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YEU Weekly

최선의 끝

협상의 끝자락에 서서

by 정진

10월 10일,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매도인이 이 딜을 다시 생각해보겠다고 말하던 그날 이후, 나는 내 머릿속에서 수백 번의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그날은 단순히 협상이 멈춘 날이 아니라, 지난 1년간 쌓아온 어떤 것이 흔들리던 날이었다.


매도인은 잔존법인의 자생력에 대한 불안을 거듭 이야기했다.




“이 회사를 넘긴 뒤에도, 남겨질 사람들과 조직이 유지될 수 있을까.”

그의 말은 합리적이면서도 동시에 감정적이었다. 논리의 결핍이 아니라, 두려움의 표현 같기도 했다. 그 두려움은 숫자로, 논리로 채워지지 않는 종류의 공백이었다.


우리는 냉정하게 구조를 다시 세웠다. 세후 실수령액 시나리오를 새로 계산했고, 절세 포인트 두 곳을 찾아냈다. 결과적으로 약 7억 원의 현금 유입이 가능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도인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결국 문제가 금액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부터 확실히 알았다.


매도인의 요구는 하루가 다르게 변했다. 그는 불안의 방향을 바꿔가며 조건이라는 형태로 표현했다. 온보딩 기간의 연장, 매도법인 일부 사업부의 위탁운영 등, 우리 입장에서 보자면 회사와 자신을 분리하지 못하는 마음이 숨어 있었다.


이 과정을 가장 가까이 함께한 나이기에, 그 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다만, 딜의 프로세스 속에서는 일부는 수용할 수 없는 요구들이었다.


매수인은 달랐다. 그들은 줄곧 일관된 입장을 유지했다.


“우리는 여전히 100% 인수의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다만, 순서를 지키고 싶을 뿐입니다.”


그들의 입장은 논리적이었고, 리스크를 관리하는 태도에서 흔들림이 없었다. 실사 이후 새로운 조건을 본계약에 넣을 수는 없다는 원칙. 그 원칙이 견고했기에, 나는 오히려 그들의 진정성을 믿음이 갔다.


그날 이후 나는 매도인과의 미팅을 이어갔다. 이틀 동안 모든 요구를 하나씩 정리하며 선결조건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중 다수는 비현실적이었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정리의 과정 자체가 대화의 회복이었다는 점이다. 내 입장에서는 대화단절이라는 어두운 터널을 지난 셈이었다.


며칠 뒤 매수인에게 피드백을 전달했고, 충분히 예상을 했던 답변이 돌아왔다.


그들은 실사 이후, 새로운 요구를 본계약 조건으로 넣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그 이유는 명확했다. 첫째, 이미 실사(DD) 과정에서 모든 재무적·법적 리스크를 평가했고, 그 이후 제시되는 향후 비즈니스에 대한 사안은 거래 범위 밖이었다.


둘째, 아직 PMI(Post-Merger Integration) 과정이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수 이후의 세부 운영·비즈니스 구조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업적 판단이 필요한 요구를 계약 조건으로 넣을 수 없다는 것이다. 셋째, M&A 계약은 지분 및 자산의 거래이지, 향후 비즈니스의 공동 협의가 아니라는 점.


“우리는 회사를 인수하는 것이지, 함께 운영을 논의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 논리에 동의했다. 매도인의 요구는 틀린 게 아니었다. 다만, 지금 테이블 위에 올릴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을 뿐이었다. 다만 매수인은 본계약 체결 이후라면, 상호 신뢰를 전제로 일부 요청사항에 대해 협의의 여지가 충분히 있다는 입장이었다.


즉, 거래의 본질적 구조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라면 인수 이후 PMI 과정에서 실무적·운영상의 세부사항은 함께 논의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는 원칙을 지키되 관계의 유연함을 남겨두는, 합리적 태도라 생각한다.


지난 금요일, 나는 그 모든 논리를 정리해 매도인에게 다시 전달했다. 그는 중국 출장을 앞두고 있었다. 며칠 동안 생각을 해보겠다는 말을 남겼다. 그 말 속에는 여전히 흔들림이 있었지만, 나는 그것이 마지막 고민일 것이라 믿었다.


그때부터 이 딜은 논리의 영역에서 신뢰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안토니곰리.png 안토니 곰리(Anthony Gormley)의 조각 설치 전시, 출처: 뮤지엄 산(Museum SAN)


오늘은 10월 31일, 우리가 매수인에게 부여한 우선협상권한의 마지막 날이다. 잠시 후 오후 네 시, 매도인으로부터 답변을 듣는다. 진행이냐, 종료냐.


그들은 우리가 이 프로젝트의 구조를 만들고 이끌어온 모든 과정을 알고 있다. 이제는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시간이라는 걸 안다. 돌이켜보면 지난 3주 동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세후 금액을 다시 계산했고, 협상 프레임을 복원했고, 감정의 균형을 되찾았다.


이만큼의 집요함과 끈기를 직장생활 시절에도 보여줬을까 싶을 정도로 집중했다. 그래서 오늘은 두려움보다 담담함이 앞선다. 이제 결과가 어떻든, 내 안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확신이 있다. 그리고 이 경험이 앞으로의 모든 프로젝트에서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 것이다.


그게 바로 내가 정의한 ‘최선의 끝’이다. 최선의 끝은 결과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그 끝에 서면, 이상하리만큼 고요하다.


*이번 주 다녀온 뮤지엄 산의 안토니 곰리전, 인간이 스스로의 무게를 인식하는 순간의 정적을 표현한 듯한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다시 중심을 잡고 출발선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