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 기반 브랜드, 가격을 지탱하는 힘

관계와 감정, 그리고 지표로 완성되는 하방경직성

by 정진

최근 우리 워킹그룹에서 공유된 한 편의 유튜브 영상이 눈길을 끌었다. 영상의 주인공은 가죽 가방과 잡화를 기반으로 1인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젊은 대표였다. 그는 대학 시절 리빙디자인을 전공하며 처음 가죽을 접했고, 졸업 이후에도 그 흥미를 이어가며 개인적인 작업을 계속했다.




처음에는 자신을 위한 제작에 만족했지만, 선물로 건넨 지갑을 통해 다른 이들의 기쁨과 감동을 목격하면서 내가 만든 것이 누군가에게 의미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그 계기로 브랜드를 시작했지만, 당연히 쉽지 않았다. 패션 잡화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였고, 대기업과 감각적인 중소 브랜드 사이에서 눈에 띄기는 어려웠다.


그는 오히려 자신의 한계를 전략으로 전환했다. 하루에 만들 수 있는 수량이 극히 적다는 점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기다려야 하는 브랜드’라는 희소성으로 풀어냈다. 또 완성된 제품 이후에야 마케팅을 시작하는 기존의 순서를 거부하고, 제작 과정부터 기록하며 고객과 공유했다. 샘플을 만들며 실패했던 이야기, 손을 다친 순간, 작은 부자재 하나를 고르며 망설였던 과정까지 모두 공개했다. 정제되지 않은 진심이 오히려 사람들을 더 오래 머물게 만들었고, 이 계정은 단순히 제품을 소개하는 공간이 아니라 브랜드의 성장을 함께 지켜보는 공간이 되었다.


그는 마케팅을 “누군가가 이 브랜드를 기다릴 이유를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언박싱 시 향이 퍼지는 포장, 손글씨 메모, 작은 스티커와 엽서 같은 디테일은 고객들에게 단순한 지갑 이상의 경험을 선사했다. 그래서 그의 브랜드 철학은 단순했다. 나는 제품이 아니라 기분을 판다. 고객이 “디자인이 예뻤다”보다 “그때 기분이 좋았다”로 기억하는 브랜드를 지향했다.


이후 외부 생산 파트너와 협업하며 생산의 한계를 극복했고, 플랫폼 입점을 통해 더 많은 고객과 만났다. 그러나 그는 곧 문제를 자각했다. 고객이 브랜드가 아니라 플랫폼을 기억하는 순간, 브랜드의 핵심이 흐려지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자사몰 중심으로 방향을 선회하며, 팬으로 남는 고객을 만들고 브랜드 맥락을 쌓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결국 그가 내린 결론은 명확했다. 브랜드는 관계이고, 관계는 기다림과 기분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자라난다.


나는 직접 이 브랜드 대표를 만나보고 싶었다. 영상에서 본 이야기보다 실제로 운영 과정에서 어떤 고민과 전환이 있었는지 듣고 싶었다. 실제 미팅에서 만난 그는 내 예상대로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었다.


대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브랜딩의 출발점에 대한 그의 관점이었다. 그는 브랜딩이 내가 고객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다고 강조했다. 나의 해석으로는 이는 곧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말과 같았다.


또 하나 확고했던 점은 고객과의 소통에 대한 그의 태도였다. 그는 지금까지도 직접 고객 응대를 담당하고 있으며, 구매 이후의 피드백과 소통을 브랜드 운영의 핵심 가치로 삼고 있었다. 앞으로도 이것만은 변하지 않을 브랜드 철학이라고 말했다. 사실 이 부분은 그의 소비자 경험과도 맞닿아 있었다. 본인 역시 소비자 시절, 브랜드가 단순히 제품만 팔고 끝나는 경우가 많았음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브랜드는 고객이 단순히 제품만이 아니라, 브랜드가 전하는 감정과 기분까지 가져가길 바란다고 했다. 이 철학을 서비스 프로세스 전반에 녹이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그의 여정은 쉽지 않았다. 가죽이라는 소재는 색상과 질감 선택이 제한적이고, 혼자 작업할 수 있는 물리적 한계가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제조 파트너를 만나게 되었고, 긴 과정을 통해 원하는 소재를 찾으며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이 과정은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그만큼 만족스러웠다고 회상했다.


이처럼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철학이 단단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확고히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철학을 수치화해 실행 가능한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image-20220121235851-1_1642787929.jpeg Christian Dior, 출처: kaganmedia.org

투자자의 시각에서 보면 브랜드 초기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가격의 하방경직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브랜드가 제공하는 명확한 가치, 구성원의 정체성과 커뮤니티, 희소성·품질 일관성 같은 요소들이 결합되어야 가격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단순히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가격을 지탱해 줄 모멘텀을 설계하는 것이 본질이다.


그러나 고객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라는 철학적 질문만으로는 실행이 어렵다. 이를 실행 가능한 전략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철학을 측정 가능한 가설로 바꾸고, 이를 지표로 정의해 관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재구매 코호트의 2~3회차 잔존율, 멤버십 유료 전환율과 이탈률, 혹은 구매 후 리뷰 작성률 같은 지표가 해당된다. 이 지표들은 정량적 데이터로서 브랜드의 감정적 가치를 검증하고 강화하는 장치다.


이 지표들이 건강하게 유지된다면, 브랜드의 가치 제안은 강화되고, 커뮤니티 기반의 락인 효과가 생기며, 가격 하방경직성은 구조적으로 확보된다. 결국 브랜드의 빛은 창업자의 철학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그 철학을 수치로 구현해내고, 그 지표들을 일관되게 관리하는 데서 진정한 힘이 발휘된다.


정성적 가치는 브랜드의 감성을 만들고, 정량적 지표는 그 감성을 지속 가능한 자산으로 전환한다. 이 둘이 함께 굴러갈 때, 브랜드는 단순한 스토리가 아니라 데이터로 뒷받침되는 자산으로 성장한다. 팬덤 기반의 브랜드란 결국 관계다. 그 관계는 기다림과 기분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자라나고, 데이터라는 언어로 증명될 때 더 강력해진다. 이 두 축이 함께할 때, 브랜드는 비로소 시장에서 가격을 지탱할 힘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시작은 대표 자신이다.


*크리스티앙 디오르라는 한 명의 창의적 디자이너가 만든 작업은 결국 하나의 기업이 되었다. 그 기업은 단순한 의복이 아니라 시대의 철학을 담아냈다. 철학은 다시 수치와 지표로 증명되며, 브랜드라는 자산으로 남았다. (https://brunch.co.kr/@shha1113/91)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AI는 지금 고객의 옆자리에 앉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