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을 찾아가는 시간
8월이었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의 중반 즈음 있을 때였다. 나는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왜 하필 그때였을까 싶지만, 바로 그때였기 때문이었다.
바쁠 때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어지는 건 여유 때문이 아니다. 필요 때문이다. 전부터 미루고 있던 수영을 등록했다. 주 2회 수업만으로는 부족했고, 혼자 연습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유산소 운동을 러닝에서 수영으로 바꿨다. 지금은 자유수영까지 해서 주 4-5회 물속에 있다.
첫 수업, 킥판을 잡고 발차기만 했다. 허벅지가 터져나갈 것 같았다. 20미터를 가는데 숨이 턱까지 찼다. 물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무거웠고, 내 몸은 생각보다 훨씬 무겁게 가라앉았다.
처음 몇 주는 그저 견디는 시간이었다. 물을 마시고, 코에 물이 들어가고, 귀에 물이 차기 일쑤였다. 물속에서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중력도, 호흡도, 심지어 내 팔다리의 무게감도. 하지만 몸은 점점 익숙해졌다. 자유형을 배웠다. 팔을 돌리는 법, 발을 차는 법, 고개를 돌리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배영, 평영, 그리고 지금은 접영을 배우고 있다.
각 영법을 배웠다고 해서 잘하는 건 아니다. 여전히 자유형을 할 때 여전히 하이엘보가 잘 안되고, 배영을 할 때 몸이 기울고, 평영 발차기는 타이밍이 어긋난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물속에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 움직임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물속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동작이 아니었다. 호흡이었다. 지금도 가장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 것이 호흡이다.
수영 호흡에는 어느 정도 가이드가 있다. 자유형은 3박자나 5박자로 호흡하라, 평영은 팔을 당기며 머리를 들어 호흡하라, 배영은 팔이 회전할 때 자연스럽게 호흡하라. 하지만 정답은 없다. 내가 느낀 수영은 상급자가 되려면 반드시 자기만의 호흡법을 찾아야 한다.
호흡이 안 되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팔 동작이 급해지고, 발차기가 흐트러지고, 자세가 일그러진다. 무엇보다 동작 간 여유가 사라진다. 다음 동작을 준비할 틈 없이 허둥대게 된다.
한 달 동안 평영 콤비네이션이 되지 않았다. 팔 동작과 발차기와 글라이딩의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강사님은 호흡을 먼저 편하게 만들라 조언해줬다. 그래서 호흡만 집중해서 연습했다. 킥판 없이, 발차기만으로, 호흡만 반복했다.
어느 날 갑자기 타이밍이 잡혔다. 팔 동작, 발차기, 글라이딩. 한참 갈 길이 먼 초보지만 물속에서 ‘아, 내가 지금 이 동작을 하고 있구나.'란 인식이 생겼다.
물속에서 자유로움은 호흡에서 시작했다.
5개월이 흘렀다. 여전히 나는 초보 수영인이지만, 이제는 물이 조금 덜 낯설다. 물속에서 내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물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환경 중 하나다. 물의 밀도, 부력, 저항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 흐름은 만들어낼 수 있다.
유선형 자세에서 시작하는 내 몸의 자세. 물을 가르는 팔의 각도. 추진력을 만드는 발차기. 그리고 모든 것을 연결하는 호흡. 이것들이 모여 흐름이 된다. 그 흐름 속에서 나는 조금씩 자유로워진다.
2025년 1월, 와이유파트너스를 시작했을 때 우리는 물속에 처음 들어간 것과 같았다. 모든 것이 낯설었고, 무거웠고, 숨이 찼다. 시장이라는 물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우리가 시장에 맞춰야 했다.
딜이 힘들 때가 있었다. 협상이 꼬이고, 숫자가 맞지 않고, 감정적으로 소진될 때가 있었다. 그럴 때 나는 물속으로 갔다. 물은 내 고민을 들어주지 않았지만, 내 몸에 흐름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12월, 우리는 첫 번째 마일스톤에 도착했다. 숫자와 논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시장의 저항을 느낄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물속에서의 감각을 복기해본다. 강제로 물을 이기려 하기보다, 현재의 밀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최적의 각도를 찾는 것. 그것이 와이유파트너스가 딜을 대하는 방식이 되었다. 중요한 건 우리가 물속에서, 시장 안에서, 우리만의 흐름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2026년, 시장에서 만납시다
2026년에도 우리는 시장이라는 물속에 있을 것이다. 여전히 물은 무겁고, 저항은 크고, 호흡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 우리만의 자세를 만들어갈 것이다.
수영 강사가 말했다.
"물은 정복하는 게 아니에요. 함께 움직이는 거예요."
시장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시장을 정복할 수 없다. 하지만 시장 안에서 우리만의 흐름을 만들 수 있다. 우리만의 호흡으로, 우리만의 리듬으로.
이 글을 보는 당신도 어쩌면 지금 물속에 있을지 모른다. 처음 킥판을 잡고 발차기를 하던 그 순간처럼, 숨이 차고 힘들지 모른다. 혹은 한 달째 타이밍이 맞지 않는 콤비네이션을 연습하고 있을지 모른다. 괜찮다. 물은 기다려주지 않지만, 당신의 몸은 배워간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당신만의 호흡을 찾아갈 것이다. 그 호흡이 흐름이 되고, 그 흐름이 자유가 될 것이다.
2026년, 같은 물속에서 서로의 영법을 응원하며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