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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 Jul 16. 2023

유머, 배려, 적당한 거리감

우리를 아름답게 만드는 요소들

"저보다 연배가 높으신 분들과 여행을 계획하며 물리적으로 조금 바쁠 수 있겠단 생각은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도 힘든 건 없었습니다. 우리 사이에는 유머가 흐르고 있었고, 서로에 대한 배려가 있었습니다. 특히 버스가 퍼진 상황에서 4시간을 대기했던 시간은 놀라웠습니다. 중심을 잡아 주신 어른들의 유머와 배려가 빛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빈 분리파 전시관 시세션(Secession) 지하의 클림트 베토벤 프리즈를 본 직후 향했던 베토벤 하우스에서 느꼈던 희열은 잊을 수 없을 겁니다. 이렇게 좋은 어른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비엔나에서 뮌헨에서 마지막 일정을 마치고 함께 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등 떠밀리듯 나가 횡설수설 했던 내 건배사다. 내용은 사실이다.  




오스트리아 알프스 최고봉인 그로스글로크너(Grossglockner)를 보기 위해 우리 일행은 버스를 빌려 해발 2,571m까지 이어지는 하이 알파인 로드(High Alpine Road)를 굽이굽이 올라가고 있었다. 그 중턱 즈음 어딘 가에서 버스가 갑자기 멈췄다. 엔진이상 경고등이 들어와서 였다. 센스 만점이었던 독일인 기사가 다행히 갓길이 아닌 벤치와 테이블이 있는 공간을 찾아 차를 세웠다. 날씨가 무척 좋았기에 우리는 차에서 내려 7월 알프스의 시원한 햇살을 만끽하고 있었다.  


기사는 리무진 버스 본사와 통화를 하고, 엔진 점검을 할 수 있는 엔지니어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스페어 버스를 요청했다. 예상 대기 시간은 1-2시간 사이. 누가 나설 것도 없이 시니어들 위주로 선물용으로 산 와인과 샴페인을 가지고 나왔다. 리무진 버스에 준비가 되어있던 와인잔들, 그리고 몇 가지 안주를 깔아 놓으니 피크닉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심각한 이야기, 불평 불만은 암묵적인 금기어라는 모종의 합의가 있던 것처럼, 어르신들 주도하에 왁자지껄 수다 한 판이 이어지고 약간의 취기를 용기삼아 누군가 노래를 틀었다. 제목은 서유석의 '넌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이런 노래가 언제 있었나 싶었다.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춤추고 웃고 떠들었다. 알프스 뒷 배경만 지우면 경기도 포천 계곡 평상에 백숙한상 앞에 두고 거나하게 취한 고등학교 동창회 분위기였다.  


*저 멀리 산 중턱 어딘가의 멈춰선 버스 2023년 7월 5일


*잊을 수 없었던 스파클링와인 Porta Leone 의 Prosecco


대기 시간은 연장에 연장을 거듭해 결국 새 버스가 우릴 태운 건 4시간 후였다. 하지만 그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이날의 경험에서 유머와 배려를 뺐더라면? 아마 이날 4시간이 2주 간의 분위기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아마도 좋지 않은 방향으로.   



"The only thing I do know is that we have be kind. Please, be kind, especially when we don't know what's going on."

"내가 아는 유일한 건 우리가 친절해야 한다는 거야. 친절하게 대해줘. 특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를 때 말이지"

-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에서 Waymond 의 멋진 대사



*그림은 DALL-E로 만들어본 Grossglockner의 우리


상황이 좋은 방향으로만 흘러갈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멋진 태도는 유머가 있는 배려라는 생각을 한다. 상대에 대한 적당한 긴장감 없이는 나올 수 없는 부분도 이기도 하다. 결국 유머, 배려, 적당한 긴장감은 좋은 인간관계를 만드는 요소 아닐까. 금융시장, 특히 요즘 들어 느끼는 조직의 분위기는 시니컬하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투자라는 본질과 점점 멀어져가는 생각이 들 때, 그리고 시니컬한 상대방을 향해 주문을 한번 더 외워야겠다. '유머', '배려', '적당한 거리감'. 그러면서도 제리 맥과이어의 You had me at "hello" 같은 상황을 바라는 것은 항상 함께하는 로망의 영역으로 남겨두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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