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음을 제거하고 시간을 돌려주다
작년 가을, 한 패션 브랜드 대표와 미팅을 했다. 매출 100억 규모의 중견 기업이었다. 디자인 감각이 뛰어나고, 브랜드 정체성도 명확했다. 투자 유치를 검토 중이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내가 물었다.
"바쁘죠." 그가 답했다. "이번 주에만 신제품 기획 미팅, 대리점 계약, 실적 보고서 작성, 은행 미팅..."
"그중에 대표님이 직접 해야 하는 일은 몇 개입니까?"
그가 잠시 생각했다. "신제품 기획이요. 나머지는... 사실 누가 좀 해줬으면 좋겠어요."
"특히 어떤 게 제일 짜증나세요?"
"월마감자료.." 그가 한숨을 쉬었다. "매달 말일 되면 회계팀에 자료 요청을 해서, 엑셀로 정리하고, 그래프 만들고... 이틀은 그냥 날아가요. 그 시간에 매장 돌아다니든지, 신제품 구상을 하든지 해야 하는데."
나는 물었다. "만약 그 이틀을 다시 돌려드린다면요?"
"당연히 디자인해하죠. 그게 제 일이잖아요."
모든 회사에는 두 종류의 일이 있다. 본업과 잡음.
본업은 그 회사가 존재하는 이유다. 패션 회사라면 디자인과 브랜딩. 제조사라면 생산 기술과 품질. 유통회사라면 물류와 채널 관리. 이건 대체 불가능하다. 대표와 팀이 가장 잘 알고, 가장 잘 해야 하는 일이다.
잡음은 회사를 운영하려면 필요하지만, 가치를 직접 만들지는 않는 일이다. 데이터 정리, 보고서 작성, 실적 취합, 자료 찾기. 이건 누가 해도 되지만, 현실에서는 대표나 핵심 인력이 한다. 시간이 없으니까.
문제는 잡음이 점점 커진다는 것이다. 회사가 성장할수록 데이터는 늘어난다. 매장이 10개에서 30개로 늘어나면, 취합해야 할 자료도 3배다. 거래처가 늘고, 재고가 복잡해지고, 관리 포인트가 많아진다. 그러면 대표는 선택해야 한다. 본업을 할 것인가, 잡음을 처리할 것인가.
대부분은 잡음을 택한다. 왜? 당장 급하니까. 내일 이사회 보고가 있는데 자료가 없으면 안 되니까. 그렇게 본업은 뒤로 밀린다.
우리는 모든 산업의 전문가가 아니다. 패션을 디자이너보다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제조를 현장 기술자보다 잘 아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본업에서는 우리보다 100배 전문가다.
우리가 아는 건 다른 것이다. 어떤 잡음이 본업을 방해하는지, 그 잡음을 어떻게 제거하는지. 업종이 달라도, 회사 규모가 달라도,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들이 있다. 데이터가 엑셀, 이메일, 문서에 흩어져 있다. 필요한 자료 찾느라 시간을 쓴다. 보고서를 매번 손으로 만든다. 문제를 너무 늦게 안다. 이건 패션이든 제조든 유통이든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건 우리가 푸는 문제다.
Episode 2에서 만든 인사이트 테이블, Episode 3에서 설계한 AI IB 에이전트. 이것들의 목적은 하나다. 대표가 본업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
구체적으로 우리가 하는 일은 이렇다. 흩어진 매출, 재고, 인건비 자료를 한곳에 모아서 표준화한다. 찾는 시간을 없앤다. 매달 이틀씩 쓰던 실적 보고서 작성이 사라진다. 시스템이 자동으로 만들고, 대표는 검토만 한다. 함께 설정한 목표를 추적하는 모니터링 워크플로우를 만든다. 매출 목표, 재고 회전율, 대리점 성과, 원가율. 이상하면 알린다. 분기 보고를 기다리지 않고 주간 단위로 체크한다. 문제가 커지기 전에 전화한다.
이건 업종을 안 가린다. 패션이든 제조든 음식이든, 모든 회사는 재무를 관리하고, 목표를 추적하고, 데이터를 정리해야 한다. 우리는 그 공통 영역을 담당한다.
Episode 3에서 말했듯이, 우리 시스템은 아직 개발 중이다. 그리고 완성돼도 완벽하지 않을 것이다. AI가 모든 위험 신호를 잡아낼까? 아니다. 어떤 건 놓친다. 어떤 건 오판한다.
그런데 그게 중요한가? 전에는 대표가 직접 모든 데이터를 봤다. 100% 봐야 했다. 이제는 시스템이 70%를 걸러낸다. 대표는 나머지 30%만 본다. 완벽하지 않아도, 70%만 걸러줘도 엄청난 가치다. 시간이 70% 줄어든다. 그 시간에 본업을 한다. 우리는 루틴을 덜어낸다. 중요한 대화에 집중하게 만든다.
고객 입장에서는 우리가 매일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 실제로는? 시스템이 매일 돌아가고, 우리는 필요할 때만 나타난다. 이게 우리가 생각하는 Operational Partner다. 조언만 하는 게 아니라, 환경을 만든다. 감독만 하는 게 아니라, 함께 작동한다. 문제 해결만 하는 게 아니라, 문제가 생기기 전에 움직인다.
매각자문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첫 달에 데이터를 정리한다. 흩어진 실적 자료를 모으고, 표준화하고, 자동 리포트를 만든다. 왜? 매수자가 실사할 때, 데이터가 잘 정리된 관리가 잘 되는 회사 란 첫인상이 너무 중요하다. 반대로 데이터가 엉망이면, 매수자는 불안해하한다. 경영 진단도 마찬가지다. 진단 결과를 보고서로만 주지 않는다. 시스템을 남긴다. 우리가 떠난 후에도, 기업이 스스로 모니터링할 수 있게.
이 방식을 지금 검증하고 있다. 그리고 펀드가 만들어지면, 똑같은 방식으로 포트폴리오를 관리할 것이다.
우리와 일하는 기업은 무엇을 받는가? 시간을 돌려받는다. 데이터 찾기, 보고서 작성, 실적 정리에 쓰던 시간. 그 시간에 본업을 한다.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영업은 영업을, 생산은 생산을. 적시성을 얻는다. 분기 보고 기다리지 않는다. 문제가 신호로 나타날 때 안다. 재고가 쌓이기 시작할 때, 매출이 떨어지기 시작할 때. 대응할 시간이 생긴다. 환경을 받는다. 창작자가 창작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 유통이 유통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 잡음이 제거된, 본업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 그리고 파트너를 얻는다.
투자 시장에서 돈은 이미 상품화됐다. 밸류에이션 방법론은 표준화됐다. 계약 구조도 비슷하다. 결국 경쟁은 조건으로 간다. 누가 더 높은 가격을 쳐주는가. 하지만 기업이 진짜 필요한 건 조건이 아니다. 투자받은 후, 또는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 무엇이 남는가.
돈은 쓰면 사라진다. 조언은 기억에서 희미해진다. 네트워크는 연락이 끊기면 끝이다. 남는 건? 시스템이다. 환경이다. 대표가 본업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구조다. 우리는 그걸 남긴다.
Episode 1에서 말했듯이, 분석보다 실행이 중요한 시대다. Episode 2에서 강조했듯이, 데이터보다 현장이 답을 준다. Episode 3에서 설명했듯이, 전문성은 확장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오늘의 결론은 이것이다. 기업에게 필요한 건 조언이 아니라 환경이다. 감독이 아니라 파트너다. 돈이 아니라 함께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우리는 그걸 만들고자 한다.
*콘스탄틴 브랑쿠시(Constantin Brâncuși, 1876-1957)는 루마니아 출신의 조각가로, 20세기 모더니즘 조각의 선구자다. 《공간 속의 새》(Bird in Space, 1923)는 그의 대표작으로, 새의 구체적 형태—깃털, 부리, 발—를 모두 제거하고 비상이라는 본질만을 추출한 작품이다. 황금빛 청동의 유선형 조각은 하늘로 치솟는 순수한 운동성을 표현하며, 극단적 단순화를 통해 오히려 더 강렬한 생명력을 전달한다. 브랑쿠시는 불필요한 것을 제거했을 때 진정한 아름다움이 드러난다고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