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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 Dec 10. 2023

달콤한 마음

행동에 베어나오는 맛

또 귀차니즘 병이 돋았다. (구체적으로 언급하기엔 글의 주제와 맞지 않은) 치일 피일 미뤄왔던 과제들 때문이다. 복잡해진 상황에 숨이 턱 막혔던 하루의 시작이었다. 나의 덜렁거림이 싫을 때, 딱 이럴 때 내가 평소 귀찮게 생각했던 사소한 일들을 '일부러' 처리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래 오늘 꼭 하지 않아도 되지만, 하면 좋은 사소한 것들에 대한 세밀함을 한번 실천해보자. 그래서 선택한 것이 결제 변경이었다. 어제 동료와 커피 한 잔 할 때 쓰임새가 좋은 카드 사용을 깜빡했던 것이다. 평소 같으면 굳이 하지 않았을 일이다. 얼추 오전의 불편한 상황들을 정리하고, IFC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결제 변경을 하고 싶습니다." 


비장한 목소리로 핸드폰에 있는 카드 영수증을 보여줬다.  


"아 잠시만요? 띠 띠 띠 띠 …"  


너무 오래 걸린다. 앳된 얼굴의 아르바이트생이 단말기 사용이 서툴렀던 모양이다. 결국 매니저로 보이는 직원이 와서 수습을 한다. 


"이 시간대 결제 내역이 많아 시간이 조금 걸리네요. 죄송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아차, 결제 시간을 보니 12:10분. 여의도의 특징 중 하나인데, 수 많은 사람들이 빌딩에서 밀물처럼 빠져나와 왠만한 식당은 11시 30분도 안되어 꽉 찬다. 허겁지겁 식사를 하고 킬리만자로의 표범 같은 속도로 커피를 갈구하며 카페 자리를 채워 나간다. 그 시간대 여기서 결제한 사람만 해도 수십명은 될 것 같았다.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진다. 


 "아 괜히 왔나…"  


오픈 준비로 분주한 시간 같은데 내 앞의 카페 직원에게 괜히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조금 있으면 킬리만자로의 표범들이 몰려들어올 시간이 되어가는데 말이다. 그들에겐 이 시간이 하루 중 유일하게 편한 시간이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드디어 결제 내역을 찾은 것 같다. 다시 한 번 결제 시간, 카드 정보를 확인 후 재결제가 이뤄졌다. 그래, 귀찮아도 이렇게 꼼꼼히 할 일은 해야 한다는 다짐을 다시 해본다. 카페 직원에겐 좀 미안했지만. 


"감사합니다. 저 때문에 괜히 고생하셨네요." 


멋쩍은 웃음을 한번 비추고 돌아서려는 순간,  


"저기, 이거…" 


카페 매니저가 생긋 웃으며 작은 쿠키 하나를 건넨다.  


"너무 기다리셨죠, 죄송해요" 


"아니 오히려 귀찮게 한 거는 전데요. 근데 이런 걸 다" 


"아녜요 맛있게 드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그 공백의 시간 동안 서로 미안해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쿠키를 반으로 쪼개 한입 넣었다. 달달하다. 그런데 이 달달함이 좀 심오하다. 오늘 오전 약 한두시간의 감정선을 복기해본다. 처음 불편했던 감정을 지나, 이날의 분위기를 반전시킬 작은 행동 한 방울을 떨어뜨렸고, 지금 이 묘한 달콤함을 느끼고 있다.  



그 카페 매니저의 웃음과 이 작은 쿠키 하나로, 하루의 분위기가 반전된 듯 하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맛이, 서로의 선한 마음의 접점에 생긴 달콤한 감정을 맛으로 표현한 것 아닐까. 예측하기 힘든 눈앞의 상황에 대해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그 마음이 손끝에서 시작하는 내 행동으로 베어 나오고 이게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다시 확인한 하루다. 그 행동은 상대에게 어떤 맛을 남기기도 한다. 



*사진은 DALL-E로 만들어본 달콤한 마음.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행동에 오늘 하루 자연스러운 친절함이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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