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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 Jul 23. 2023

경계선까지 가보기

업무 너머에서 느끼는 우연한 발견

2016년 화려하게 등장한 골프웨어 브랜드 F. 프리미엄 브랜드 인지도를 구축하며 골프 브랜드로서 여러 팝업스토어를 거쳐 시장의 인정을 받는 척도기도 한 신세계 강남점까지 입성한다. 이 시기 투자 유치도 하여 이젠 매출액이 100억원이 훌쩍 넘는 기업이 되었다. 대표 본인이 인플루언서가 되어 팬덤을 형성했고, 직접 모델이 되어 밤낮없이 일했지만 기업의 성장주기에 맞는 회사의 구조, 경영자가 갖추어야 할 기본기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그래서 골프의류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임원들을 영입했고, 경영자로서의 미래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브랜드 F의 시즌2기도 한데, 시즌2 에피소드를 최종화까지 제작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곧 '돈'.




지인의 지인을 넘어 저 멀리 강남에서 올림픽대로를 타고 여의도에 있는 정진에게 연결이 되었다. 간단한 통화와 함께 회사 소개자료를 건네 받았다. 회사의 재무제표를 통해 골프의류업계의 원가율(높은 매출총이익율)에 놀랐고, 이 엄청난 마진을 신세계 현대백화점 같은 유통 큰형님들의 카리스마 (높은 판매수수료, 낮은 영업이익율)도 목격했다. 여기에 차입금이 더해지니 실제 회사의 운영자금은 빠듯하게 돌아가는 편이었다. 다행히 만드는 족족 판매가 잘되어서 재고 회전율이 빨랐고, 또 재고가 없다 보니 아울렛 매출이 없는 노세일 브랜드로서 이미지가 우연히(?)형성 되가는 중이기도 했다.


자 그럼 투자를 하면 되지 않겠느냐.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차입금을 상환시키고 해외 매출(이 브랜드는 외국국적의 대표가 직접 해외영업을 한다)이 이제 막 발생하기 시작했으니 여기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운영자금(인력채용, 현지 마케팅비 등)을 다 더해도 필요한 투자금액은 약 50억원 정도였다. 우리 같은 기관전용사모펀드(PEF)는 펀드를 조성해서 투자를 해야 하는데, 펀드 규모가 1,000억원이든 50억원이든 들어가는 품은 별반 다르지 않게 들어가기에 투자규모로 보면 매력도가 떨어진다. (우리의 임대료, 기본급 등 평소 회사운영비용은 펀드 규모의 약 2% 수준인 관리보수에서 나온다)


작년 정도였으면 검토는 여기서 멈췄을 것 같다. 그러나 올 해 들어 나만의 업무방침이 능력과 네트워크가 허락하는 한에서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보자는 쪽으로 머리와 가슴이 움직이고 있었다. 나름의 조건은 있다. 우리 팀 프로젝트 스케줄에 지장을 주지 않고 팀 리소스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전제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의 업무경계선에서 고민하는 경우는 대부분 대표님께 뭔가 하나라도 배울 수 있는 게 있다는 판단이 들 때였다. 브랜드 F의 대표님이 그랬다. 회계법인 컨설턴트 출신이었던 Y대표님은 옷이 너무 좋아 회계법인 업무를 하며 패션 블로그를 운영했고 이게 쇼핑몰로 발전을 했던 케이스다. 본인이 좋아하는 스타일로 골프 의류를 만들고 싶어 브랜드 F를 창업했던 스토리를 다 들었을 때는 절로 박수가 나왔다.


주말에 빈 ppt를 띄워 놓고 내가 생각하는 몇 가지 포인트로 생각을 채워나가니 간단한 4-5페이지 티저(Teaser)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우리 하우스 이름으로 펀드를 조성하는 것 보다는 골프 브랜드 포트폴리오가 필요한 기업(전략적투자자)을 연결시켜주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내 네트워크를 넘어서는 부분은 고마운 지인들이 종종 잠재 투자자 또는 키맨들을 연결 해줬고 이들을 통해 또 다른 인연의 시작점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Serendipity, 뜻밖의 발견


예전 뉴욕타임즈에서 왜 사람들이 재택근무를 마치고 오피스에 나와야 하는지에 대한 기사를 본적이 있다. 모든 내용이 기억나진 않지만 그 기사에서 강조한 개념이 Serendipity였다. 자꾸 사람들은 만나야하고 부딪혀야하고 대화해야한다는 메세지였다. 브랜드 F.의 케이스에서는 업무 경계선에서 망설임을 느끼다가 한발 더 나아가게 되면서 새로운 생각과 감사한 인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 경계선은 마치 트루먼 쇼의 트루먼이 느꼈던 세상의 끝처럼 느껴졌다. 경계선 너머에서 어떤 경험을 하게될 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그 경계선 너머의 일들이 주는 새로움은 또 다른 인생의 발견이기도 하니까.


*그림은 DALL E 로 그려본 트루먼쇼 세트장의 끝 바다 너머의 수평선, 그림 제목은 ‘오즈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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