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궁하면 하게 되는구나.

by 한약초콜릿

식단에 주로 오르는 나물반찬. 나는 김치와 나물을 종류별로 먹는 걸 좋아한다. 배추김치, 나박김치, 총각김치, 갓김치, 고들빼기까지 한상에 올리면 그렇게 풍족할 수가 없다. 여기에 간간한 맛을 다셔줄 담백하고 고소하게 무친 나물까지 겸하면 없던 입맛도 살아난다. 물론 생선구이나 고기류를 조금 더하면 진수성찬이다.


내가 특히나 이런 반찬들로 식단을 짜려고 하는 이유는 어려서부터 소화기가 약한 탓에 국물요리를 멀리하면서부터다. 국이든 찌개든 수분을 과하게 섭취하면 윗배가 더부룩하고 트림이 연신 터져서 곤혹스러웠다. 라면국물에 밥을 말아먹는 기막힌 맛을 즐긴 건 12살이 마지막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까지가 철도 씹어 먹을 수 있는 왕성한 시기였던 셈이다. 유전영향일까도 싶었지만 집에선 나만 국물을 기피했다. 이 탓인지 어느 순간부턴 물도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마시지 않게 돼버렸다. 억지로 물을 마시면 헛배가 불러 불편한 느낌이 도는 게 싫었다. 나중엔 이 습관 때문에 후회할 일이 생겼지만 그때는 굳이 수분보충이라는 거창한 말로 내장기관을 적실 이유를 찾지 못했다.


내 입맛이 이러니 엄마는 항상 각종 김치를 담그고 콩나물, 시금치, 고사리, 숙주를 재료로 한 나물무침을 번갈아가며 두 종류씩 만들어주셨다. 얼마나 고생하셨을지 이제는 알지만 엄마밥 먹고 자랄 때에는 마땅히 받는 권리로 여겼다. 그렇게 먹고 자라 성인이 되었고 집에서 멀리 떨어져 독립을 하면서 엄마밥은 연중행사에서나 만나게 되는 귀한 상이 되었다. 남들은 내가 엄마밥이라고 하면 집밥을 말하는 거냐며 통용되는 단어를 참 이상하게 바꿔 말한다하는데 엄마밥과 집밥은 내 기준에선 엄연히 다른 말이다. 내가 집에서 밥을 지어도 집밥이 되지만 엄마밥은 말 그대로 엄마가 해주신 밥이니까. 왜 어째서 당연히 엄마가 해주는 밥이 집밥으로 범위가 확대됐는지 모를 일이다. 우리 집에선 아빠도 종종 부엌에서 조리하는 모습을 보이셔서 필시 엄마만 하는 집밥이란 게 나의 개념에는 없는 까닭일 법도 하다.


독립을 하고보니 김치를 종류별로 끼니마다 챙긴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은 것임은 금방 알아차렸다. 배추김치 하나만으로도 감지덕지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그래도 시판용 김치를 먹지 않게 된 것은 복이었다. 엄마는 어떻게 주기를 기막히게 알고선 택배로 손수 담근 김치를 차곡차곡 통에 쌓아 보내주셨다. 냉장고를 그득 김치로 채우면 곳간에 쌀이 찬 것처럼 바라만 봐도 안심이 됐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이 부족함을 느끼게 된 데는 나물무침의 부재였다. 혹시 상할까 싶어 차마 그것까지는 택배상자에 넣을 수 없다는 엄마는 매우 안타깝고 걱정스러워하는 목소리여서 나까지 보태 감정을 증폭시키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주 쾌활한 목소리로 내가 직접 무쳐먹으면 된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엄마는 네가 뭘 하겠냐며 미심쩍어 해서 요리책에 나온 대로 따라하면 문제없다는 말로 걱정을 덜어드렸다. 허나 엄마의 걱정이 옳았다.


쉬워 보였던 콩나물은 아삭한 식감대신 질기거나 무를 정도로 데쳐지기 일쑤였고 시금치는 다듬는 것부터가 난항이었다. 아무리 조심해서 갈라도 엄마 솜씨처럼 알맞게 몇 가닥이 붙질 않고 낱장으로 떨어져 결과물은 시금치 이파리 절임이 되곤 했다. 절망했고 기가 꺾였다.
나물 하나도 제대로 무치지 못하면서 먹는 입만 발달했다는 게 부끄럽기까지 했다. 그래서 거의 매일 콩나물과 시금치를 다듬고 데치는 시간을 달리해가며 기록하고 간을 맞출 소금의 양과 기름의 종류를 바꿔가며 실험했다. 그렇게 한 달여를 시도하니 얼추 먹을 만해졌다. 당연히 엄마 솜씨와는 비교할 수 없었지만 아쉬운 대로 만족했다. 그때의 조리법을 지금도 실천한다.


특별할 것 없는 방법이지만 이제 내 입맛엔 잘 맞는다. 요리책대로 해서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던 마늘을 넣으라는 지시를 가감하게 무시했던 것이 외려 나물의 맛을 훨씬 잘 느끼게 도와줬다. 그리고 참기름과 들기름을 같은 비율로 섞고 마지막으로 볶은 참깨를 뿌려 조물조물 무쳐주면 고소하고 윤기 자르르한 김치와도 잘 어울리는 나물무침이 완성된다.
그리고 데치는 방법에서도 맛의 차이가 난다. 콩나물은 비려진다고 대개 뚜껑을 닫고 중약불로 삶는 것과 비슷하게 하던데 난 뚜껑을 아예 덮지 않는다. 오픈한 채 찬물에 넣고 5분간 불에 올려놓는다. 그러면 비려지지도 않고 훨씬 아삭한 식감이 살아난다. 웬만해선 질겨지지도 않아 끝가지 맛있게 즐길 수 있다. 시금치는 워낙 예민하니 끓는 물에 30초에서 35초 정도 살짝 데쳐주니 그 또한 질겅거리지 않는 부드럽고 촉촉한 식감이 되었다.

필요한 상황에 처하니 평소 관심도 없던 일에 매진하게 되는 내 모습이 신기했고 어떻게든 해냈다는 성취감에 뿌듯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음식을 하는 동안 내 안에 움트는 기쁨과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에 눈을 뜨기 시작했던 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