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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YEU Weekly

다시 중심을 잡고 출발선으로

원점으로 돌아간 M&A, 그 안에서 발견한 것

by 정진

“딜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것 같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임원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아니, 그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에요. 대표님이 오늘 당장 만나자고 하십니다.”


1년을 매달려온 매각 프로젝트, 이제 마지막 조율만 남았다고 생각했던 순간, 머릿속 모든 게 멈춰버렸다.




긴 연휴가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금요일이었다. 리서치 보고서와 강의안 준비로 바쁘게 흘러가던 하루였지만, 머릿속 한편에는 계속해서 이 딜의 막바지 협상 구도가 맴돌고 있었다. 매수인은 이미 핵심 인력 인터뷰를 마쳤고, 매매계약서(SPA) 세부 협의를 남겨놓은 단계였다.


사실 며칠 전, 우리는 대표에게 세후 실수령금액 시뮬레이션을 전달했다. 보수적인 가정으로 계산했고, 여기에 더 절세포인트를 찾아보자는 취지였다. 그 이후 대표는 연휴 전부터 매각 이후 잔존법인(매각 후 남는 자회사)의 자생력에 대해 우려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회사가 잘 굴러갈 수 있을까요?”


“우리 인력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요?”


“온보딩 기간을 넉넉히 보장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요청의 강도는 점점 높아졌고, 말의 끝에는 불안이 묻어 있었다. 나는 그게 단순한 피로에서 비롯된 일시적 반응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금요일 오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회의실 문이 열리고,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이 딜을 못할 것 같습니다.”


회의실 공기가 단단하게 굳었다.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다음 문장을 예측했다. ‘가격 때문일 것이다.’ 그의 말은 예상대로 이어졌다.


결국 매각은 보류하고, 대신 회사의 카테고리를 확장하고 수익성을 개선해서 좀 더 매력적인 모습으로 투자유치를 받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설명의 밑바닥에 있는 다른 무언가를 찾으려 노력했다.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그의 선택의 이면에 무슨 이유가 있을까, 논리보다는, 감정이 아니었을까. 그의 결정은 분석이 아니라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대표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 타래, 한 타래 타고 올라가며 복기를 해봤다. 아마 며칠 전 그에게 전달했던 세후 실수령금액 시뮬레이션이 그 원인이었을 것 같다.


우리는 보수적인 가정으로 계산했다. 증여된 가족 지분의 양도차익은 (아직 전달받지 않은)실제 증여가액이 아닌 액면가 기준으로, 세금 부담은 Worst 케이스로 반영했다. 우리가 보수적이라 쓰고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그 계산은, 그에게 충격이었을 수도 있겠다.


“생각보다 너무 적었어요.”


그 말 한마디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는 그 이후부터 모든 것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매각 후의 잔존법인, 가족의 생계, 그리고 자신이 쌓아온 브랜드의 미래까지.


매각을 미루겠다는 그의 한마디는 사실상 판 전체를 뒤흔드는 선언이었다. 그의 표정에는 두려움과 아쉬움, 그리고 결심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는 숫자에 실망한 게 아니고, 숫자에 매달린 것이 아니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우리가 진짜로 놓쳤던 것들이 뭘까?


아마도 그것은, 거래가 깨지는 지점(딜 브레이커)를 서로 다르게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매도인은 가치의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심리의 문제였다.


심지어 매도인 자신도 왜 결정을 번복했는지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그 현장에서 나는 계속 스스로에게 말했다. 지금은 냉정해야 할 때다. 감정에 휩쓸리면, 판단이 흐려지고, 판단이 흐려지면 전체 균형이 무너진다.


나는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다음 주에는 세후 수령금액을 여러 시나리오로 나눠 제시할 것이다. 실제 현금 유입 규모를 명확히 보여주고, 그 자금이 잔존법인의 운영으로 다시 빨려 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구체적인 계획을 전달할 계획이다.


미륵반가사유상.png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다음주는 논리보다 확신을 전달하는 한 주가 될 것 같다. 그가 그렇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우리 역할이다. 협상은 이성보다 심리가 팔할이지 않을까? 숫자는 논리를 세우는 재료일 뿐, 그 숫자를 받아들이는 마음은 언제나 인간 안에 있으니.


1년 가까이 달려온 이 딜이 하루아침에 흔들렸지만, 어쩌면 우리는 이제야 진짜 출발선에 선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내 원칙을 다시 되새겼다. 절대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 것. 딜의 중심에는 매수인도, 매도인도 아닌 내가 있어야 한다.


그 중심이 흔들리면, 모든 균형이 무너진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흔들리지 않았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에서 만난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1,400년을 한 자리에서 사유하는 이 보살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어쩌면, 흔들림 속에서 중심을 지키는 법을 묵묵히 실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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