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의 지도, 혁신금융 커리큘럼의 구성 논리

혁신금융 강의를 시작하며 (2편)

by 정진

지난 편에서 하나의 명제를 제시했다. 금융의 본질인 자금의 융통, 리스크의 가격화, 정보 비대칭의 해소는 고정값이고, 기술은 그 본질을 구현하는 변수라는 것. 그렇다면 질문은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본질을 이해하는 것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혁신금융 강의의 커리큘럼을 구성할 때, 나는 그것을 하나의 지도를 그리는 것을 상상하며 접근했다. 자본시장이라는 복잡한 생태계 안에서 자금이 어떻게 흐르고, 리스크가 어떻게 가격화되며, 정보의 비대칭이 어떤 방식으로 해소되는지를 직접 그려보지 않은 사람은 기술이 어디에 침투해야 하는지를 알 수 없다. 커리큘럼의 각 파트는 그 지도 위의 좌표들이다.




커리큘럼의 첫 번째 파트는 주식(Equity)과 채권(Fixed Income)으로 구성된다. 두 자산군을 나란히 배치한 것은 단순한 분류가 아니다. 자본시장에서 자금이 공급자와 수요자를 어떻게 연결하는지를, 직접금융의 두 축을 통해 대비적으로 이해시키려는 의도다.


주식시장에서는 알고리즘 트레이딩과 AI 기반 종목 선정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기계가 대체하는 것은 반복적 판단이지,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읽는 맥락적 해석이 아니다. 채권시장도 마찬가지다. 데이터가 신용 평가의 속도와 정확도를 높여주지만, 신용의 본질은 여전히 채무자의 상환 의지와 능력에 대한 신뢰 판단이다. 기술이 효율을 만드는 지점과 한계에 부딪히는 지점을 동시에 이해하는 것, 이것이 이 파트의 핵심 질문이다.


두 번째 파트는 대체투자, 회계, 법률로 구성된다. 이 세 영역을 하나의 축으로 묶은 이유는 내가 경험한 대체투자분야는 리스크를 계산이 아니라 판단으로 가격화하는 영역이었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동산이나 인프라 같은 대체자산에는 시장이 실시간으로 매기는 가격이 없다. 따라서 실사와 가치 평가는 데이터의 집계가 아니라 전문가의 판단력에 의존한다. 회계사는 숫자로 기업 가치의 본질을 포착하고, 변호사는 계약의 구조로 리스크를 배분한다. 두 직역이 하는 일은 표면적으로 달라 보이지만, 본질은 같다. 불확실성에 가격을 매기는 것이다.


AI가 감사 자동화와 계약 검토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비정형적 리스크를 구조화하는 판단은 여전히 인간의 경험과 직관에 기댄다. 어떤 조항이 거래의 본질적 리스크를 담고 있는지, 어떤 숫자가 회계라는 언어 뒤의 실질을 드러내는지를 읽어내는 것은 아직 기술이 쉽게 대체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기술이 이 영역에서 해야 할 일은 판단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더 빠르고 정확하게 제공하는 것이다.


세 번째 파트는 사모펀드(PE)와 벤처캐피털(VC)이다. 상장시장과 달리 사모시장은 정보 비대칭이 가장 극단적으로 작동하는 영역이다. 투자자와 피투자기업 사이의 정보 격차가 크고, 표준화된 시장 데이터가 없으며, 가치 판단의 기준이 매 거래마다 달라진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혁신의 여지도 가장 크다.


PE에서 기술의 역할은 단순한 분석 효율화를 넘어선다. AI 기반 실사 도구는 수백 개의 문서를 단시간에 분석하고, 비재무적 리스크 신호를 포착하며, 포트폴리오 기업의 운영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한다. 이것이 자본 투입을 넘어선 Operational Alpha의 핵심 도구가 되고 있다.


VC에서는 스타트업의 성장 가능성을 판단하는 기준 자체를 데이터화 하려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창업자의 네트워크, 시장 확장 속도, 기술 스택의 희소성처럼 정성적이었던 투자 판단의 변수들이 점차 선도적인 VC를 중심으로 정량적 언어로 번역되는 중이다.


그러나 이 영역에서도 기술의 역할은 정보 비대칭을 좁혀주는 것이지, 판단의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다. 최종적으로 투자를 결정하는 것은 데이터가 아니라, 그 데이터를 해석하고 불확실성을 감수하는 심사역이다.


Piet Mondrian, Broadway Boogie Woogie 1942–43, 출처: MoMA


지도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기술은 지도를 그려주지 않는다. 지도를 읽는 법을 가르쳐주지도 않는다. 본질을 이해한 사람만이 자본시장이라는 역동적이지만 보수적인 생태계 안에서 혁신의 좌표를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강의를 통해 학생들이 AI를 다루는 기술자가 아니라, 본질을 직시하며 기술을 도구로 다룰 줄 아는 혁신가로서 성장하길 바란다.


*몬드리안의《브로드웨이 부기우기》(Broadway Boogie Woogie, 1942-43)는 그가 뉴욕으로 이주한 후 맨해튼의 거리 구조와 재즈 음악의 리듬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말년의 걸작이다.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대도시를 수직과 수평의 격자, 그리고 율동하는 색면으로 추상화하며 뉴욕의 본질인 에너지, 흐름, 구조를 포착했다. 이 작품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도시를 읽는 하나의 지도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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