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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 May 12. 2024

무색 무취함의 이유

무색 무취함이 어울리는 업業

내 기준이지만 H대표님은 이커머스 비즈니스에서 스트리트파이터 바이슨 같이 끝판왕 격인 사람이다. 모나코 그랑프리를 다니는 자동차 마니아이자, 버섯 재배에 관심이 많아 본인 사업을 하며 버섯 농가에서 4년간 인턴을 했다. 지금은 초기 사업을 정리하고 버섯으로 친환경소재를 만드는 기업을 창업했다. 정말 뭐 하나에 꽂히면 끝장을 보는 사람 같다. 어제 점심식사를 하며 한시간 넘게 입을 다물지 못하고 버섯과 방선균, 테르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H대표같이 한 분야에 몰입하는 사람에게서 큰 영감을 얻는다. 




그러나, 나는 왜 이렇게 꽂히는 분야가 없을까? 금융사 동료들 중 스타트업에 합류하는 동료들이 늘어날 때 즈음 했던 생각이다. 나는 정규 분포 안에서 자라왔고, 육각형 레이더 차트를 그려도 원형이 나올 것 같은 사람이라 생각해왔다.  


20년 넘게 리테일 비즈니스 분석해온 컨설턴트와 3시간이 넘는 미팅의 끝자락에서, 원형 레이더차트 같은 나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해줬다. 그녀의 대답이다.  


"'저는 취향이 뭐냐, 취미가 뭐냐, 제일 좋아하는 것이 뭐냐' 이런 질문을 받을 때 곤란해요. 저는 무색 무취거든요. 그 때, 그 상황에서 좋아하는 취향이 있다가 또 달라지기도 해요." 


"저는 소비자의 트렌드를 봐야 해요. 제게 뭔가 강한 취향과 특징이 없었기에 다양한 고객들의 니즈를 이해하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시대의 흐름을 관찰할 수 있었다고 봐요."


Ugo Rondinone, SUN 3, 2019, 내 원형 레이더 차트의 모습이었으면


그녀의 말에 진심으로 공감을 했다. 사모펀드(PEF)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나는 무색 무취할 수록 산업에 녹아들기 쉽다. 내가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과 함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이유, 감사하게도 나를 찾아주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나의 무색 무취한 유연함 때문 아닐까. 소비자로서, 투자자로서 경험은 쌓여가지만 취향이 생기지 않았던 이유. 내가 나를 애매하게 생각했던 이유는 내가 항상 변화하는 상태였기 때문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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