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YEU Weekly

Lesson Learned 2: 조건이 아니라 신뢰

죽은 딜을 되살린 한 가지 질문

by 정진

지난주까지의 칼럼에서 나는 한 번 딜이 사실상 종료되는 순간가지 경험했다. 매수인은 선결조건 과다, 절차 위반, 피로 누적을 이유로 내부 보고를 이미 마쳤고, 매각은 정리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나는 이 상황을 받아들였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은 거의 끝났다고 판단했고, 마음 한편에서 담담함을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이번 일주는 이 담담함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지난주 금요일 저녁, 매도인이 조용히 연락을 했다.





“매수인 측의 사실상 딜드랍 내용의 이메일에, 제가 답장을 해야 할까요?”


단순한 문장 하나였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그 안의 결이 달랐다. 포기한 사람의 말투가 아니었다. 그 순간 나는 직감적으로 이 딜은 끝나지 않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매도인과의 통화는 예상보다 많은 정보를 담고 있었다. 그는 후회의 시그널을 은근하게 드러냈고, 특히 특정 항목에 대한 불안감을 반복적으로 이야기했다. 그의 긴 이야기를 듣던 나는 직감적으로 확신이 든 질문을 던졌다.


“지금 이 딜에서 가장 문제였던 게 결국 그 문구인지, 아니면 본계약 이후 협의를 신뢰하지 못한 건가요?”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인정했다.


“그렇죠. 결국 그런 셈이죠.”


그의 감정과 판단이 실제 조건의 문제보다 불신에 가까웠다는 게 그 순간 명확해졌다. 이 통화 이후 흐름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침 매수인 측에서는 이미 회장 보고를 앞두고 있었고, 한 번 부결되면 회복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실무자와의 통화가 기억났다.


시간은 많지 않았다. 나는 매도인의 고민을 다시 정리했고, 동시에 매수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프레임을 고민했다. 양측의 판단 구조를 모두 이해한 뒤에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날 밤, 협상 파트너와 긴급하게 조율을 했다. 그 과정에서 두 가지 명확한 전제조건이 도출됐다.


두 가지였다. 매도인은 매수인의 절차를 100% 따른다. 커뮤니케이션은 우리로 일원화한다. 이 둘이 충족되지 않으면 논의 자체가 불가능했다.


나는 이 구조를 있는 그대로 매도인에게 전달했다. 모호함이나 중의적 표현은 모두 제거하고, 선택지를 A/B 구조로 명확하게 제시했다. 이 딜은 더 나은 조건을 얻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지금 이 상태에서 살릴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문제라는 점도 분명하게 설명했다.


처음 매도인의 반응은 절반의 수용이었다. 절차 협조는 가능하지만, 자문사 일원화는 부담스럽다는 입장이었다. 나는 이는 실행 과정상의 커뮤니케이션 정리일 뿐이며, 매도인의 권한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했다. 더 이상의 압박이나 감정적 설득 없이, 사실과 구조를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매도인은 조용히 매수인 측에 메일을 보냈다.


짧지만 핵심은 분명했다.


“선결조건 없이 본계약 절차에 협조하겠습니다.”


그 한 문장은 딜을 다시 움직이게 만든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흐름은 완전히 반전됐다. 11월 20일, 매수인 측 대표와 다시 마주 앉았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사실, 우리는 회장님께 이미 딜을 드랍한다고 보고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면서 드랍 결정을 내린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했다. 선결조건 과다, 그로 인한 절차에 대한 부담감, 그들이 내게 딜을 진행하며 지속적으로 이야기해온 논리였다. 일관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매도인이 선결조건 없이 본계약에 응한다면, 저는 다시 보고를 올릴 수 있습니다.”


너무 고마웠다. 드랍 결정을 한 딜을 다시 살리려면, 매수인 측 대표에게는 논리와 명분이 필요 했다. 이를 위한, 그리고 재검증에 필요한 자료들을 요청했다. 10월 재무제표, 11~12월 예상 매출·매입 자료, 2026년 사업계획 등. 이는 초기 협의한 밸류를 그대로 유지한 채 딜을 재승인받기 위한 기준이었다. 나는 가능한 일정과 프로세스를 설명했고, 자료 준비를 약속한 뒤 회의를 마쳤다. 또 다른 국면의 시작이다.


Antony Gormley《HERE AND THERE》(2002)출처: art-tourism.jp

이번 주를 지나면서 내 안에는 여러 감정이 있었지만, 그중 하나가 유독 선명했다. 이번 한 주는 이 딜을 온전히 내가 지탱하고 끌고 온 시간이었다는 사실이다. 누구도 움직이지 않는 순간에 방향을 바꿔놓았고, 흐름을 다시 살려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과정에서 감정적인 고조는 없었다. 집중했고, 결과와 무관하게 담담했다.


앞으로 이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순하다. 하루하루 정해진 일을 정확하게 하고, 판단해야 할 순간엔 최대한 맑은 상태로 판단하는 것이다. 그 이상은 운과 타이밍, 그리고 상대의 선택에 맡길 수밖에 없다.


이번 한 주는 모두가 포기했던 딜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일주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한 가지를 다시 확인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늘 최선을 다하는 하루뿐이라는 사실, 결과는 그 다음이다.


*안토니 곰리, <Here and There> 공간에 분산된 인간 형상들은 각자 독립적이면서도 하나의 긴장된 관계망을 형성한다. 여기와 저기,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 딜메이커의 위치가 그런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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