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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카리 Dec 01. 2023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슬초브런치 오프 모임 후기

 드레스 코드인 블루에 맞춰 파란색 비니모자를 쓰고 출발했다. 6주 동안 진행되던 슬초 브런치프로젝트의 마지막 일정인 오프 모임이다. 친목방 단톡방에 참여하기 전이어서 외톨이가 될까 봐 겁이 나기도 했지만, 의외로 마음과 발걸음은 가벼웠고, 존재감 없이 구석에 있다 오게 되더라도 뻔뻔하게 앉아있다 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온라인상으로 으싸으싸 서로 격려하며 힘을 준 동기들이 궁금했고, 이은경 선생님을 뵙고 오는 것만으로도 참석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뭔가 달라지고 싶으니 뭔가 다른 것을 기꺼이 했어야 했다. 근데 난 뭘 어떻게 달라지고 싶은 걸까?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고 필수코스라고 여겼던 반 모임 이후로 이런 어색하고도 낯선 모임은 처음이었다. 아이가 중학생이 된 지금, 그렇게 부담스러웠으면 억지로 나갈 필요가 없었는데, 당시에는 당연히 엄마라면 참석해야 하는 줄 알고 어색함을 이겨내고자 애를 썼고, 그리하여 자스민이 될 수 있었다. 알라딘과 함께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경험한 A Whole New World. 내 생애 처음으로 폭탄주를 들이켠 것이다. 우리 소중한 아들이 왕따라도 당하면 안 되기에 엄마로서의 도리를 다하고자 꿀꺽꿀꺽 원샷을 해냈다. 맥주와 소주에 사이다를 섞어 암바사주라고 불리는 다른 언니들의 큰 호응을 얻던 그 폭탄주를 음미하며 마시지는 못했지만, 안도는 할 수 있었다. 이제 됐다, 나 때문에 우리 아들이 왕따 당하는 일은 이제 없겠지. '아들아, 엄마의 노력을 꼭 알아주고 기억해 다오'. 게다가 알코올이 들어가도 아무렇지도 않아 의외로 술에 강한 체질일 수도 있겠다는 새로운 나를 발견하기도 했었다. 술 모임은 여전히 어색하긴 하지만, 언니들과는 아이들이 중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단톡방으로 엮여있고 첫 아이를 키우면서 길잡이가 되어 주신 좋은 분들과의 만남에 지금까지도 감사하다.

   

 학창 시절, 손을 들고 발표를 하고 싶어 매 수업 시간마다 내적갈등을 하던 아이였다. 그냥 분수에 맞게 살았으면 참 편했을 텐데, 당시에는 선생님께서 물어보시는 질문에 답은 하고 싶고 용기는 안 나고, 움찔움찔 눈치만 살피며 아무도 모르게 속에서는 소용돌이가 치지만 결국 에너지 소모만 하고 끝났었다. 아주 조금만 더 자신감이 있었다면 그 보이지 않는 벽을 깰 수도 있었을 것 같았는데, 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발언을 하는 것이 전교 1등이 되는 것만큼 어렵게 느껴졌었다. 마치 한 손으로 우주를 들어 올리는 것처럼 무겁게 느껴졌고, 내 손은 결국 중력을 이길 수가 없었다. 하고는 싶은데 못하니 중학교에 다니던 3년 내내 나 자신에게 답답함을 느꼈다. 뭐가 그렇게 '적극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인지, 당시 학교에서 각자 실현하고 싶은 목표를 세우고 한 달 뒤 다시 되돌아보고 반성하며 또다시 새로운 달의 목표를 세워서 실천해 가는 활동이 있었는데, 졸업할 때까지 ‘적극적으로 수업시간에 발표하기’라는 목표를 적어냈었던 기억이 있다. 이런 내가 참 싫었다.




 브런치에 합격을 하고 필명을 고민하고 있는데, 그즈음에 성경 말씀 이사야서 60장에서 본 '빛'이라는 단어가 계속 마음에 머물러 있어서 '빛'을 입력해 봤다. 한 글자는 안 된다고 하기에 어쩔 수 없이 만만한 일본어로 바꿔 '히카리'라고 세 글자를 입력했고, 그렇게 나는 '히카리'가 되었다. 하지만 한 달 후 필명 변경이 가능해지면 제대로 생각해서 다시 바꿀 생각이었다.  '빛'이라고 하면 왠지 태양이 떠올라서 나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모두가 좋아하고 모두의 주목을 받는 태양은 아닌 거 같고, 은은한 달빛 정도면 좀 어울리는 것 같은데.'

이사야서 60장

 이런 일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 일본으로 온 가족이 이사를 가서, 주판 학원을 동생과 다니려고 학원에 등록을 하러 갔을 때, 보호자에게 간단하게 지원서를 쓰게 했다. 일본 학교에 다니던 우리보다 아직 일본어에 서툴었던 엄마는 자녀 성격에 대해서 적는 칸이 있었는데, 그때 적어낸 문장이 아직도 생생하다. 동생은 あかるいです(아카루이데쓰=밝습니다). 나는 くらいです(쿠라이데쓰=어둡습니다). 엄마~ 그래도 딸한테 '쿠라이(=어둡다)'는 너무 하지~!!라고 그 당시에도 생각했지만, 딱히 다른 일본어로 표현할 능력이 우리 모두에게 없었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제출했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은 그것을 보고 한국에서 온 이 어두운 학생을 어떻게 지도해야 되나 막막하지 않으셨을까 싶다.


 '히카리'가 된 지 딱 한 달이 된 오늘, 이제는 나의 필명을 바꾸지 않기로 했다. '히카리'가 되어 써 나가기로 결심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외향형 인간은 여전히 아니지만, 세월이 지나 나 자신을 많이 사랑하게 되었고, 낮엔 해도 되었다가 밤엔 달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을 비추며 살아가고 싶다.




 기대하던 이은경 선생님의 특강 주제가 '내향형 인간의 슬기로운 이중생활'이다. 제목만 들어도 벌써 힐링이 시작된다. 단군 이래, 내향형 인간이 성장하기에 가장 유리한 시대가 펼쳐졌다고 한다.

오예!!

그래, 내향인인 내가 좋다.

사실은 외향형 인간들과 같은 인기도 누려보고 싶긴 하지만.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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