롤업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유망 영역으로 부상할 것이다.
한편, DeFi Infrastructure 및 Fiat On/Off Ramp 서비스도 투자섹터가 될 수 있다. 디지털 달러가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원활히 활용되기 위해서는 실물 경제와 디지털 경제를 연결하는 온·오프램프가 필수적이다. 이 과정에서 결제 인프라, 환전 서비스, API 기반 B2B 결제 플랫폼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빠른 기술기업들이 기회를 선점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결국 기존 금융 생태계와 디지털 금융 생태계가 점진적으로 융합되는 방향으로 수렴하고 있다. 투자자라면 이 변화의 속도와 방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어느 Value Chain 단계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실질적인 투자 기회가 열리는지를 선제적으로 판단해야 할 시점이다.
폴 크루먼의 우려처럼 스테이블코인이 무조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금융 안정성, 사회적 영향, 정책적 정합성 측면에서 충분한 논의와 신중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퍼킨스가 지적하듯, 기술적 진보를 막는 접근은 오히려 미국의 디지털 금융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PE 투자자는 이러한 복합적 현실을 균형 있게 바라보되, 기술 변화와 제도 변화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새로운 가치 창출 기회가 열리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YEU는 이러한 시각 아래 스테이블코인과 그 주변 Value Chain에서 중장기적 관점의 투자 기회를 탐색해 나갈 것이다. 디지털 달러 인프라라는 변화는 더 이상 기술 애호가들의 담론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글로벌 금융 구조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현실적 움직임이며, 우리 같은 PE 투자자들이 이를 선도적으로 읽고 대응할 때 진정한 차별화된 투자 성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 리서치 플랫폼 Martket.us에 따르면 아시아-태평양(APAC) 지역이 2023년 디지털 금융 시장에서 최대 규모(USD 1.3B)를 기록하며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젊은 인구와 빠른 디지털 전환, 금융 소외층 해소가 성장의 핵심 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