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과 같은 3월이 지나고
개학 전부터 날아오는 수많은 공문과 함께 업무 폭탄으로 정신없이 보낸 3월.
월급날인 25일은 어찌나 더디 오던지. 4월 달력에 보이는 반가운 빨간색 날만을 바라보고 버티고 있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4월 중순, 중간고사를 앞두고 쓰는 글이다.
개학 4일 전, 거짓말 아니고 정말 2월 28일에, 담임을 맡기고자 했던 신규 기간제 선생님을 아직 못 구했으니, 그 빈자리를 채워달라는 교장선생님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눈치 없이 왜 그 전화를 왜 받았을까. 교사로서 기본설정값인 담임이 뭐 대수냐 싶겠지만, 몇 년만의 서프라이즈 선물이라며 설레던 비담임에서, 그것도 2월 말에 책임이 막중한 담임이라는 임무를 맡게 된다는 것은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느낌이었다. 예전에 동네 친한 언니랑 수다를 떨다가 이래 이래 해서 담임 맡기 싫다고 얘기를 하게 된 적이 있었는데, 전혀 이해를 못 하더라. 학교에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이해할 만한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이들에겐 이해가 안 되는 말일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그때 새삼 느꼈다. 하긴, 나도 교직의 세계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선생님들이 이렇게 방학을 고대하고 있으며, 개학을 앞두고는 마음이 무겁고, 휴일 전날인 야자감독은 하기 꺼려한다는 것은 전혀 상상도 못 했으니. 이 전화가 비담임 선생님들 중에서 어찌하여 나한테까지 왔을까 하는 수많은 생각에 속상하고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을'인 나는 거절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 황당한 소식을 남편에게 전하니 오히려 글감이 생긴 거라고 생각하라며 위로하는 남편. T인데 자꾸 F인 척하며 위로를 해주지만,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라고요~~. 그 당시 간절히 듣고 싶었던 '사표 써!'라는 말을 안 해주는 남편에게 엉뚱하게 분노가 향했다. 위로와 공감을 받고 싶어 지인 중 교사가 누가 있을지 떠올렸다. 며칠 전, 연년생 육아를 위해 도저히 담임을 맡을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비담임 자리인 학폭을 맡게 되었다는 아들 친구 엄마에게 이 절망스러운 뉴스를 전했다. 곧바로, 임박해서 이게 무슨 일이냐며 안 한다고 버티지 그랬냐며 속상함을 헤아려준다. 욕해주고 위로해 주고 힘내라며 스타벅스 기프티콘까지 보내줬다. 기피업무인 학폭을 맡아 비장한 마음으로 긴장하며 개학을 기다리고 계셨을 텐데, 고작 담임인 내가 학생지도부장님의 위로를 받아버렸다. 부디 그 학교에 학폭이 안 터지길 기도드리며 응원드릴뿐이다.
개학 첫날은 보통 담임선생님 재량으로 한두 시간씩 학급 자율 시간으로 보낸다. 내향형 인간이라 예전 같았으면 첫 만남에 긴장도 많이 하고 해야 할 것들을 준비하느라 마음과 몸이 바빴을 텐데, 그 새 경험치가 생겼다고 그런지 덜 떨리는 것이 신기했다. 매년 반 아이들을 만나면, 이번에 담임 잘 만났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는 욕심에 안 그래야지 싶으면서도 어느샌가 내 안에 몇 안 되는 밝은 에너지를 끌어모아 친절한 컨셉으로 아이들을 대하곤 했었는데, 그것에 오히려 나중에는 독이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 착한 선생님 컨셉을 내려놓지 못했었더랬다. 하지만 갑자기 담임을 맡게 되면서 그런지 이번에는 그런 욕심이 하나도 안 생겼고, 단지 내가 맡은 일만 확실히 하고 대단한 에너지를 쓰지는 말아야지 하는 이상한 다짐 같은 걸 하면서 그놈의 헛된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 반 아이들을 만난 첫날, "좋든 싫든, 어쩌겠니, 우리가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1년 동안 잘 지내보자"하며 인사말을 건넸다. 반은 진심이었고 반은 나 자신에게 파이팅을 외치는 말이기도 했다. 할 일이 많고 정신없어서 투덜거리고 헤매면서도 작년만큼은 힘들지 않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었다.
안면인식장애가 있나 싶을 정도로 사람 얼굴과 이름을 잘 못 외우는 나도 4월이 되니 우리 반 학생들의 이름과 얼굴이 거의 다 외워졌고 작년과는 사뭇 다른 학급 분위기로 인해 마음이 많이 평온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게다가 수업으로 만나는 학생들이 너무나도 예쁘다. 교내에서 마주치면 생글생글 웃으며 "콘니찌와~ 센세~"(일본어로 '안녕하세요 선생님')를 해맑게 외쳐준다. 가끔씩 반말인 "오하요~"(일본어로 '안녕')을 외쳐 자기들끼리 이게 맞네 저게 맞네 서로 장난치며 지나가는 학생들. 어떤 아이는 볼 때마다 그렇게 이타다키마스!(일본어로 '잘 먹겠습니다!')를 외친다. 이런 사소한 학생들과의 소통의 시간이 얼마나 큰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져다주는지 모른다. 참 감사하다. 내가 뭐라고 이런 행복함을 누리며 사는가.
중간고사 출제도 마쳤다. 시험 문제를 제출하고 나면 마음이 깃털같이 가벼워지며 3월에는 못했던 것들을 할 수 있게 되는데, 중간고사를 앞두고 자습을 시키는 시간이 생기다 보니 양심고백을 하자면, 그동안 시간이 없어서 못했던 인터넷 쇼핑을 해버려서 사실 택배를 기다리며 설레는 중에 있다. 일상생활에 반드시 있어야 할 물품 말고, 없어도 되는 물건들 말이다. 독서할 수 있는 시간도 생긴다. 보통 아침 조회 시간에 전달사항을 전달 후 자습을 시키는데, 학기 초에는 한 명씩 복도에서 일대일 상담을 진행했었기에 책을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없었지만, 이 시기쯤 되니 모든 학생들과 한 번씩 상담을 마쳐 아이들이 지각만 안 하고 제 시간에만 와준다면 짧은 15분 정도의 시간이지만 독서에 시간을 투자할 수가 있다. 뜸하던 글쓰기도 할 시간이 생긴다. 이 글도 사실 지금 고3 학생들 자습 감독을 하면서 쓰고 있다. 옷차림도 달라진다. 수업하기 편한 옷을 입고 다니다가 오늘은 간만에 아주 조금 불편하지만 예쁜 옷을 입었다. 운동화만 신다가 로퍼도 신어 본다. 점심시간에도 슬쩍 외출해서 아이스커피를 테이크아웃을 해 와 봄날씨를 누려본다. 시험 기간에도 심폐소생술 연수니 생활기록부 연수니 연수가 잡혀있지만 그래도 수업이 없고 수능감독만큼의 긴장도가 있는 감독이 아니니, 여유를 누릴 수 있다. 사실은 시험 기간에도 해야 할 일들이 있지만, 굳이 하지 않고 미룰 것이다. 우리 학교의 어느 국어 선생님의 말대로 이 '아름다운 시간'을 잘 보내고 싶다.
폰 보지 말라고 학생들에겐 잔소리를 해놓고.. 택배가 온다는 문자에 신나는 나.
얘들아 미안하다. 많이. 그래도 어쩌겠니.
너희도 놀고 싶으면 공부 열심히 해서 나중에 선생님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