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모든 미술적 취향을 모아놓은 듯한 ‘Frieze’. 아시아 최초로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적 아트 페어 ‘프리즈 서울’이 지난주 나흘간의 일정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20여 개국의 약 1백10개 주요 갤러리가 참여해 7만여 명에 달하는 방문객의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느슨한 향유를 넘어서는 확실한 소유의 기반을 다지는 방대한 취향의 현장에서 눈여겨 볼 만한 몇 군데의 갤러리와 작품들 그리고 특별했던 점들을 라켓이 간략히 정리해 보았습니다.
편집/이미지 '보보' , 디자인 '임그노드' , 디렉팅 '해리'
구관이 명관: Frieze Masters, 프리즈 마스터즈
‘프리즈 서울’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것은 고대부터 20세기 후반까지 미술사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망라한 ‘프리즈 마스터즈’ 섹션이었습니다. 다양한 유럽발 갤러리들이 국내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피트 몬드리안, 앙리 마티스, 프랜시스 베이컨과 같은 서양 미술의 대가들의 작품을 선보이고, 이번 페어 최고가인 6백억원 상당의 파블로 피카소 등의 명작을 전면에 내세운 아쿠아벨라 갤러리 부스에는 마치 유럽의 대형 미술관의 관람 광경을 방불케 하는 인파가 몰려 있었습니다. 그 중 무엇보다 에디터는 평소에 좋아하는 이탈리아의 거장 ‘루치오 폰타나’의 작품이 각 갤러리별로 다양하게 선보였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⓵ <© Lucio fontana ‘Concetto spaziale, Attese 일부 by Tornabuoni Art, Frieze Seoul 2022, LARKET 촬영>
⓶ <© Francis Bacon ‘Study for Portrait of John Edwards,1986’ by Acquavella, Frieze Seoul 2022, LARKET 촬영>
⓷ <© Pablo Picasso, ‘방울이 달린 빨간 베레모 여인’ - 이번 페어 최고가, 6백억원 상당의 작품, by Acquavella, Frieze Seoul 2022, LARKET 촬영>
마스터즈 섹션 외에도 갤러리마다 주력으로 내세운 작품들 앞에 관람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에곤 실레의 작품을 전문으로 다루는 세계 유일한 갤러리 ‘Richard Nagy 리처드 내기’ 앞에는 긴 행렬이 이어져 있어서 부스 근처에 머물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⓵ <© Christo ‘Packed supermarket cart, 1964 by Annely Juda Fine Art, Frieze Seoul 2022, LARKET 촬영>
⓶ <© 에곤 실레 by Richard Nagy, Frieze Seoul 2022, LARKET 촬영>
⓷ <© 3천만년 전에 만들어진 ‘Gogotte’ 자연 화석 조각by David Aaron, Frieze Seoul 2022, LARKET 촬영>
가장 좋았던 공간: Axel Verboordt 갤러리 속의 ‘와비사비’
Photos : Left, middle, right <© Axel Verboordt 부스 전경, Frieze Seoul 2022, LARKET 촬영>
투박하고 조용한 상태, 시간이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일본의 미의식 ‘와비사비 (wabi sabi わび・さび)’ 가 서양 전체에서 유행한지는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정수를 삶 속에서 깊게 이해하고 동양으로 역수입해 누구보다 세련되게 컬렉션을 전개하는 벨기에 기반의 갤러리 Axel Verboordt (악셀 베르보르트)는 유명한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컬렉터, 갤러리스트 그리고 예술품 딜러입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페어 한가운데에 위치한 누군가의 취향 좋은 서재 같았던 이 고요한 부스에 방문한 이들은 세속에서 떨어진 신비한 정적 아름다움을 느꼈을 것만 같습니다. 이우환, 윤형근 화백의 작품부터 알베르토 뷔리 Alberto Burri 를 비롯한 여러 작품 속에서 부유하다보니 시간과 함께 더욱 깊어지는 그윽한 ‘유현의 미’를 서양인의 제안을 통해 다시금 느끼며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습니다.
전세계인의 사랑, 단색화
⓵ <© 이배, 조현화랑 갤러리 부스 전경, Frieze Seoul 2022, LARKET 촬영>
⓶ <© 박서보, 조현화랑 갤러리 부스 전경, Frieze Seoul 2022, LARKET 촬영>
⓷ <© 이우환, by Kamel mennour , Frieze Seoul 2022, LARKET 촬영>
이우환, 박서보, 이배, 김환기 등 전 세계 미술 경매에서 최고가 판매 기록을 연달아 달성하는 한국 화백들 작품의 공통 키워드는 ‘단색화’와 간결한 재료의 사용으로 사랑받는다는 점입니다. 국내외 갤러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언제 보아도 세련된 미니멀리즘, 자연의 다양한 빛을 닮은 단색화는 시대와 국가에 상관없이 항상 인기 좋은 미술품입니다. 특히 타데우스 로팍, 리안 갤러리, 커먼웰스 앤 컨실을 통해 새롭게 만나보는 김택상, 이불, 갈라 포라스 킴 등의 페인팅을 통해 단색화의 현대적이고 오가닉 한 변주 또한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⓵ <© Lee Bul, by Thaddaeus Ropac, Frieze Seoul 2022, LARKET 촬영>
⓶ <© 김택상, 리안 갤러리 부스 전경, Frieze Seoul 2022, LARKET 촬영>
⓷ <© Gala Porras Kim, by Commonwealth and Council, Frieze Seoul 2022, LARKET 촬영>
이배 그리고 생 로랑
<© LEE BAE by SAINT LAURANT, Frieze Seoul 2022, LARKET 촬영>
이번 프리즈 공식 파트너로 참가하는 ‘생 로랑(Saint Laurent)’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토니 바카렐로(Anthony Vacarello)의 주도 아래 이배 작가와의 협업으로 오묘한 숯의 연작들을 선보입니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건식 재료인 새카만 숯을 이용해 한평생 간결의 미학을 추구해온 이배 작가는 마치 성큼성큼 걸으며 완전히 타버린 숯의 궤적을 평면으로 담아내며, 이내 하얀 덩어리로 굳어진 듯한 숯의 형상을 그대로 담은 조각을 함께 선보입니다. 이번에 프리즈를 위해 특별히 선보이는 알루미늄 조각은 숯덩이의 형태를 그대로 주조했지만, 그 정신이 금속의 힘을 빌려 보다 우리 곁에 오래 호흡하며 머무르다 다시 땅으로 되돌아가는 은유를 담고 있습니다.
모두가 사랑하는 돌
⓵, ⓶ <© 박현기, 갤러리 현대 부스 전경, Frieze Seoul 2022, LARKET 촬영>
⓷ <© 우고 론디노네, by 글래드스톤갤러리, Frieze Seoul 2022, LARKET 촬영>
서울의 갤러리 현대, 뉴욕의 글래드스톤이 공통적으로 내세운 재료적 공통점은 다름 아닌 ‘돌’입니다. 한국 실험미술을 대표하는 곽인식, 이승택, 박현기가 선보이는 정신성을 상징하는 영험한 사물인 ‘돌’ 그리고 세월을 담아내며 자연과 가까이하고 싶은 인간의 원초적인 마음을 대변하는 우고 론디노네의 색색의 돌 모양 조각을 통해 미술 작품의 재료를 통해 자연의 일부를 소유하고 싶은 컬렉터들의 마음을 겨냥한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글래드스톤 갤러리는 아시아 첫 지점을 서울에 연 만큼, 한국 컬렉터들의 취향을 잘 어우르는 곳 중 하나입니다.
첫날부터 완판, 셀럽들이 사랑하는 페로탕 갤러리
<© 타바레스 스트라찬 by 페로탕갤러리, Frieze Seoul 2022, LARKET 촬영>
최근 서울 도산공원에 2호점을 오픈한 프랑스 기반의 페로탕 갤러리는 이번에 ‘타바레스 스트라찬’의 우주를 닮은 작품으로 부스를 꽉 채웠습니다. 페로탕 갤러리는 프리즈와 동시에 진행 중인 키아프에도 베르나르 프리츠부터 엠마 웹스터까지 페로탕의 전속작가 13명의 작품을 가져왔다고 하는데, 개막 하루 전까지 90%가 사전 판매된 데 이어 개막 직후 전 작품을 ‘완판’ 하는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GD, 방탄소년단의 RM, 모델 수주 등 많은 셀럽들이 자신들의 인스타그램에 찍어 올린 타바레스의 작품들 앞에는 많은 관람객들이 붐볐습니다. 컬렉터의 좋은 안목을 갖추고 싶다면 앞으로 페로탕 서울과 도산파크에서 선보일 세련된 작업과 작가들의 이름을 눈여겨봐도 좋겠습니다.
성공적 첫시도
위에 언급한 갤러리 외에도 가고시안, 페이스, 하우저 앤 워스, 더 드로잉 룸, 자비에 위프켄스 등 저명한 갤러리들이 선보이는 박물관 규모의 작품들을 둘러보니 일 년 동안 개인이 방문할 수 있는 전시를 한번에 본 듯한 벅찬 기분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번 프리즈가 엄청난 호황이라고 하니 향후 5년간은 서울에 내리 방문할 것으로 예견됩니다. 단순 감상 및 구매를 넘어 다양한 퍼블릭 프로그램으로 찾아온다면 더욱 좋겠군요. 프리즈, 내년에 또 만나요.
⚫ NOTE: 인스타그램 @friezeofficial 또는 https://www.frieze.com/ 을 방문하여 아티스트 인터뷰 및 소식과 내년의 뉴스를 팔로우 하시길 바랍니다.
☕ 전시 보고 뭐하지?
코엑스에서 열리는 대형 페어를 보고 나면 ‘난 이제 지쳤어요 땡벌’ 노랫말이 저절로 머릿속에서 재생되기 마련인데요. 내부에 위치한 ‘테라로사 커피’에서 잠시 차와 드립 커피로 심신을 달래도 좋겠습니다. 비가 무척 세게 퍼붓던 프리즈 페어 마지막 날에 라켓 에디터는 따뜻한 버베나 티를 마셨습니다.
⚫ 장소 : 테라로사 코엑스점
⚫ 위치 :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513 1층
⚫ 영업 시간 : 매일 09:00-22:00
만드는 사람들 - 라켓팀
보보(편집), 임그노드(디자인), 해리(디렉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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