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와 신뢰 사이, 마지막 협상의 주(週)
11월의 첫주는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매수인은 여전히 같은 금액과 조건을 유지했고, 매도인 역시 표면적으로는 그 흐름에 동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표면 아래에서는 또 다른 균열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번 주의 화두는 단 하나였다.
“밸류를 지키되, 잔존 사업의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숫자는 어찌 보면 한 단어에 불과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숫자보다 훨씬 복잡한 계산을 한다. 매도인은 남겨질 법인의 자생력에 대한 불안을 여전히 털어놓았고, 매수인은 이미 합의된 틀을 흔드는 일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그 사이에서 나는 한 가지 협상 원칙을 세웠다.
“가격은 지키되, 순서는 어지럽히지 않는다.”
거래 구조 안에서 논의할 것과 이후 협의할 것을 명확히 구분하고, 서로 신뢰 속에서 그 순서를 지킬 수 있도록 돕는 일. 이게 이번 주 내내 우리의 역할이었다.
며칠 전, 매수인과의 미팅에서 그들은 다시 한번 원칙을 확인했다.
“딜은 딜대로 간다. 인수의지는 변함없다. 다만 본계약 이후의 세부 협의는 Win-Win 할 수 있는 방향 안에서 차근차근 해나가자.”
그 말은 단순했지만, M&A 계약은 M&A 계약이란 틀 안에서 끝내자는 이야기였다. 즉, 매각 이후 실무 협의로 풀 수 있는 비즈니스 이슈들을 본계약 안에 선결조건으로는 가져오지 말자고 선을 그은 것이다. 매수인이 내건 이 원칙이 깨지면, 모든 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고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이번 주 내내 매수인과 매도인과, 지키는 협상을 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보다, 이미 쌓아온 신뢰와 구조를 흐트러뜨리지 않기 위한 집중이었다. 그 과정에서 느낀 건, 숫자보다 더 예민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었다.
매도인은 여전히 불안을 이야기했고, 나는 그 불안을 이해하면서도 그 감정이 딜의 본질을 흔들지 않게 해야 했다.
그래서 이번 주는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버텼다.
11월 12일, 마지막 미팅이 예정되어 있다. 이번에는 논의가 아니라 결정의 자리다. 매수인은 이미 의지를 명확히 밝혔고, 이제 공은 매도인에게 넘어갔다. 나는 그저 이 과정이 더 이상 길어지지 않기를, 그리고 이 한 해 동안의 모든 노력들이 헛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처음부터 이 딜을 믿었던 건 시장도, 숫자도 아닌 사람 간의 신뢰였다. 그 신뢰를 끝까지 지켜내는 것이 나의 일이라면, 결과는 이미 절반은 이뤄진 셈이다. 결국 남은 건 그 신뢰가 숫자 위에서 다시 증명되는 순간뿐이다. 이번 주말은 과정의 의미를 복기해보려 한다. 앞으로 다가올 또 다른 시작 앞에서, 이번 딜이 남긴 빈자리를 우리만의 단단함으로 채워야 한다.
*Pietro Loro Piana, holding a newborn lamb. 인간의 손이 닿을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순간, 그리고 그 섬세한 무게. 비즈니스의 본질은 결국 신뢰와 서로의 감각 위에 세워지는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