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금융 강의를 시작하며 (1편)
홍익대학교 외래교수로 임용이 되며, 이번학기 혁신금융을 주제로 한 강의를 새롭게 맡게 되었다. 강의 준비를 하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질문은 기술이 아니라, 금융의 본질이었다. 인공지능이 투자 판단을 대신하고, 블록체인이 계약의 신뢰를 자동으로 보장할 것이라 말하는 시대, 우리는 정말로 금융의 본질을 확장하고 있는가, 아니면 기술에 외주를 맡기며 오히려 본질로부터 멀어지고 있는가.
이 질문을 강의의 출발점으로 삼은 데는 이유가 있다. 최근 몇 년간 금융 혁신이라는 말은 종종 속도의 경쟁으로 오해받았다. 알고리즘은 더 빠르게 신용을 평가하고, 핀테크는 결제의 시간을 단축한다. 그러나 속도의 경제학이 본질의 경제학을 대체할 수는 없다. 금융은 언제나 신뢰 기반의 비즈니스이며, 이 산업의 기초는 기술이 아니라 원리다.
변하지 않는 것: 금융의 본질은 고정값
금융의 본질은 세 가지 메커니즘으로 압축된다. 자금의 융통, 신뢰와 리스크에 기반한 가격 결정, 그리고 정보 비대칭의 해소. 이 세 축은 수백 년의 금융 역사를 관통하는 불변의 구조이며, 어떤 기술도 이것을 대체하거나 무력화한 적이 없다. 기술은 이 축 위에서 작동하는 도구일 뿐이다.
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사례가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다. SVB는 장기 채권에 과도하게 쏠린 자산 구조와, 기술 스타트업에 집중된 예금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금리가 급격히 오르자 채권 평가손이 커졌고, 유동성 압박에 내몰린 고객들은 순식간에 예금을 인출했다. 디지털 채널 덕분에 뱅크런은 불과 몇 시간 만에 현실이 되었다.
사태의 근원은 AI 모델의 미비나 블록체인의 부재가 아니었다.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소홀해진 전통적인 자산·부채 관리의 원칙, 즉 만기 불일치와 감독 책임의 부재였다. 기술은 SVB를 더 빠르게 무너지게 했을 뿐, 위기의 씨앗은 고전적인 리스크 관리의 실패에 있었다. LTCM의 붕괴에서 SVB까지, 반복되는 교훈은 하나다. 모델의 정교함이 신뢰의 불안정성을 구할 수는 없다.
기술이 본질을 확장할 때: JP모건 Kinexys의 교훈
그렇다고 기술의 역할을 부정할 이유는 없다. 다만 기술이 무엇을 위해 쓰이느냐가 문제다. JP모건의 블록체인 기반 결제 인프라, Kinexys(구 Onyx)는 좋은 대조를 제공한다. 이 플랫폼은 가상자산 실험이 아니다. 기존 은행 예금을 토큰화하여 전 세계 자금을 실시간으로 이동시키는 인프라로 설계되었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 플랫폼 위에서 주말과 공휴일 없이 24시간 자금을 이체하고, 중개 기관을 거치지 않고도 결제를 완결한다. 기술의 언어는 블록체인이지만, 그 목적은 자금의 원활한 융통과 신뢰 가능한 결제. 즉, 금융의 가장 고전적인 기능을 더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기술이 본질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더 본질답게 구현하는 방향으로 쓰이고 있다.
두 사례는 같은 질문을 다른 방식으로 답하고 있다. 기술은 금융의 본질을 지켜주지도, 스스로 무너뜨리지도 않는다. 다만, 본질에 대한 질문을 얼마나 치열하게 던지느냐에 따라 같은 기술이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이것이 내가 혁신금융 강의의 커리큘럼에 전통금융의 원리를 가장 먼저 배치한 이유다. 기존 금융 시스템인 IB, 브로커리지, M&A, 자산운용 등의 작동 원리와 조직 생태계를 이해하지 못한 채 추진하는 혁신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데이터가 어디서 흐르고, 어디서 비효율이 발생하는지를 알아야만 기술이 침투할 틈을 발견할 수 있다.
빠름보다 깊음을, 새로움보다 지속가능함을 먼저 고민하지 않는다면 기술은 혁신의 이름으로 본질을 가리게 된다. 금융의 미래를 묻는 것은, 결국 그 본질을 얼마나 본질답게 이어갈 수 있느냐의 문제다.
*수직선과 수평선, 그리고 빨강·파랑·노랑의 삼원색과 흰 여백으로만 구성된 작품이다. 몬드리안은 이 양식을 신조형주의(Neoplasticism)라 명명했으며, 자연의 외형을 재현하는 대신 조형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선과 색만으로 보편적 질서를 표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