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YEU Weekly

Episode 1: 분석의 종말, 실행의 시작

2026년 투자업의 변곡점

by 정진

[YEU Partners Insight Series] 정보는 넘치고, 분석은 평준화되었다. 이제 모두가 같은 데이터를 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 차별화될 수 있을까. 와이유파트너스가 찾은 인사이트를 4주간 칼럼을 통해 연재할 예정이다. 완성된 해답이 아닌, 우리가 진행 중인 실험의 기록이다.




지난해 말, 한 소비재 기업의 인수를 검토했다. 우리가 만든 재무 모델 자체는 흠잡을 데 없었다. 3년 치 매출 추이, 카테고리별 마진 분석, 시장 점유율 시뮬레이션까지. 하지만 잠재 투자자와 이 모델에 대한 엄청난 질의응답을 주고받았다.


문제는 모델이 아니었다. 그 회사의 재고 관리 시스템이었다. ERP는 있으되 실제로는 엑셀과 수기 장부가 혼재했다. ERP의 재고금액과 재무제표와의 간극은 직원들이 생성해내는 비정형데이터가 메꾸고 있었다.


우리는 그 기업의 재무제표는 이해했지만, 딜 초기에 그 작동 방식에 대한 스터디에 상당한 시간을 투입했다.

이 경험은 우리에게 하나의 의문을 남겼다. 우리가 정말 잘한 것은 무엇이었나? 재무 모델? 아니었다. 그건 어느 중견 투자사도 만들 수 있는 수준이었다. 우리의 진짜 가치는 그 회사의 작동 방식(Operating)을 이해하고, 그것이 재무제표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읽어낸 것이었다.




정보의 평준화, 역량의 재편

2026년 현재, 투자업계를 둘러싼 환경은 10년 전과 완전히 다르다. 과거에는 정보 접근성이 경쟁력이었다. 누가 더 빠르게 산업 리포트를 입수하는가, 누가 더 정교한 밸류에이션 모델을 돌리는가가 승부처였다. 그러나 지금은 웬만한 산업 분석은 제미나이에서 5분이면 나온다.


더 결정적인 변화는 분석 도구의 민주화다. 고급 통계 모델, 머신러닝 기반 예측, 심지어 복잡한 LBO 모델링까지도 이제 클릭 몇 번이면 돌릴 수 있다. 한때 대형 투자은행의 전유물이었던 분석 역량이 빠르게 상품화되고 있다.


글로벌 플레이어들은 이미 게임의 룰이 바뀌었음을 감지했다. KKR은 2020년부터 'Operational Excellence'를 전면에 내세우며 Capstone이라는 운영 컨설팅 조직을 대폭 강화했다. Blackstone은 포트폴리오 기업들의 IT 인프라 현대화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 같은 부티크 투자사다. 와이유파트너트 역시 소수로 운영되는 팀이다. KKR처럼 100명의 애널리스트를 둘 수도 없고, Blackstone처럼 IT 혁신팀을 꾸릴 여력도 없다. 전통적인 방식대로라면, 우리는 분석 역량에서 영원히 대형 하우스를 따라잡을 수 없다.


그렇다면 포기해야 하는가? 아니다. 오히려 이 상황은 기회라 생각한다.


대형 하우스는 조직이 크고 프로세스가 무겁다. 그들이 투자심의위원회의 복잡한 절차를 거칠 때, 우리는 대표와 애널리스트가 한 방에 앉아 빠른 의사결정을 한다. 그들이 표준 플레이북을 따를 때, 우리는 매 건마다 맞춤형 구조를 설계한다.


하지만 이런 속도와 유연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모두가 같은 분석 도구를 쓰는 시대에, 더 빠르게 분석한다고 해서 본질적인 차별화가 되지는 않는다.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우리는 분석을 더 잘하는 것이 아니라, 분석 이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에 집중해야 했다.


2026년, 와이유파트너스는 한 가지 결정을 내렸다.


우리는 실행 파트너(Execution Partner)가 될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다. 구체적인 역량의 재구성을 의미한다.


첫째, 우리는 루틴한 분석 업무를 과감히 자동화하기로 했다. 재무제표 정리, 산업 리포트 요약, 비교 가능 기업 분석 같은 일들은 이제 기계가 우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한다. 그 시간에 우리는 현장에 나간다.


둘째, 우리는 그 동안 쌓아온 소비재, 실물경제에 대한 도메인 지식을 무기화하기로 했다. 엑셀 시트에는 보이지 않는 바이어의 발주 심리, 시즌별 재고 사이클, 매장별 진열 위치에 따른 매출 변동 같은 것들이야 말로 AI가 쉽게 학습할 수 없는 우리만의 자산이다.


셋째, 우리는 투자 이후에 더 많은 시간을 쓰기로 했다. 피투자사의 레거시 시스템을 현대화하고, 운영 프로세스를 재설계하고, 때로는 우리가 직접 공급망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 자본만 넣고 분기 보고서를 기다리는 방식은 이제 우리 것이 아니다.


윌리엄터너.JPG 《비, 증기, 속도 - 그레이트 웨스턴 철도》윌리엄 터너, 1844


질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 방향이 맞는지, 우리도 확신하지 못한다. 어쩌면 우리는 투자사의 경계를 벗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것은 PE도 아니고 컨설팅도 아닌,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10년 전 방식으로는 앞으로 10년을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윌리엄 터너(J.M.W. Turner, 1775-1851)는 영국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로, 빛과 대기의 효과를 혁명적으로 표현하며 인상주의의 선구자가 되었다. 《비, 증기, 속도 - 그레이트 웨스턴 철도》(1844)는 산업혁명기 증기기관차가 폭우 속을 질주하는 장면을 포착한 말년의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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