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지금 고객의 옆자리에 앉아 있다

2025년 VC 시장과 패션 소비재 산업의 변곡점

by 정진

2025년 투자시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양극화가 더욱 뚜렷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자본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흐름은 명확하게 쏠렸다. 당연히 인공지능, 그중에서도 생성형 AI와 에이전트형 AI다. 기술의 방향은 인간을 닮아가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고, 자본은 그 흐름을 따라간다. 반도체, 로보틱스, 딥테크까지 포함해 이른바 '진짜 기술'을 중심으로 투자자는 투자자의 관심이 쏠렸고, 숫자 없는 비즈니스는 단호하게 외면받았다.


반대로 전통적인 ICT나 핀테크, ESG 같은 영역은 올 들어 유례없이 조용한 듯하다. 유망해보인다란 말 하나로 투자받던 시대는 끝났고, 그 미래가 당장 내일로 연결되지 않는 이상, 돈은 움직이지 않는다. 솔직히 모든 자본이 이런 태도여야하는게 맞나 싶긴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패션과 소비재는 독특한 흐름을 보였다. 언뜻 보기엔 기술과 거리가 먼 듯한 분야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기술의 접목이 더 눈에 띄는 공간이 된 셈이다. 과거라면 온라인몰, 플랫폼, 유명 연예인과의 마케팅이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다르다. 투자자는 스타일 추천, 가상 피팅, 고객 행동 기반 데이터 분석처럼 디지털 전환이 실제 고객 경험을 바꾸는 영역에 집중하고 있다. 이커머스 플랫폼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


대신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술을 활용하는 브랜드, 예를 들어 AI로 재고를 관리하고, 소재부터 배송까지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기업이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많은 VC가 패션테크라는 키워드로 투자검토 중이고, 그 안에 '디지털 전환'과 'AI'는 핵심적인 공통분모로 자리잡았다.


Screenshot 2025-07-26 131530.png 출처: Accenture


이 지점에서 Accenture의 최근 보고서, 『Me, My Brand and AI』가 흥미롭다. 이 보고서는 전 세계 18,000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소비자와 AI, 브랜드 간의 관계가 어떻게 재편되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단순히 기술 도입을 넘어, AI가 소비자 일상 속에 어떤 방식으로 스며들고 있는지를 세 가지 모델로 설명하는데, 바로 "믿을 수 있는 가이드(My trusted guide)", "충직한 친구(My loyal companion)", 그리고 "내 제2의 자아(My second self— AI becomes the consume)"라는 개념이다.


생성형 AI는 이제 단순한 검색을 넘어 소비자에게 상품을 추천하고, 때로는 구매 결정을 유도하며, 심지어 소비자를 대신해 결제까지 진행하는 수준까지 왔다.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75%는 자신을 잘 아는 AI가 대신 구매해주는 것에 대해 긍정적이었다. AI가 소비자의 사고방식, 취향, 감정까지 흡수하고 있는 셈이다. 더 놀라운 건, 소비자들 다수가 이미 AI에게 연애 상담이나 자기계발 조언을 요청하고 있다는 대목이다. 이제 AI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소비자의 생활, 그리고 감정 곁에 있는 일종의 동반자로 인식되고 있다.


이쯤 되면, 기술이란 결국 사람과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는가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접점을 가장 민감하게 보여주는 게 다름 아닌 패션과 소비재다. 사람의 취향, 감성, 표현 욕구가 가장 활발하게 드러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전환이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지만, 그것이 '브랜드 경험'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그동안 꽤 모호했다. 그런데 이제는 다르다. 고객은 스스로 원하는 바를 직접 말하지 않아도 된다. AI가 먼저 예측하고, 추천하고, 심지어 브랜드의 철학까지 해석해서 보여준다. 예전 같으면 '브랜드의 태도'를 감성적 문구나 마케팅으로 보여줬다면, 이제는 고객이 마주하는 인터페이스, 응대, 추천, 배송의 흐름 그 자체가 브랜드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Screenshot 2025-07-26 131608.png 출처: Accenture, “Me, My Brand and AI” AI는 이제 소비자의 친구 역할까지 넘본다. 추천을 넘어 공감하고, 때론 구매까지 대신하는 친구 말이다.


나는 이 변화가 패션 소비재 기업들에게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동시에 무척 불편한 도전이기도 하다. 단순히 챗봇 하나 달았다고 AI를 도입했다고 말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 고객은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즉각적으로, 자신이 얼마나 존중받고 있는지를 감지한다. 그리고 그 감각은 이제 사람이 아닌 기술을 통해 전달된다. 이 얼마나 무서운가. 하지만 동시에 얼마나 매혹적인가.


개인적으로 나는 이 흐름 속에서 가장 집요하게 고민하는 영역이 고객 응대, 그러니까 CS다. 고객과의 접점이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브랜드 전체를 드러내는 유일한 순간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AI든 사람이든, 그 응대의 방식은 결국 브랜드가 고객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그래서 나는 기술 도입보다도 그 기술이 고객과의 응대에 어떤 태도를 담아내는지에 더 집중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고객은 무심하지만, 동시에 예민하다. 그리고 이제는 그 무심한 고객의 예민함을 감지하는 쪽이 AI라는 점이, 이 시대의 가장 아이러니한 풍경이다. AI는 지금 고객의 옆자리에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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