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카리 Nov 17. 2023

수능감독에 대한 나의 고찰

오늘 밤은 치킨이다.

수능 감독에 나가기 전, 선생님들이 궁금해하는 사항이 몇 개 있다.

1. 감독 나가는 학교에서 어떤 학생들이 시험을 보는지

2. 5교시 제2외국어/한문 시험을 보는지

3. 내가 1교시 감독에 투입이 될 것인지

4. 밥은 맛있는지. 간식은 뭘 주는지


 모두가 초긴장 초예민 상태이기에 덜 예민한 남학생들을 감독하는 것이 아무래도 편하다고 많이들 생각하시는 것 같다. 또 하나 대학 입시만을 위해 달려온 열심히 공부해 온 친구들인지 대학 입학만이 중요한 것은 아닌 친구들인지에 따라서도 그 긴장도가 달라진다. 이과 여학생들 감독이 가장 힘들다고 들은 적이 있다.  

 학교에 따라서는 5교시 제2외국어/한문과목까지 보는 학교도 있고(17:45 종료), 4교시 탐구영역까지만 보는 학교가 있는데(16:37 종료) 5교시까지 감독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체력적으로 힘드니까 꺼려하신다. 제2외국어 교사로서 5교시 감독을 꺼려하는 분위기가 섭섭하다가도 사실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아니다. 나도 몇 년 전에 그 학교에서 딱 두 고사실만 제2외국어/한문 시험이 있었는데, 거기 오셨던 수많은 감독관 중에 나에게 찾아온 행운에 매우 좌절하고 화가 났던 적이 있다. 그만큼 수능 감독은 체력적으로 힘들다.

 특히나 1교시 국어 시험은 시간은 80분이지만 30분 전에 입실하여 컴퓨터용 사인펜, 샤프를 나눠주고, 본인 확인과 휴대 가능한 시계인지 확인도 해야 하고, 시험장 반입 금지 물품(핸드폰, 전자기기 등)을 수거 등등 할 일이 많아서 거의 총 2시간을 서있어야 한다. 첫 과목이니만큼 국어 문제지와 답안지를 본부에서 인계받고 고사실을 찾아 걸어가는 그 길은 정말로 전쟁터로 나가는 장군이 된 마냥 엄숙하다.

 겨울 날씨에 새벽부터 나와 7시 반 감독관 회의부터 시작하여 하루 종일 감독만 하기에 더더욱 밥이 중요하다. 재단이 빵빵하여 점심식사가 잘 나오기로 정평이 나있는 학교로 감독을 하러 나간 적이 있었는데, 그 소문은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찬도 훌륭했지만 학교 급식에 뚝배기가 나온 것이다. 항상 뚝배기인척 하는 갈색 플라스틱 국그룻만 보다가 그 뜨끗함은 감동이었다. 설거지는 어떻게 하는 건가 걱정도 되었지만. 그 학교에서는 아침 식사부터 간식에도 손님을 대접하는 정성이 느껴졌다. 아주 좋은 학교다.

      



 2024 수능 일주일 전, 단체 쪽지가 날아왔다. 수능감독관으로 위촉이 되었단다. 그럴 줄 알았다. 기대도 안 했기 때문에 담담히 받아들인다. 뭘 기대했는가 하면, 감독 명단에서 빠지거나 본부위원이길 바란 거다. 수능 시 본부위원 또는 외부 수능감독관으로 나가게 되는데, 학교마다 개인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보통의 경우 수능감독관이 더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힘들다고 여겨지기에 나이가 많은 순서대로 본부(근무하고 있는 학교)에 배치되고 또 시험 진행을 총괄하는 교무부 소속 선생님들이 본부위원으로 위촉된다. 경력이 1~2년 정도의 신입 선생님, 건강상 문제가 있어서 감독하기에 어려움이 있으신 분, 그 해 수험생인 자제분이 있으면 선생님들은 제외된다. 우리 학교에서 수능 전 한 달 전에 선생님 중 한 분이 수학여행 중에 크게 넘어지셔서 무릎 수술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든 생각. '어머 어떡해. 너무 힘드시겠다. 어떡해.. 아 그래도 수능 감독에서는 제외되시겠네. 그건 좀 많이 부러운걸.' 전에 근무했던 학교에서는 매년 수능 시에 진단서를 제출해서 수능감독에서 빠지는 미니스커트와 하이힐을 즐겨 신고 다니는 40대 선생님이 계셨다. 그 진단서에 뭐라고 적혀있는지 매년 진심으로 궁금했었다. 이런 나도 수능 감독에서 제외된 적이 있다. 수능 한 달 전쯤 그러니까 학교에서 교육청으로 수능 감독 추천 대상을 공문으로 보낼 때쯤 '서프라이즈 선물'을 받아 추천 대상자에서 빠질 수 있었다. 무슨 서프라이즈였냐. 우리 서준(가명)이다. 그 당시 초1이었던 첫째 서진(가명)의 동생이 생긴 것이다. 한 줄을 확인하고 싶어 점심시간에 휘리릭 사 온 임신테스크기의 선명한 두 줄을 학교 화장실 구석 칸에서 지켜보면서 재계약이 더 이상은 어렵겠다는 생각에 일을 못하게 될까 봐 눈물짓던 나는, 아 그래도 수능에서는 빠지겠다. 아싸.라고 생각했었다.

 

 수능감독을 해야 된다는 생각만 해도 긴장이 되어 몸이 경직된다. 하루종일 심장이 입 밖으로 나올 것 같다. 학생들은 얼마나 더 더 긴장이 될까 싶어 고사실로 들어가면 일단 학생들과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한다. 학생들의 긴장이 조금이나마 풀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환하게 웃는다.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활짝 웃으며 너희는 할 수 있어라는 응원에 마음을 담아 인자한 표정을 지어본다.


 감독을 마치고 동료 선생님이 집 근처까지 차로 태워주셨는데, 내려보니 마침 어느 수능 고사장 앞이었다.  

     

 이날 4교시 탐구영역까지만 시험이 있었던 학교에서 감독을 하여, 무탈하게 잘 끝나 홀가분한 마음으로 귀가하고 있었는데, 이 학교에서는 5교시까지 치러지나 보다. 아직 교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그 앞에서 우산을 쓰고 기다리고 계시는 부모님들이 계셨다. 하루종일 고생했을 내 새끼가 언제 나오려나 애타게 서계시는 부모님들의 마음을 다는 헤아릴 수 없지만 아주 조금은 알 것도 같아서 감정이 북받치어 가슴이 뭉클해졌다. 저 뒷모습을 보니 감독한다고 투덜거리면 안 될 것 같았다. 오히려 감독관으로 이 큰 일에 위촉되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내년부터는 구시렁거리지 말아야지 다짐도 했다. 보통 고등학교 교사들이 제1감독관으로 배정되고 중학교 선생님들께서 제2감독, 제3감독으로 배정이 되는데, 고등학교에서만 근무를 해봐서 거의 제1감독관으로 시험실에 들어갔었다. 내가 뭐라고 나이 지긋하신 베테랑 중학교 선생님들과 함께 감독을 하면서 내 이름을 제1감독관 칸에 적어낼 때의 기분이란, 참 부담스럽기도 하고, 사실 자랑스럽기도 하다. 정말 내가 뭐라고 이 중요한 시험의 감독관으로 외촉을 받았을까.



 전날 있었던 수능감독관 회의 시 인상된 수당을 확인하고 기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내가 처음 감독을 했던 2012학년도 수능에서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12만원 정도였던 거 같은데. 그때는 이 돈 받고 이 고생하느니 차라리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근데 이번에 봉투를 받아보니 여비 1만원이 추가되어 오만원 지폐 3장과 만 원짜리 지폐 3장이나 들어있었다. 와 17이라는 숫자만 봐도 좋아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1만원을 더 받아 입꼬리가 올라갔다.

 오예! 오늘 밤은 치킨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학부모님이 겁나 무섭다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