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중간은 가야 편한 법.

by 한약초콜릿

27살에 찾은 첫 직장에선 처음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학창시절 교류하는 친구들과는 확연히 다른 대인관계는 적잖은 놀람을 가져다주었다.


연령에서도 가정환경에서도 돈벌이에서도 차이가 나는 동료들은 각기 생각하는 방향이나 골몰하는 고민거리들도 천차만별이어서 누구누구네 사정이 어쩌느니 저쩌느니 하는 뒷말이 끝도 없이 양산됐다. 특히 같은 여성 동료들끼리의 경쟁은 업무실적에서뿐 아니라 시댁의 재력, 신랑감의 경제적 능력이 늘 화두였지만 메이크업과 패션소품을 비롯해 어느 브랜드 옷을 입었는지도 관심이 됐고 시샘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신기했던 것은 옷을 잘 갖춰 입어도 전혀 어울리지 않게 아무렇게나 입고 회사에 나타나도 동료들은 수군거렸다는 거다.


“@@@이 오늘 입고 출근한 옷 봤어요? 집이 잘 산다더니 헛소문이었나 봐요. 어디서 그런 후줄근한 옷을 구했는지 보는 내가 다 민망해서 혼났어요.”


“그러게 말이에요. 아무리 자율복장이라지만 부장님도 계시는데 야상점퍼를 입고 올 생각을 다하고 회사가 놀이턴 줄 아나 봐요.”


“그것도 일주일 내내 입고 다니잖아요. 옷도 그것밖에 없는지 월급 받아 어디에 쓰고 변변한 옷 하나 사지도 않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는 아주 패션쇼를 하러 다니는 것 같아요. 가방을 또 샀고 걸친 재킷은 우리가 얼마 전 모여서 본 잡지에 나온 명품이잖아요. 가격이 수 백 만원은 족히 할 텐데 돈 벌어 죄다 옷만 사는가 봐요.”


“그러면서 입만 열면 돈 없단 말이 줄줄 새잖아요. 아니 들고 신고 걸친 것만 합쳐도 얼만데, 그 돈을 모았으면 투자할 종자돈이 되고도 남았을 거예요.”


“그런데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젠 걸 본인은 모르는 거죠.”


전직 스타일리스트라는 직속 선배가 조용히 있다 한마디 거들자 모여 있던 동료들이 하나같이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세차게, 진심으로 공감하는 그 제스처는 본격적인 주제로 넘어갈 신호였다.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에요! 제발 본인 몸을 생각해서 옷을 골랐으면 좋겠어요. $$$한테 옷을 사라고 부추기는 매장녀들이 양심도 없다는 생각까지 들어요. 아니 딱 봐서 안 어울리면 솔직하게 얘길 해줄 것이지 돈만 받고 건네면 땡이라는 건지 너무하지 않아요?”


“그게 어디 매장녀들 잘못인가요? 사가겠다는 손님에게 파는 게 그들 임문데 최선을 다하는 거죠. 내가 매장녀라도 이건 손님 체형엔 어울리지 않으니 팔 수가 없어요, 라고 말하진 못할 거예요. 극구 사겠다는 $$$이 본인을 과대평가해서 비싸면 다 좋고 예쁜 옷인 줄 아는 게 근본원인 아니겠어요?”


아,,, 피곤했다. 신입사원인 내가 선배들 곁에서 감히 지청구를 지껄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상사인 $$$를 감각이 떨어진다고 흉을 늘어놓을 수도 없었다. 그저 조개처럼 입을 다물고 눈만 끔뻑이며 적당히 고개를 주억거릴 뿐이었다.


매번 빠지지 않고 점심시간마다 반복되는 ‘남 걱정해주기’ 캠페인에 동참할 여력이 내게도 언젠가 생길지 모르지만 설사 그때가 된다 해도 끼고 싶지 않았다. 걱정을 사는 당사자는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그저 그 모인 자리에 없는 사람이었고 나 또한 언젠가는 그들의 담화에 오징어처럼 잘근잘근 씹힐 일이다. 아니면 진즉 씹혔거나.


하루는 이런 내 생각을 말하지 않았는데도 들켰는지 전직 스타일리스트 선배가 내 귓가에 조그맣게 속삭였다.


“걱정 마. 넌 이 자리에서 화제가 된 적 없으니까. 지금처럼만 쭉 하면 될 거야. 넌 중간은 가니까.”


그렇게 사회생활을 시작한 내게 퇴근길은 늘 똑같은 고민으로 방황하는 길이 되었다. 내일은 어떻게 입고 출근해야하지? 절대로 선배들 눈에 띄지 않는 정상적이고 평범한 옷이 좋겠는데 그런 게 어떤 거지? 중간은 가야 편해지는 법이라는데, 난 왜 이게 어려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