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학년도 거취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올 때쯤, 담당 부장 선생님께서 따로 조용히 부르셨다. 내년부터 우리 학교도 담임과 업무를 분리하려고 하고 있고, 현재 맡고 있는 업무를 내년에도 이어서 맡게 될 것이며 그 자리는 비담임이니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하셨다.
"우와!! 부장님!! 감사합니다!!" (충성하겠습니다.♡♡♡)
담임 업무보다 행정 업무(비담임)를 선호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담임을 맡는다는 것은 책임져야 할 내 새끼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전형적인 담임 선생님의 모습은 항상 학생들과 하하호호 웃으며 아이들과 소통이 잘 되고 언제나 문제없이 즐겁게 지내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마리아 선생님과 같은 모습이다.
마리아가 되고 싶지만 실제 모습은 전혀 아니기에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자격 미달인 것 같아 종종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왜 이렇게 담임으로서 부족하고 에너지는 에너지대로 소모되는지를 고민했었는데, 어느 날 MBTI 유형에 대한 기사를 보면서 무릎을 탁 칠 수가 있었다. 'ISFJ'인 나는 내성적이지만 마음이 착하고 책임감이 있는 유형이라고 한다. (그래 내가 좀 책임감이 있는 편이지.) 어쨌건 내 품에 들어온 내 새끼들이기에 책임지려고 애를 쓴다. 엄청 말 안 듣는 덩치가 큰 내 새끼님들이다. 또 싫은 소리, 나쁜 소리를 잘 못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맞습니다! 겁나 하고 싶은 말 많지만 하기는 참 힘들어요.) 애정을 듬뿍 담아 아이유로 빙의하여 '하나부터 열까지 다 널 위한 소리'를 건네지만 '내 말 듣지 않는 학생들에게는 뻔한 잔소리'가 되어버린다. 용기를 내어 다 잘 되라고 하는 말이지만 전달이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으니 상처로 남는다. 또 공감능력이 뛰어나고 다른 사람을 돕고자 한다고 한다. (내가 좀 그렇지.) 문제는 공감을 지나치게 하다가 학생들의 힘듦이 고스란히 전염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매년 반복이 되니 힘들다. 동료 교사들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는데, 어떤 선생님은 자신의 문제와 학생의 문제를 별개로 생각할 수 있다고 하더라. 모두가 비슷한 줄 알았기에 이 말을 듣고 신기했고 부러웠다. 타인의 말을 들어주고 경청하는 것이 내 장점이라 생각하여 상담을 공부해 보면 어떨까도 잠시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이놈의 특출 난 공감능력 때문에 불가능할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아무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로 좋은 모습만 보여줄 수 있는 교과 담당일 때가 연휴를 앞둔 전날 밤과 같이 마음이 편하고 부담이 없다. 사실 교과 담당이면 적당한 선까지만 신경 써도 죄책감이 없다. 아, 다른 반 학생들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수업을 담임반 학생들 앞에서 하는 건 또 부담스럽더라. 내 새끼들 앞에서 더 잘하고 인정받고 싶어서 그런 것 같다. (이것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믿을만하고 나에 대한 신뢰가 있기를 바란다고 ISFJ 특징에 적혀있는 내용임. 매우 공감하는 바이다.)
내년도에도 할 사람이 (사실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항상 부족한 담임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로또 되기 만큼 힘든 몇 자리 안 되는 비담임 자리가 당첨이 되었다는 소식은 서프라이즈 선물이었다. 몇 년 만의 비담임인지 감개무량하다. 안 그래도 일 년 동안 지속적으로 학습지원대상자들을 관리해야 하는 일을 맡았었기에 학급 아이들을 챙기면서 업무적으로 만나게 되는 학생들까지 세심하게 챙기는 것은 아무래도 담임 반 아이들보다 뒷전이 되기 마련이었다. 내년도에는 업무상 만나게 될 학생들을 내 새끼들이라 생각하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예산을 어떻게 활용을 할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다가오는 행복한 겨울 방학을 셀렘으로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겨울방학 첫날 저녁, 부재중 통화 목록에 교장선생님의 성함. 안 그래도 추운데 몸이 경직되었다. 불길한 생각이 온몸을 휘감아 왔고, 모른 척하고 전화기 전원을 꺼버리고 싶었지만, 또 일 년을 먹고살아야 하기에 허탈한 마음은 감춘 채 전화를 걸었다. 미안하지만 담임을 맡아달라는 얘기일 거라 생각했는데, 눈곱만큼도 예상치 못한 말을 듣게 된다. 내년도 신입생 학급이 줄어들게 되면서 공정하게 일을 진행하기 위해 기존에 계신 모든 기간제 선생님들은 다시 시험을 보는 걸로 인사위원회에서 결정되었으니, 다음 주에 공고가 뜨면 확인해서 원서를 다시 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설레며 기다린 겨울 방학이 시작한 지 아직 24시간도 안 지났는데 벌써 막을 내린 느낌이었다.
네? 무엇을 위한 공정인가요?
네? 학급이 줄어드는 것과 시험이랑 무슨 상관이 있나요?
네? 근데 저 다시 뽑아주시는 거 맞나요? 확답을 주세요.
네? 저 비담임이라고까지 말씀하셨잖아요....
수많은 생각과 말들이 떠올랐지만, 가까스로 이성을 발휘하여 침착하게 전화를 끊었다. 원래 수업 시수가 있고 학교도 교사도 서로 원한다면, 따로 시험 절차 없이도 1년씩 4년까지 재계약이 가능하다. 아직 1년밖에 안되어 시험을 볼 거라는 생각은 전혀 안 하고 있었는데,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그래도 이미 담당 부서 선생님과 내년도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나눴는데, 설마 떨어뜨리겠어? 다시 뽑아주겠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내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다시 채용이 될 것 같으면서도 원래 이 바닥이 그렇듯 절대 장담하지 못했다. 나이를 먹는 것도 서러운데, 마흔이 넘어도 선택을 받아야만 일 할 수는 이 서글픔.
가슴 쓰라린 기억이 되살아났다. 여전히 잊지 못할 아련한 첫사랑인 첫 근무지였던 학교에서의 일이다. 재시험을 통해 4년씩 두 번 근무를 하여 총 8년이란 시간을 근무 후 다시 시험 절차를 거쳐야 재계약이 성사되는 그때, 교감선생님은 분명히 재채용을 (물론 대놓고는 아니었지만) 풍기는 듯한 말씀을 하셨고, 누구 못지않게 애교심을 가지며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왔고 또 잘해왔기에 8번이나 계약이 되었다고 자부하고 있었기에 다른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나 자신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시험 절차는 1차 서류, 2차 수업 시연, 3차 면접으로 이루어졌는데, 채용 절차 과정 중에 하필 목감기에 걸려 목소리가 하나도 안 나오는 긴급 상황이 일어났다. 그 당시에는 감기에 걸려도 마스크를 쓰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매우 급하고도 중요했던 상황인지라 '저 아파요. 말 걸지 마시오'를 마스크를 쓰고 다니며 어필하며 다녔고, 이비인후과에 달려가 '저 면접이 있어서 적어도 이틀 후까지는 목소리가 나와야 하니 제발 빨리 목소리가 돌아오게 해 주세요'라며 개미 같은 목소리로 간곡히 부탁을 드리니 의사가 하는 말.
"무슨 그 나이에 면접이에요."
이 딴 말을 지껄였다.
어이가 없어 정색하며 가만히 있으니
"교수 면접인가..?"
무시하고 약을 받아와 정성스레 챙겨 먹었다.
그리하여 목소리를 쥐어짜 어찌 됐건 수업 시연을 잘했고, 내 교과의 다른 지원자들은 말도 안 되게 아무도 시험 당일에 안 나타났고, 경쟁자 없이 혼자서 면접까지 봤지만 결과는 '계약 종료'였다.
선택받아야만 하는 '을'이기에 이번에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구두로 재계약 약속까지 했는데, 혹시 시험 결과에 따라 떨어지기라도 하면 남편이 교육청 앞에 가서 피켓 들고 시위를 해주겠다는 든든한 말까지 해주었지만 학교가 너무나도 미웠고, 떨어질까 봐 불안했고, 솔직히 이미 비담임 모드를 장착하여 새 학년도를 준비하고 있었기에 다른 학교를 알아볼 힘이 나지 않았다.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지원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추운 날씨에 면접 보러 다니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는 모든 기간제 선생님들은 공감할 것이다.
불평과 불만과 불신만 쌓여가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가 어느 날, 이런 일이 있었다며 어느 단톡방에 털어놓았는데, 곧바로 따뜻한 응원의 답장들이 달렸다. 힘들겠다고 공감과 함께 좋은 결과를 기다리고 기도하겠다는 메시지들을 보고 있으니, 타인의 말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ISFJ인 나는 바로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이 글을 쓰며 다시 카톡을 살펴보니 불평모두에서 전투모드로 바뀌는데 25분이 안 걸렸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나도 단순한 내가 웃겼고, 참으로 감사했다. 주변의 좋은 분들 덕분에 그제야 감사한 마음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차일까봐 불안했던 생각에서, 보란 듯이 수업 시연과 면접을 잘 통과하여 붙잡고 싶고 헤어지기 싫은 매력녀가 되자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최선을 다하고 안되면 안 되는 걸로, 다른 자리가 또 예비되어 있음을 믿고 차분한 마음으로 시험에 임할 수 있게 되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로 삼고 "역시 O선생님이야!"라는 말을 진심으로 듣고 싶었다. 잘하고 싶은 만큼 다른 두 명의 지원자들과 함께 앉아있는 대기실에서는 얼마나 심장이 떨렸는지 모른다. 다행히 큰 실수 없이 마치고 후련한 마음으로 고사실을 나올 수 있었고, 최종합격을 하였다는 문자를 받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처럼 재계약 약속을 받았던 선생님들 중에서도 서류에서 떨어지거나 면접까지 보고도 떨어진 선생님도 있었다고 하니, 다시 한번 안도감과 함께 계약직의 서러움을 느꼈지만, 내가 학교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었다. 경력이 쌓여가며 모래시계의 모래처럼 조끔씩 사라져 가던 초심을 다시 일깨워 맡겨진 소중하고도 귀한 일에 이전보다 더욱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고 앞으로도 주변의 영향을 받을 사람이기에 항상 좋은 사람 곁에서 머물러 좋은 말에만 휘둘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의사가 무슨 그 나이에 면접이냐고 했을 때가 벌써 5년 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