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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 Sep 26. 2022

우리의 시간은 정직할까요?

다녀온 (끝난) 전시 / 김아영 - 문법과 마법


안녕하세요.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시간이 너무나 많이 지나가 있는 경험을 해 보셨나요? 먼 길을 가기 위해 시간을 거스르는 장거리 비행을 하거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방 안에 갇혀 있거나, 신기록을 달성해야 하는 스포츠의 경기 등, 여러 상황에서 우리를 앞서 빠르게 흐르는 시간을 따라잡으며 살아가는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시간은 정직한 속도와 개념으로 흐를까요?


삼청동 소재의 갤러리현대에서 지난 9월 14일 막을 내린 김아영의 개인전 <문법과 마법>에서는 무거워지는 시공간과 느리게 흐르는 속도로 인한 문제적 세계를 연출합니다. 영상과 몇 가지 설치 작업으로 구성된 ‘딜리버리 댄서’의 시공간에 라켓과 함께 방문해 보세요.


편집/이미지 '보보' , 디자인 '임그노드' , 디렉팅 '해리'




고스트 댄서 A, Ghost Dancers A. 

문법과 마법 전시 전경 ©김아영, 갤러리현대, LARKET 촬영

<문법과 마법>의 배경이 되는 세계관 속에는 여성 배달 라이더 ‘에른스트 모(Ernst Mo)’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에른스트 모. 언뜻 철학자의 이름 같기도 한 이 명칭은 Monster의 ‘철자 바꾸기 - 애너그램’을 통해 탄생하였습니다. 주인공 에른스트 모는 테크노 오리엔탈리즘과 아시아 퓨처리즘 사이에 놓인 가상의 도시 서울에 살며,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배달 플랫폼인 ‘딜리버리 댄서(Delivery Dancer)’의 소속라이더입니다.


이 플랫폼을 관리 감독하는 마치 신과 같은 ‘댄스 마스터 (Dancemaster) 가 있고, 그 아래에서 동선과 충성도 등을 제공하는 배달부들은 ‘댄서’라 불립니다. 난데없이 왜 ‘댄스’가 나왔는지 궁금한가요? 멋진 헬멧을 쓰고 미래 지향적인 유니폼을 입은 채로 초고속 바이크 위에서 몸을 잔뜩 숙인 채로 도시의 여러 구역과 시공간을 비집고 이리저리 다니는 배달부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마치 빠르게 추는 춤과 같아 붙여진 이름일지도 모르겠네요. 춤도 배달도 나름의 시퀀스와 기승전결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딜리버리 댄서의 구 Delivery Dancer’s Sphere 

문법과 마법 전시 전경 ©김아영, 갤러리현대, LARKET 촬영

딜리버리 댄서들은 댄스 마스터의 연산을 수신하는 앱 디바이스의 명령에 따라, 도시의 A, B, C, D, E 등의 구역 사이로 춤을 추듯 쉴 새 없이 질주합니다. 그들이 무엇을 배달하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배달원을 통제하는 댄스 마스터는 신과 같아서 마치 축지법을 쓰듯 시공간을 축약하고 뒤틀어 댄서들이 빛보다 빠른 배달을 가능하게 하지만 쉬지않고 수신되는 배달 콜과 무한 생성되는 배달 경로는 마치 귀 속의 끊임없는 이명과 같아 누군가의 정신도 교란시킬것만 같은 느낌을 선사합니다. 우리 일상 속 누구든 끊임없이 매번 더 나은, 더 빠른 업무 요청을 받게 된다면 머릿속도 완전히 꼬여 버리게 되는 난감한 상황을 영상 속에서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만두거나 적응하거나 양자택일의 배달-댄스 여정 가운데에 주인공 에른스트 모는 실수인지 우연히 ‘평행 세계’에 다다릅니다. 그곳에서 자기 자신과 완벽하게 닮은 유령과 같은 존재인 엔 스톰(En Storm)을 마주하며 혼란을 겪습니다. 나와 닮은 누군가를 만나고 난 뒤 배달 기사에겐 치명적일 정도로 시간이 느리게 흐르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지 못해 괴로운 에른스트 모는 끊임없이 엔 스톰과 싸우고, 연민하고, 거부하고, 다시 또 애정하고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듯 합니다. 피하려 할수록 더욱 자주 마주하게 되는 ‘나와 닮은 또 다른 나’ 때문에 에른스트 모는 라이더에겐 치명적인 페널티 누적을 받게 됩니다.


문법과 마법 전시 전경 ©김아영, 갤러리현대, LARKET 촬영

혼란 속 고군분투가 이어지는 20여 분간의 비디오 속 여정 가운데를 달려가는 에른스트 모가 맞서 싸우는 대상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어 약간은 슬픈 기분이 들었습니다. 우리들도 바쁜 현대사회에서 매일같이 반복되는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며 어려움 속 외로움을 직면하는 순간이 있고, 특정한 업무적 정보를 수집 당하며 알고리듬 또는 데드라인에 지배당하는 순간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특히 앱으로 추적 및 관리당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인간의 속도와 동선은 반강제적 이동과 기술과 연동된 신체 감각을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GPS, AI, 원격 재택근무, 등 우리의 업무를 편리하게 하는 것들은 어쩌면 우리를 자유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하는, 항상 온라인에 머물러야 하는 디지털 풋 프린트의 패턴에 귀속시키는 것 같습니다. 속절없이 흘러버린 시간 앞에 ‘자꾸만 늦는다’는 무력감을 느끼는 에른스트 모 또한 재촉받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일하고 휴식할 수 있는 환경으로 복귀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상은 감각적으로 또 우아하게 미끄러지듯 다음 관객들의 여정을 향해 흘러갑니다. 


문법과 마법 전시 전경 ©김아영, 갤러리현대, LARKET 촬영




우리의 문법을 초월하는 마법의 순간이 필요하다. 

문법과 마법 전시 전경 ©김아영, 갤러리현대, LARKET 촬영

바이러스의 전 세계적 유행, 데이터와 인공지능이 추적하는 개인의 동선과 사생활 등, 지금까지 우리가 믿어 왔던 일상이 흔들리며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전 지구적 위기의 상황에서 작가 김아영은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 이면의 ‘진실’에 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이동하고 전복하는 여정을 통해 들려줍니다.


다양한 개인들의 세계가 매일의 문법을 초월하여 우연히 만나게 되는, 마법과 같은 단계는 ‘나’라는 하나의 존재에서 시작된 수많은 가능 세계 속에서, 가끔은 또 다른 이와의 만남을 통해 확장 및 해방되기도 합니다. 이곳 너머의 그곳에서의 ‘나’는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완전한 모습으로 존재할지 궁금하지만 견고한 일상의 관성은 쉽사리 깨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에른스트 모 그리고 엔 스톰의 평행적 존재의 아련한 충돌을 보며 에디터는 영화 ‘우연과 상상 -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속의 어떤 대사가 떠올랐습니다. 라켓 레터를 읽는 누군가 혹여나 일상의 문법에 짓눌리는 기분이 든다면 다음의 대사가 마법의 통로를 지날 수 있는 동력이 되길 바라며 오늘의 레터를 여기서 마칩니다.

“나만 아는 자신의 가치를 포용할 줄 알아야 해요. 혼자 하려면 매우 힘들 거예요. 하지만 그래도 해야 해요. 그걸 지켜낸 자만이 뜻밖의 인연을 만나 용기를 줄 수 있으니까요. 평생 일어나지 않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누군가 그걸 안 하면 그건 절대 일어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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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명 : 문법과 마법 Syntax and Sorcery
⚫ 장소 : 갤러리현대
⚫ 주소 : 서울 종로구 삼청로 14
⚫ 관람시간 : 아쉽게도 종료되었어요. 라켓이 여러분을 대신해서 다녀왔습니다.
⚪ 문의 : 02-2287-3500 / @galleryhyundai




☕ 전시 보고 뭐하지? �

사실 라켓 에디터는 지난 프리즈 서울 방문 이후로 마침내 코로나에 걸리는 바람에 원치 않는 격리를 견디며 연휴를 보냈습니다. 많은 전시는커녕 어느 곳도 방문할 수 없는 것이 매우 치명적이었습니다.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있었습니다. 그래도 격리 기간 동안 <문법과 마법> 속 딜리버리 댄서처럼 도시 곳곳을 가로지르는 배달원 덕에 다양한 음식을 빠르게 받아 볼 수 있었고, 그중에 몇 가지 맛있었던 음식을 첨부합니다. 이 중에는 전시장 근처에 있는 통인시장의 꽈배기도 있으니 이동하실 수 있는 분들은 직접 방문하여 배달료 없는 자유의 맛을 음미하시길 바랍니다.


LARKET 촬영

⓵ 통인시장 자미당 꽈배기와 치즈 핫도그 (통인시장 서쪽 입구)

⓶ 정통마라탕 마포마라회관 꿔바로우+마라탕 & 연유꽃빵
⓷ 나레스시 - 나래 특초밥
⓸ 신전떡볶이 - 치즈떡볶이 순한맛, 납작당면 추가

좌측부터 우측으로 ⓵ ~ ⓸




만드는 사람들 - 라켓팀
보보(편집), 임그노드(디자인), 해리(디렉팅)

라켓 소개 - https://www.lark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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