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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YEU Weekly

Work, Pray, Love

일과 삶, 그 사이 살아있는 하루

by 정진

2010년 개봉한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작가 엘리자베스 길버트가 직접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전기적 로맨스 드라마다. 원작은 2006년에 출간된 회고록으로, 줄리아 로버츠가 주인공 리즈 역을 맡아 인생의 방향을 잃은 한 여성이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리즈는 안정적인 직장과 결혼 생활, 겉보기엔 부족함 없는 삶을 살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내면은 혼란과 공허로 가득 차 있다. 결국 이혼을 결심한 그녀는 자신을 되찾기 위해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1년간의 여정을 시작한다. 이탈리아에서 그녀는 풍요로운 음식과 여유로운 일상을 통해 삶의 감각을 회복하고, 인도에서는 아쉬람에 머물며 명상과 기도를 통해 내면을 들여다보는 법을 배운다. 마지막으로 발리에서는 자연과 사람들 속에서 다시 사랑을 경험하고, 삶의 균형을 되찾는다.


이 영화는 단순한 여행담이 아니라, 익숙하고 안정적인 세계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직면하고 재구성해 나가는 성장의 이야기다. 일상의 틀을 깨고 불확실한 여정을 선택하는 용기,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다시 자신을 발견해나가는 과정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Screenshot 2025-07-05 100052.png 출처: Vogue

이 영화를 처음 본 건 15년 전, 주니어 시절이었다. 한참 CFA 시험 공부를 하던 때였고,하루하루 실무에 치이고, 무언가 더 나아보이는 것을 향해 쉼 없이 달려가던 시기였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이 단순한 문장이 굉장히 오래 남았다. 나는 잘 먹고 있는가, 나는 스스로와 대화하고 있는가,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고 있는가. 영화의 장면들보다도, 이 질문들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나를 돌보고, 나를 응시하며, 나를 포함한 누군가와 관계 맺는 것. 그게 결국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철학이라기보다는, 우리에게 본능적으로 주어진 감각과 태도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어제는 PE업계 동료들과의 네트워크 모임이 있었다. 서로의 프로젝트와 근황을 나누며 성수동 저녁시간을 함께했다. 나에게 요즘은 법률실사와 재무실사, 실사대응이 반복되는 날들이다. 하루하루 꽉 채워진 일정 속에서 거의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 채 자리에 앉았다.


오랜만에 만난 동료들이 “요즘 뭐하고 지내?”라고 물었을 때, 순간 멈칫했다. 내가 지금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구조도 낯설고 방식도 기존과는 조금 달라, 설명이 길어진다. 그래서 결국, 먹고 살만한 정도로 바쁘게 지낸다고 답했다.


생각해보면, 독립한 지 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하루하루에 집중하느라 내가 애초에 만들고 싶었던 회사의 비전과 미션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지, 계획대로 가고 있는지조차 가늠이 잘 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럴 땐 그냥 믿는 수밖에 없다. 내가 그 방향을 잊지 않고 있다면, 지금 이 하루도 결국은 내가 만들고 싶은 회사와 삶을 향해 조금씩 가고 있을 거라고.


NISI20241116_0001705254_web.jpg 출처: 서울관광재단


나는 오늘도 일했다. 아침에 일어나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고, 하루 종일 집중해서 움직였다. 짧은 틈을 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고, 저녁 자리에서는 동료들과 웃고 이야기하며 마음을 나눴다. 아주 단순한 하루지만, 그 안에는 지금 내가 살아 있다는 확신이 들어 있었다.


그렇게 일하고, 생각하고, 사람을 마주하며 하루를 보냈다. 마치 오래 전 그 영화가 말했던 삶의 리듬처럼, 오늘도 나에게는 그 방식으로 하루가 흘러갔다. 내일을 너무 멀리 내다보기보다, 오늘 하루를 잘 살겠다는 다짐. 그렇게 쌓이는 오늘들이 결국 내가 원하는 모습의 회사, 팀, 사람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될 것이라 믿는다. YEU를 만들며 나는 ‘살아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YEU는 지금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다. 오늘의 나, 오늘의 일, 오늘의 기도가 모여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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