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이 끝난 뒤에 남는 것들

다음을 위한 기록

by 정진

한참 여러 프로젝트로 바쁘게 지내던 요즘, 작년에 거래가 불발되었던 딜의 매수인 측 대표에게서 연락이 왔다. 저녁 한번 하자고. 삼성동 어딘가의 식당에서 만났다.


거래가 종료된 뒤 상대방이 밥을 먹자고 하는 경우는 두 가지다. 뭔가 얻어낼 게 남았거나, 아니면 진짜 이야기를 하고 싶거나. 이번은 후자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가 먼저 말했다.


"이번 건, 아쉬웠어요."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계속했다. "근데 YEU와 일하는 건 좋았어요. 자료 정리 하나도 안 되어 있던 회사였잖아요. 그걸 다 정리해서 대응한 거, 인상적이었어요."


그가 말을 이었다. "거래 방식도 괜찮았어요. 딜이 흔들릴 때도 감정적으로 안 나오고, 숫자로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런 게 쌓이니까 신뢰가 가더라고요."


우리는 한참 딜 뒷이야기를 했다. 어느 시점에서 고민했는지, 어떤 숫자가 걸렸는지, 실무진은 뭐라고 했는지. 거래 테이블에 앉아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장면들이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그가 말했다.


"올해 한 건 같이 해야겠는데요?"


인사치레일 수도 있다. 하지만 깨진 딜의 상대방이 두 달 뒤 밥을 먹자고 하고, 다음 거래 이야기를 꺼낸다는 건 뭔가 남았다는 뜻이다.



이번 거래가 흔들리기 시작한 지점은 흔히 생각하는 기업가치가 아니었다. 가격은 이미 실무단 차원에서 상당 부분 합의가 되어 있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인력 승계, 잔존 법인의 운영 방식, 향후 사업 구조에 대한 논의가 본계약 이전 단계에서 점점 구체화되기 시작했고, 그것이 매수인 입장에서는 선결조건처럼 읽히는 순간들이 늘어났다. 매도자에게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고, 매수자에게는 인수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한 필수 확인사항이었다. 누구도 비합리적이지 않았지만, 서로 다른 속도와 순서로 같은 거래를 바라보고 있었던 셈이다.


한 차례 감정이 섞인 메시지가 오간 뒤 국면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딜 타임라인과 자료 제공 경과를 다시 객관적으로 공유했고, 매도자 역시 과했던 표현을 인정했다. 그 시점부터 논점은 태도나 조건이 아니라 숫자와 데이터로 이동했다. 이후 몇 주간의 시간은 겉으로 보면 답보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거래가 가능한지를 마지막으로 점검하는 구간이었다.


이 시기 매수인 측은 새로운 요구를 쌓아 올리기보다 기존에 요청한 재무 검증에 집중했다. 가결산 재무제표가 도착했고, 그 안에서는 여러 개선 포인트가 발견됐다. 매출원가 입력 방식, 재고 평가 오류, 과거 계약금 반영 여부 같은 항목들이 하나씩 다시 들춰졌다.


단순히 설명으로 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계정별 원장을 다시 맞추고, 재고 데이터를 입고 연도별로 재분석하며, 동일한 기준으로 숫자를 재구성했다. 방어하기보다 같은 데이터로 함께 검증하는 쪽을 택했다.


커뮤니케이션 역시 구조화했다. 실무 질의는 한 축에서 모아 대응하고, 의사결정 흐름은 다른 축에서 따로 관리했다. 매수인 내부 일정 때문에 최종 판단이 늦어졌지만, 검토 자체가 멈춘 적은 없었다.


의사결정에 필요한 수준의 숫자가 갖춰지는 데 시간이 걸렸다는 점도 냉정히 받아들였다. 돌아보면, 이 구간은 거래가 소멸하는 시간이 아니라,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가장 엄격하게 시험받는 시간에 가까웠다.


동시에 매수인 측의 날카로운 피드백도 있었다. 재무 인프라의 성숙도, 자료 준비 속도, 초기 단계에서의 숫자 완성도 같은 부분은 다음 거래를 위해 반드시 더 단단해져야 할 영역이었다. 거래가 끝난 뒤에야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자문사로서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다시 확인한 원칙들도 분명해졌다. 우리가 판단했을 때 재무 구조가 충분히 준비된 회사만 시장으로 가지고 나올 것, 본계약 이전에는 가격과 구조에 집중하고 사업 운영의 디테일은 단계적으로 다룰 것, 그리고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하나의 창구로 통제할 것. 이런 기준이 있어야 거래가 흔들릴 때도 중심을 잃지 않는다.


Mont Sainte-Victoire, Paul Cezanne, 1895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채, 그날 해야 할 일을 차분히 해 나가는 태도가 결국 가장 강력하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숫자로 돌아오는 것, 상대방의 논리를 끝까지 이해하려는 것,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을 구분하는 것. 이 세 가지가 딜을 단단하게 만든다.


어떤 딜은 성사되고, 어떤 딜은 여기서 멈춘다. 하나의 거래가 끝난 뒤, 다음 딜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졌는가. 이번 프로젝트는 그 기준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 그리고 삼성동 그 식당에서 들은 "올해 한 건 같이 해야겠는데요?"라는 말도 남았다.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은 고향 엑상프로방스 근처의 생트 빅투아르 산을 1880년대부터 사망 직전까지 수십 년간 반복해서 그렸다. 같은 대상이지만 매번 다른 시각, 다른 빛, 다른 구도로 접근하며 형태의 본질을 탐구했다. 세잔에게 이 연작은 완성이 아니라 과정이었다. 어떤 그림도 최종본이 아니며, 모든 그림이 다음 그림을 위한 기록이자 준비였다(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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