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YEU Weekly

Lesson Learned 1: 매각의 마지막 순간

숫자도, 구조도, 논리도 중요하지만 결국 남는 것은 단 하나

by 정진

딜에는 숫자도, 구조도, 논리도 중요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남는 것은 단 하나다. 사람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느냐이다.


어제 매수인 측에서 조용하게 한 통의 이메일이 도착했다. 언뜻 보면 짧고 예의 바르고 정제된 문장이었다. 하지만 문장 사이에 담긴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요약하면 이렇다.




“입장을 바꿀 수 없다. 추가 제안도 없다. 현재 조건에서 결론 내겠다.”


협상의 문을 완전히 닫는 문장이었다.


사실 며칠 전부터 강하게 감지되던 흐름의 연장선이다. 선결조건에 대한 피로, 라인 결재 일정, 시간의 압박, 그리고 라이선스 비즈니스 특유의 시효성. 매수인은 여러 차례 100% 양수 후 사후 협의라는 원칙을 분명히 해왔다. 그 프레임 안에서 오랜 시간 성실하게 논의를 이어왔다.


하지만 매도인은 달랐다. 온보딩, Sub-license, 부동산 처리 문제는 그의 머릿속에서 단순한 옵션이 아니라 보호 장치였다. 그리고 그는 끝까지 그 장치를 놓지 않았다.


며칠간의 이메일 왕복을 지나, 매수인의 인식은 서서히 바뀌었다. 매도인의 요구가 너무 많고, 그 요구는 M&A 딜의 순서가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 굳어졌다. 결정적으로 나와의 개인적인 통화 상에서 이 상태로는 회장께 올리기 힘들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통화를 통해 매수인 내부의 일정을 확인했다. 목·금요일, 회장 보고. 한 번 부결되면 사실상 복귀가 어렵다는 예고가 함께 따라왔다.


그 시점에서 내가 할 일은 하나였다. 오해라면 바로잡고, 의도가 진짜라면 확인하는 것.


그래서 매도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매수인의 프레임(100% 양도 + 사후 협의)에 원칙적으로 동의하실 의사가 있습니까?”


답은 한 문장이었다.


“생각이 바뀌기 싫다.”


여기서 더 움직이는 건, 내가 해야 할 역할이 아니었다. 내가 설득으로 바꿀 수 있는 시점은 이미 지나갔다. 그리고 더 끌고 가는 건 오히려 매도인을 위한 선택도, 딜을 위한 선택도 아니었다.


그 즈음, 매수인의 이메일이 도착했다. 정중한 문장 속에 담긴 결론은 명확했다.


“조건 변경 없음. 현재 조건에서 최종 결론.”


이걸 더 붙잡거나 밀어붙여 해결할 수 있는 국면이 아니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논리로 접근해도, 계산으로 설득해도 마지막 순간은 결국 선택의 문제다. 그리고 선택은 그 사람의 삶 전체의 결과 같기도 하다. 불안, 욕심, 책임감, 미래에 대한 두려움, 그 모든 것이 얽혀 딜의 마지막 형태를 만든다.


Edward Hopper, Office in a Small City (1953)


담담해져야 한다. 통제할 수 있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을 분리하는 담담함. 삼자 간의 오해, 해석, 감정의 흐름까지 모두 체크하면서도 마지막에는 각자의 선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담담함. 그 담담함 덕분에, 지금의 나는 결과보다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인지 더 분명히 알게 되었다. 사실상 딜은 종료되었지만, 형식상 매수인의 최종 의사결정만 남았다.

결과가 어떻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했다. 지금부터는 침묵과 정리가 필요하다. 다음 주부터는 이 딜의 전 과정을 복기하며 Lesson Learned를 작성할 예정이다. 감정이 가라앉으면, 원인이 보인다. 그 원인을 대하는 태도로부터 배움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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