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교육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
입사한 지 3개월 만에 첫 사내 교육을 듣게 되었다. 내부 총작화감독이 십 년 넘는 업계 경험 바탕에 터득한 프로세스 소개와 노하우를 전수하는 자리였다.
2시부터 시작하는 교육이었지만, 일찍 와서 착석한 사람만 20명이 넘었다. 늦게 도착해 입장한 참석자를 포함해 총 50명 가까이 모였다. 총작화감독이 내향적인 성격이라 강단에 서서 사뭇 떨리는 목소리로 강의를 시작했지만, 참석자들은 영향받지 않고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강의 내용은 애니메이션 총작화감독의 업무를 간략하게 소개한 뒤, 어떤 부분을 고민하며 작업하고 어떤 자료를 참고하여 디자인하는지 알려주었다. 데생 ¹의 중요성도 강조했지만, 본인 같은 경우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선호하는 편이라 수 없는 개인 작품을 그리면서 노하우를 쌓았다고 한다. 각자의 장단점이 있다고 예시를 들면서 조곤조곤 강의를 이어 나갔다.
짧은 시간에 모든 노하우를 전수하기는 어렵겠지만, 최대한 많은 것을 알려주고자 애쓰는 모습이 멋있었다. 본인의 십 년이나 되는 인생사를 알려주는 것 같은 강의 내용은 비전공자인 나한테마저 유용한 학습 시간이었다. 해당 내용이 관심 있는 자에게 도움이 될 자리였다면, 누군가에게는 수다 떠는 공간으로 몰락되어 이번 글을 쓴 계기가 되었다.
50명이 넘는 참석자의 대다수가 수업에 집중하는 자세를 보였지만, 가장 왼쪽 구석에 앉은 여성 두 분의 관심사는 강의가 아니었다. 앨범 속의 애완견 사진을 보면서 소리 없이 히죽거리는 게 아닌가.
그 뒤로 난 강의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감독이 수강생들의 질문에 열정을 보이며 찬찬히 가르치는 한편, 그 두 사람은 노트에 대화 내용을 적어가며 신나게 침묵의 수다를 떨고 있었다. 얼마나 즐거웠으면 입을 가리고 상반신을 좌우로 비틀며 박장대소하는 게 아닌가.
대체 왜 저런 걸까? 난 그것이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이 떠드는 2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잃고 또 잊었는지 되짚어 보았다.
1. 남들한테 민폐가 된다.
제 딴에는 소리 없이 비밀리에 수다를 떨었을 거라 여기겠기만, 분주한 손놀림과 흔들리는 상반신, 웃음을 참으려는 몸 떨림이 뒷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시야에 곧이곧대로 들어왔다.
오른쪽 먼발치에는 조곤조곤 강의하고 있는데 왼쪽 구석에서는 무언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니 무시하려야 무시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최대한 집중해서 도움이 되는 시간을 보내려고 했으나 매너 없는 사람들의 행위가 거슬렸고 짜증이 치밀어 오르고 꼴불견으로 각인되었다. 막무가내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은 욕구는 타인에 대한 존중을 무시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2. 본인한테 민폐가 된다.
단둘이 수다 떨고 싶었다면 굳이 여기 여야만 했는지 묻고 싶었다. 2시간이라면 본인한테 있어 더 중요한 일을 하거나 수다를 떨 거면 카페테리아에서 마음 편하게 얘기를 나누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십 년간의 노하우를 축약한 교육이라 2시간의 강의에 대한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라 안타까울 뿐이다.
한 번의 수업으로 십 년의 경력을 그대로 주입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앞으로 겪을 시행착오를 줄이고 내게 도움이 되는 시간이 될 텐데 말이다. 직장 일상 중 2시간 정도 농땡이 치기 위한 거라면 그 자세가 너무나 허황하고 아깝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사내 교육도 학창 시절의 여느 수업과 다를 바 없다. 내가 좋아하는 과목이 있을 거고 딱히 관심 없는 과목도 있을 것이다. 사실 그때는 국민의 세금 덕분에 들을 수 있는 수업이었다. 결제가 보이지 않는 유료 수업인데도 소중함을 알지 못했다. 그러다 한 번뿐인 기회를 흘려보내고서야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면 정말 열심히 배우겠다고 후회한다. 타임머신이 없는 한, 현실을 마주해야 하고 무턱대고 앞을 향해 달리게 된다.
요즘은 온라인 클래스가 우후죽순처럼 론칭하는 세대다. 캘리그래피, 글쓰기, 현대미술 입문, 재테크 노하우와 NFT에 대한 강의 등 취미 수업뿐만 아니라 다소 어려운 전문지식 분야의 수업도 유료 결제 후 공부할 수 있다. (TMI: 앞서 언급한 것들은 전부 결제하고 들었던 수업들이다....) 한마디로 내가 원하는 지식을 배우기 위해 시간과 자금을 투자해야 한다.
만반의 준비를 거쳐 짠 커리큘럼은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 유료 결제까지 이어진다. 아무렴, 몇 년에서 몇십 년이나 되는 노하우를 공짜로 풀기에는 나 자신이 허락하지 못하겠다. 소량의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향후 몇 년의 시간을 벌어들이는 거나 마찬가지다. 어쩌면 수강료보다 훨씬 값어치 있는 보물을 구매한 거겠다.
살다 보니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하기는 쉬운 게 아니다. 그렇다고 어떤 시간은 집중해야 하고 어떤 시간은 휴식해야 하는지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성숙함이 서른이 지나서야 차츰 틀이 잡혔다. 누군가에게는 그 타이밍이 너무 늦지도 너무 빠르지도 않기를 바란다.
각주 1: 데생 ([프랑스어] dessin), 주로 선에 의하여 어떤 이미지를 그려 내는 기술. 또는 그런 작품을 가리킨다.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는 기존의 작품을 따라 그리는 연습을 의미한다.
연관 링크: 카페방장 [2023년 계획은 만다라트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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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작가: 이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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