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된 숫자를 현실로 만드는 조건과 리더십의 힘
지난주, 드디어 대주주의 최종 승인이 떨어졌다. 실무단 차원에서 기업가치 합의를 마친 뒤 매수자 측이 합의안을 회장에게 보고한 지 일주일. 연락은 오지 않았고, 시간은 길게 늘어졌다. 오랜만에 기다림이 주는 긴장감과 함께 일주일을 보냈다. 매도자 측 모두가 초조해 있던 그 순간, 이번 주 목요일 오후, 계열사 대표가 전화를 걸어왔다. 회장이 인수를 최종적으로 승인했다는 소식이었다. 그 말 한마디로 긴장과 불확실성은 일순간 무너져내렸다. 큰 산을 넘었다는 안도감이 번졌다. 하지만 진짜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합의된 기업가치, 그 숫자를 어떻게 현실로 체화할 것인가가 남는다. 이번 거래의 경우, 사실상 한 몸처럼 운영되던 조직을 분리해내야 한다. 관리·물류·온라인 사업부의 인력들을 누구는 인수회사로 보내고, 누구는 잔존 법인에 남길지를 정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인사 문제를 넘어, 매각 이후 잔존 법인이 자생할 수 있을지, 인수 회사가 빠르게 안착할 수 있을지를 가르는 중대한 과제다. 여기에 부동산 양도 문제, ERP와 물류센터 이전 문제까지 겹쳐 있다. 이번 거래는 브랜드 하나를 옮기는 일이 아니라, 사람·자산·시스템이 얽힌 거대한 퍼즐을 다시 맞추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민감한 사안은 사람이다. 핵심 인력 인터뷰는 단순한 검증 절차가 아니다. 인수자에게는 브랜드의 DNA를 이어받을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과정이고, 매도자에게는 남아 있는 직원들의 불안을 관리하는 일이기도 하다. 누가 남고 누가 옮겨갈지, 그 기준은 무엇일지, 이런 문제들이 거래의 본질을 흔들 수 있다. 이번 합의가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숫자는 시작일 뿐이고, 진짜 무게는 결국 사람에게 있다.
또 하나 중요한 축은 절차다. 매수자가 상장사라는 사실은 협상 과정에 긴장감을 더한다. 상장사는 모든 움직임이 공시로 이어진다. 따라서 절차의 순서가 곧 리스크 관리다. 나는 경영진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며 이 부분을 특별히 강조했다. 공시 전에 반드시 이 브랜드의 글로벌 본사와의 협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 특히 한국 지사장과의 미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절차를 잘못 밟으면 아무리 좋은 조건도 무너질 수 있다. 냉정함이 필요한 이유다.
이 소식을 매도자 경영진에게 처음 전달할 때, 나는 문장의 순서를 오래 고민했다. 승인의 기쁨을 먼저 말할까, 앞으로 남은 쟁점을 나열할까. 결국 나는 후자를 택했다. 큰 산을 넘었다는 안도감을 주되, 방심하지 않도록 다음 단계를 냉정히 준비하는 메시지를 앞세웠다. 잔존법인의 정리 문제, 핵심 인력 인터뷰, 부동산 양도 쟁점, 상장사 공시 절차. 이 순서를 세심하게 배열해 전달했다. 이 메시지는 단순한 보고가 아니라 생각했다. 워킹그룹의 사고의 흐름을 가이드하고, 감정을 다잡게 만드는 하나의 시그널이다.
이번 주말은 와이유가 내부적으로 정리하는 시간으로 쓰기로 했다. 그동안의 논의와 포착된 신호들을 다시 모으고, 다음 주 협상에서 어떤 순서로 쟁점을 풀어나갈지 가닥을 잡을 것이다. 그리고 차주 화요일과 수요일, 이틀 연속으로 매도자 경영진과 만나 후속 협상을 준비할 예정이다. 이제는 합의된 숫자를 기반으로 조건과 절차를 어떻게 쌓아올릴지를 논의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합의의 무게는 더 커지고, 협상의 긴장감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숫자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상징적인 이정표다. 그러나 그 자체가 협상의 끝은 아니다. 숫자 이후의 본게임은 사람을 어떻게 남기고 옮길지, 조직을 어떻게 분리하고 재편할지, 자산과 절차를 어떻게 관리할지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팀을 안심시키면서도 방심하지 않게 하는 리더의 메시지가 아닐까. M&A의 본질은 숫자 자체가 아니라, 그 숫자를 납득하게 만드는 조건과 서사, 그리고 그 과정을 이끌어가는 리더십에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한 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