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25년 설텍 강의에서 발표한 내용을 토대로 다시 정리한 칼럼이다. 강의에서는 K-패션의 IPO 저평가 현상을 문제 삼고, 산업 구조와 브랜드 철학이 기업가치에 어떤 방식으로 반영되는지에 대해 다뤘다. 이번 글에서는 강의에서 나눈 논리와 사례들을 글의 흐름에 맞게 풀어내 보고자 한다.
같은 한국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산업에 따라 IPO 시장에서 받는 평가는 현저히 달라진다. 특히 패션 기업들은 자본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저평가 받고 있다. 통계적으로 보자면, 패션 업종의 평균 PER(주가수익비율)은 10.6배 수준에 머물러 있다. 같은 소비재 산업에 속한 뷰티 기업들의 평균 PER이 26.6배라는 점을 감안하면, 두 배 이상의 차이가 난다. 반도체 산업 역시 18.9배로 패션보다는 훨씬 높은 수준이다. 동일한 자본시장에서, 동일한 한국 기업임에도 패션만이 낮은 평가를 받는 현실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그렇다면 왜 패션만 저평가일까. 표면적으로는 트렌드 산업이라는 속성 때문이라고 쉽게 말할 수도 있다. 패션은 시즌과 유행 주기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한 시즌의 성공이 다음 시즌의 보장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이는 겉으로 보이는 현상일 뿐, 더 깊이 들어가면 산업 구조적 요인과 브랜드 경영적 요인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산업 구조적인 측면에서, K-뷰티와 K-패션은 출발점이 다르다. K-뷰티는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글로벌 OEM·ODM 인프라가 빠르게 성장했다. 한국콜마, 코스맥스 같은 제조사들은 브랜드의 주문에 따라 빠른 제품화와 소량생산이 가능한 체제를 구축했다. 이 덕분에 작은 브랜드조차도 새로운 제품을 단기간에 내놓고 시장 반응을 시험할 수 있었다. 브랜드는 마케팅과 기획에 집중하고, 제조는 전문 업체가 담당하는 분업 체제가 정착되면서 산업 전체가 효율적으로 굴러갔다. 여기에 디지털 마케팅과 한류가 결합되면서 K-뷰티는 글로벌 시장에서 빠른 확산에 성공했다.
반면 K-패션은 여전히 파편화된 생산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OEM과 ODM은 존재하지만, 글로벌 스케일업 경험을 갖춘 전문화된 제조사는 많지 않다. 브랜드가 해외로 나가려면 결국 생산·유통·물류를 직접 떠안아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성장 속도를 늦추고, 위험을 높인다. 또한 정부 차원의 산업 지원도 K-뷰티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K-뷰티는 수출 지원, 박람회 참여, 통관 문제 해결 등 다양한 공적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었지만, K-패션은 이러한 생태계 지원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 결국 같은 한국 브랜드임에도 뷰티와 패션은 글로벌 진출의 출발선부터 차이가 났던 것이다.
브랜드 경영적 요인 역시 무시할 수 없다. 패션 브랜드 창업자는 디자이너일 수도 있고, MD일 수도 있고, 혹은 산업 비전공자일 수도 있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브랜드를 시작하지만, 문제는 브랜드 경영이 곧 회사 경영이라는 점이다. 즉, 상품을 디자인하고 기획하는 것과 회사를 운영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브랜드가 장기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밸류체인 전체를 이해하고, 원가와 판관비를 어떻게 최적화할 것인지 전략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창업자들은 밸류체인의 일부만 경험했기 때문에 이 지점을 간과한다. 이 역시 투자자의 눈에는 불확실성과 위험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결국 자본시장에서 패션이 저평가 받는 이유는 예측 가능성의 문제로 귀결된다. 투자자의 언어로 말하자면, 기업가치는 할인율(r)과 성장률(g)의 함수다. 뷰티 산업은 제조 인프라와 디지털 마케팅 덕분에 신제품 출시와 글로벌 확산의 예측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패션은 시즌성과 유행 변동성, 사이즈와 재고 리스크, 글로벌 유통망의 취약성 때문에 예측 가능성이 낮다. 투자자는 불확실성을 감안해 할인율을 높게 책정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멀티플은 낮게 형성된다.
IPO 시장에서 K-패션이 저평가 받는 것은 단순히 투자자의 보수성 때문이 아니다. 산업 구조와 브랜드 경영이 만들어내는 구조적 리스크가 투자자의 눈에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따라서 K-패션의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단순히 브랜드 인지도나 매출 성장을 강조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산업 차원에서는 제조와 유통 인프라를 정비하고, 브랜드 차원에서는 철학을 지표로 전환하여 가격(Price)를 지키고, 팬덤과 시장 확장을 통해 수량(Quantity)를 늘리며, 밸류체인을 이해함으로써 비용(Cost)를 최적화해야 한다.
이 칼럼은 문제 제기를 중심으로 다뤘다. 패션 산업이 IPO에서 저평가 받는 이유가 무엇인지, 구조적 요인을 중심으로 설명했다. 다음 글에서는 K-뷰티가 어떻게 글로벌에서 성공할 수 있었는지, 정리해볼 예정이다. K-뷰티의 성공 방정식 속에는 K-패션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참고해야 할 인사이트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