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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YEU Weekly

디테일의 무게

숫자를 현실로 만드는 디테일을 대하는 태도

by 정진

기업가치가 합의된 순간, 큰 산을 넘었고 협상의 긴장은 줄어드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번 주 나는 그 착각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느꼈다. 거래의 본질은 여전히 디테일 속에서 영향을 받고 있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 매각이 아니라 Carve-out 딜이다. 여러 브랜드를 운영하던 그룹에서 핵심 계열사만을 떼어내 매각하는 구조다. 겉으로는 독립된 법인이지만, 실제로는 관리조직, 온라인 부문, 물류 인력이 모두 모회사와 얽혀 있었다. 즉, 하나의 몸에서 장기를 분리해내듯 조직을 쪼개고 다시 이식해야 하는 복잡한 작업이다. 숫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난제가 여기에 숨어 있다.


이번 주 초, 매도자 경영진과 함께 긴 회의를 가졌다. 테이블 위에는 각종 자료와 도면이 쌓여 있었고, 모두의 표정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회의의 주제는 간단했다. 매수자 측에 무엇을 제안할 것인가. 하지만 회의를 거듭할수록 문제는 단순히 무엇을 줄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남길 것인가로 바뀌어갔다. 거래대금 안에 포함되는 자산과 제외되는 자산의 기준, 그리고 거래방식이 우리 내부적으로도 충분히 교감이 되어있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불안함이 회의 내내 발목을 잡는 느낌이었다.


실사 과정에서 실무진들과 교감은 분명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새로 작성된 우선협상기간 연장 합의서에는 그 기준이 제대로 담기지 않았다. 그래서 거래 대상 법인이 소유한 부동산을 매도자가 다시 매입해야 하는 문제, 잔존 법인의 지분을 매도자가 다시 확보해야 하는 문제 같은 사안둘의 복잡성이 이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 거래 구조를 어떻게 설계할지가 새 과제가 되었다. 한 문장으로 정리되지 않은 사소한 디테일들이 협상의 무게를 배가시켰다.


회의는 몇 시간 동안 이어졌다. 누군가는 재무적 계산을, 누군가는 인력 배치를, 또 다른 누군가는 브랜드의 미래 운영 시나리오를 이야기했다. 모두의 눈빛에서 피로가 묻어났다. 나 역시 머릿속이 복잡했다. 순간순간 우리가 이 디테일에서 협상을 놓치면 어쩌지하는 불안이 엄습했다.


저녁 무렵 회의가 끝나고 사무실 불빛이 하나둘 꺼질 때, 나는 혼자 남아 자료를 다시 훑어봤다. 숫자는 그대로였지만, 그 숫자가 의미하는 바는 여전히 불완전했다. 거래대금은 확정됐지만, 그것을 어떻게 구성할지에 따라 거래의 성격과 무게는 달라졌다.


tipsforentrepreneurs_Blackstone_669f4dd_8c1b7446c8.jpg Stephen A. Schwarzman, 『What It Takes: Lessons in the Pursuit of Excellence』

이번 주는 유난히 피로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회의와 정리 작업, 디테일을 다듬어내는 과정 속에서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소모가 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과정이 필연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Carve-out 딜은 원래 이런 무게를 지닌다. 하나의 기업을 분리하는 일은 외과 수술처럼 예민하고 고통스럽다. 작은 기준 하나가 거래 전체를 흔들 수 있기에, 끝까지 긴장을 놓지 말아야 한다.


나는 이번 주 내내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지 말 것. 눈앞의 디테일 하나도 허투루 넘기지 말 것. 성공적인 거래의 종결은 결국 이런 태도에서 시작된다. 숫자에 도달하는 과정보다, 그 숫자를 현실로 만드는 과정이 훨씬 더 힘겹고 고단하다. 하지만 바로 그 과정이야말로 거래를 진짜 거래답게 만드는 본질이란 생각이 든다.


*슈워츠먼은 리더는 타고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실패에서 배우고 경험을 흡수하며 진화하는 자세가 리더의 시작이다. ‘모든 거래는 위기’라고 그는 정의한다. 결국 거래의 본질은, 핵심 디테일 위에서 긴장을 놓지 않고 반복적으로 메시지를 다듬고 전하는 과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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