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hibueong Jan 09. 2022

내용이 좋으면 뭣해

안 읽으면 땡이지.


아빠는 책을 많이 읽는다. 그냥 많이 빌려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많이 읽는다.


아빠는 도서관 휴관일이 아니면 매 주말 도서관에 간다. 믿기지 않아서 엄마가 몰래 따라가보라고 한 적도 있는데 도서관 앞 벤치에 앉아있는 아빠를 볼 수 있었다.


아빠는 거의 매일 책상 앞에 앉아있다. 엄마가 재잘재잘 말을 걸어도 책상에 앉아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고 해서 운동을 못하는 사람은 아니다. 50대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조기축구를 열심히 했다. 어렸을때는 운동을 굉장히 잘 했다고 하는데 내가 중학생때 투포환 선수 제의를 받은 걸 보면 믿을 만한 사실이다.


아빠는 항상 무언가를 배운다. 책상 위엔 항상 컴퓨터와 초록색기판 그리고 노트가 있다. 모눈종이가 그려진 노트에는 필기체 f로 시작하는 수식들이 빼곡하고 정갈하게 적혀있다.


아빠는 엄마 편이다. 예전엔 그게 많이 상처가 된 적도 많았는데 이제는 엄마 편이 나말고도 또 있다는게 참 안심이 된다. 그나저나 엄마는 아빠 편일까.


중학생때 까지 주말엔 아빠와 함께 도서관에 갔다. 아빠가 계속 도서관에 앉아있는 바람에 나도 억지로 도서관에 갇혀 있었는데 수학 문제집을 더 이상 풀기 싫었기에 딴짓을 해야했다. ‘커피의 역사’, ‘칵테일 제조기법’과 같은 실용서들을 꺼내 읽었는데  거기 나오는 것들은 싹 다 외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읽다보면 기다리고 기다리던 저녁시간이 온다. 아빠는 지하에 있는 도서관 식당에서 라면을 자주 먹었다. 나와 동생이 함께 가는 날은 돈까스, 쫄면, 라면을 쓰리콤보로 즐길 수 있었다. 다른건 기억이 안 나는 데 라면의 쫄깃한 면발과 뜨거운 김이나 던 돈까스, 쫄면에서 나던 고소한 참기름 냄새는 기억이 난다.


자식들이 모두 기숙사로 각개전투를 하러 떠나자 아빠는 혼자서 도서관에 갔다. 종종 도서관 자리가 없어서 겨우 앉았다는 이야기나 도시락이 맛있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화낸 적이 거의 없는 아빠가 한 번은 유독 흥분해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아이엄마가 아빠와 아이를 번갈아 보며 “할아버지께 인사드려.” 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제는 자신이 백발의 남성이 되었다는 걸 잊은 걸까.


나는 힘들 때 다시 책으로 돌아간다. 특히 사람에게 상처받아 힘이 들 때는 더더욱. 종이책의 시대가 갔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내 본진인 책이… 내가 어딘가에 “어떤 글들은 꼭 쓰여야 하고 읽혀야 한다” 라고 썼던 기억이 어렴풋이 있다.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태도와 달리 오늘은 유독 나 자신에게 자신이 없다.


일 년 전 이 시기에는 열나게 밑줄 그어가며 책을 읽고, 읽다 지치면 필사를 하고 또 읽고 쉽게 배운 건 쉽게 잊힌다며 펜을 든 중지에 또 굳은 살을 만들던 과거의 나는 어디로 갔는지.


아빠는 변해버린 자신의 머리색보다 세상은 더 빠르게 바뀐다고 했다. 항상 배우고 자신을 의심하라고 했다.


자꾸 바뀌어가는 구독자수와 조회수를 보며 그리고 반대로 자꾸 줄어드는 종이책 판매량을 보며, 종이 잡지를 만들겠다며, 무려 독립매거진을 만들겠다고 당당하게 홍보하던 과거의 내가 왜 그랬나 싶다.


경제적 독립도 못했는데 독립매거진은 어찌 만든다는 건지. 나는 할 수 있을까. 조용히 그리고 꾸준하게 해낼 수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오랜만에 쓰는 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