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운영 전문성이 다시 무기가 되는가
지난주 우리는 분석의 종말을 이야기했다. 누구나 Bloomberg에 접속하고, 누구나 ChatGPT로 리포트를 쓰는 시대. 전통적 의미의 분석 역량은 더 이상 경쟁우위가 아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남는가?
이전에 있던 하우스에서 투자한 정비 서비스기업을 관리할 때였다. 실적은 깔끔했다. 매출 성장세도 양호했고, 영업이익률도 예상했던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특별한 문제는 포착되지 않았다.
한가지 찝찝했던 지표는 이직율이었다. 정비업의 특성상 지역 고등학교 및 전문학교 졸업 인재를 수급하는 형태가 많았고, 약간의 도제식 교육 방식으로 관리된다. 당연히 정비본부의 연차는 피라미드 형태를 띄고 직원들 나이는 젊다.
가끔식 살펴보던 이 회사 블라인드를 들어가봤다. 알다시피 블라인드는 대부분 불만 글이 올라오는 곳이다. 하지만 불만의 공통점은 찾을 수 있다. 그 회사 게시판을 보니 예상대로 불만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공통된 키워드가 하나 눈에 띄었다.
"밥."
"오늘도 식단 최악", "급식비 아끼나", "점심 먹으러 나가고 싶다". 같은 내용이 반복되었다. 처음엔 사소해 보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사소하지 않았다.
정비서비스업에서 이직률은 곧 생산성이다. 숙련공이 빠져나가면 불량률이 오르고, 신규 채용과 교육에 비용이 든다. 그리고 젊은 공장 근로자들이 회사를 떠나는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월급을 당장 올려줄 수는 없어도, 밥은 바로 바꿀 수 있다.
우리는 구내식당 식단 개선 및 급식 품질 모니터링 시스템 도입을 건의했고, 실행했다.
3개월 뒤, 블라인드 게시판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요즘 밥 진짜 맛있어짐 ㅋㅋ” 완벽하진 않았다. 장점에 “밥만 맛잇음” 이란 글도 보이기 시작했으니.
그러나 그 다음 분기 이직률은 전년 대비 40% 감소했다.
기업가치는 할인율에 의해 결정된다. 할인율은 수익률의 예측가능성에서 나온다. 예측가능한 수익률은 안정적인 매출원가 구조를 전제한다. 그리고 정비서비스업에서 매출원가의 안정성은 곧 사람의 문제다. 재무제표에는 매출원가라고만 나오지만, 그 숫자 뒤에는 매일 출근하는 정비사들이 있다.
최근 자문한 소비재 기업 인수 건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유통 거래였다. 그런데 파고들수록 이 회사의 진짜 가치가 어디 있는지 보였다.
먼저, 유통 구조의 정교함이었다.
정가 판매 → 할인 판매 → 1차 아울렛 → 2차 아울렛으로 이어지는 재고 소화 프로세스가 시즌별로, 품목별로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언제 얼마나 할인할지, 어떤 상품을 어느 아울렛에 배치할지가 모두 데이터와 경험의 조합으로 결정되었다.
이게 왜 중요한가? 패션 업계에서 재고는 시한폭탄이다. 못 팔면 다음 시즌에는 가치가 반토막 난다. 그런데 너무 급하게 떨어뜨리면 브랜드 이미지가 훼손된다. 이 줄타기를 20년 넘게 해온 운영 노하우가 이 회사의 핵심 자산이었다.
다음으로, 대리점 관리 철학이었다.
이 회사 대표는 대리점 출점에 매우 엄격했다. 단순히 자본력이 있다고 주는 게 아니었다. 대표 본인의 운영 철학과 결이 맞는 사람한테만 기회를 줬다.
"왜 이렇게 까다롭게 하세요?"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대리점주가 단기 수익만 보면 브랜드가 무너집니다. 정가 판매 고집하다가 재고 떠안고, 그러면 결국 헐값에 털게 돼요. 그럼 우리 브랜드 이미지는 누가 책임집니까? 저는 10년 함께 갈 사람을 찾습니다."
실제로 그 회사 대리점들의 생존율은 업계 평균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재무제표에는 '가맹점 수라고만 나오지만, 그 숫자에 대표의 철학이 녹아 있었다.
인수 후 통합 과정에서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재무 구조 개선이 아니었다. 대표의 대리점 선별 기준을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가, 20년 노하우를 어떻게 데이터화할 것인가였다. 재무제표에는 안 나오지만, 이게 무너지면 매출도, 밸류에이션도 함께 무너진다.
전문성을 무기화하기
문제는 이런 지식이 내 머릿속에만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대표 1명, 애널리스트 2명으로 운영되는 부티크다. 경험이 체계화되지 않으면, 그건 단지 오래 일한 사람의 감에 불과하다. 다음 세대에게 전수할 수도 없고, 확장할 수도 없다. 더 중요한 건, 나 혼자만 아는 것으로는 조직이 성장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사이트 테이블을 만들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공장 방문 시 봐야 할 것들을 리스트화했다. 창고 정리 상태, 직원 휴게실 분위기, 안전 장비 관리 수준. 유통 채널별 특이사항도 정리했다. 백화점은 어떻게 다르고, 아울렛은 무엇을 봐야 하는지. 재고 상태 판단 기준, 조직문화 평가 포인트까지.
처음에는 막연한 느낌이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언어로 만들고 있다. 또한 실패 사례를 집중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놓쳤던 것들, 잘못 판단했던 것들, 예상 밖의 변수들. 성공 사례는 자랑하기 좋지만, 실패 사례에서 배우는 게 훨씬 많다. 왜 그때 그 신호를 못 봤을까를 반복해서 복기한다.
이 모든 작업의 목표는 하나다. 개인의 역량을 조직의 자산으로 전환하는 것.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무리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노하우를 정리해도, 물리적 한계는 존재한다. 대표 1명이 하루에 방문할 수 있는 현장은 한정적이다. 한 번에 깊이 있게 분석할 수 있는 기업은 많아야 서너 곳이다.
대형 하우스는 팀을 10개로 나눠서 동시에 10개 딜을 진행한다. 우리는? 한 번에 하나씩밖에 못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한계를 돌파할 것인가?
여기서 우리의 선택이 갈린다. 어떤 부티크는 선택과 집중을 한다. 1년에 딜 하나만 제대로 하자는 전략이다. 나쁘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었다. 우리는 소수 정예의 장점은 유지하되, 대형 하우스 수준의 처리 역량을 갖고 싶었다.
모순처럼 들린다. 실제로도 모순이다.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사람을 더 뽑는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애널리스트를 10명 고용하면 부티크의 유연성은 사라진다. 답은 다른 곳에 있었다. 전문성을 증폭시키는 레버리지. 다음 주, 우리가 어떻게 이 모순을 풀어가고 있는지 이야기하려 한다.
*소아마비로 다리를 쓸 수 없었던 여인이 들판을 가로질러 집으로 향한다. 앤드루 와이어스는 이 평범해 보이는 장면 속 풀잎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그려냈다. 겉보기엔 목가적 풍경이지만, 그 이면에는 불굴의 의지와 일상의 고독이 담겨 있다. 재무제표도 마찬가지다. 숫자라는 풍경 너머에는 매일 출근하는 사람들과 20년 쌓인 노하우가 있다. 디테일이 전체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