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나는 환경은 멀리하라

직장도 ‘가족’ 같아야 오래 머문다

by 박진솔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어쩌면 범죄 영화에나 나올 법한 사건이 남자친구의 현 직장에서 벌어졌다. 직속 상사인 부대표가 직원의 비자 연장, 급여 조정을 필두로 권력남용을 이용한 성추행 사건을 듣게 되었다. 20명도 안 되는 직장인데 그동안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으니 황당할 수밖에 없다. 평소에 다정한 상사가 이런 사람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잠깐 들어와 봐. 좀 만지게.


부대표가 대학교를 갓 졸업한 신입자한테 보낸 메신저 내용이다. 아직 실습 기간이라 참고 당했다. 출장 다녀온 뒤로 점점 과격해지는 부대표를 거절했더니 그 뒤로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고 한다. 이에 고민을 털어놓자 남자친구와 다른 동료의 조언을 듣고 해결책을 고민 중이라 한다…



가해자를 감싸주는 또 다른 가해자들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이 옛 시대만큼 난무하지 않아도 여전히 남아있다. 직장에서의 개인 권한을 내세우며 사원을 쥐락펴락하고 갑질하는 상사가 난무한다. 전 직장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터졌었다. 친한 동료 S가 대표의 은근슬쩍 터치, 비하 발언, 분노 표출 대상이 되었을 때, 난 팀장으로서 사건을 해결해주지 못했다. 본사에 현장의 문제점을 보고했지만, 그들은 대표의 선 넘는 행위에 눈감아주었다. 그 뒤로 우린 최대한 대표와 멀리하기 ‘작전’으로 자신을 지키기로 했다.


시간이 흘렀지만, 그 사람은 달라지지 않았다. 가끔 대표가 하이 파이브 하자고 손바닥을 내밀면 S는 강력한 펀치로 가격했다. ‘나이스 펀치’. 우린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대표가 아파하는 모습에 키득거렸다. 쓰레기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뒷담화해도 그는 달라지지 않았다. 한치의 반성 없이 타깃을 신입 여직원한테 옮긴 걸 우린 나중에 알게 되었다.


대표의 추악하고 비열한 버릇을 고쳐 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아무렴, 본사에서 그 사람의 문제점을 알면서도 회사 입장에서 필요한 사람이라 감싸주었다. 마땅한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는 타이밍에 나랑 S가 퇴사를 결심했다. 개인적인 사유와 다른 충격적인 일이 있어 더 이상 남아있을 마음이 없었다. S가 먼저 퇴사했고 난 2달 뒤에 팀장을 인수인계한 뒤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송별회 겸 워크숍에서 대표와 그 사람 직속 관할이었던 일부 핵심 멤버의 추악한 모습을 목격했다. 그동안 답답하고 사업적으로 진전 없던 이유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유유상종, 냄새나는 것들

대표는 우리 부서 외에 별도로 관리 중인 개인회사가 있다. 우리 부서와 협력하는 관계지만, 그 회사의 대부분 직원과 디렉트로 만날 기회가 거의 없다 보니 워크숍이나 회식 자리에서나 대면했다. 만약, 나랑 S가 퇴사자가 아니라면 그날 밤의 대소동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어쩌면 우리가 퇴사할 날을 손꼽아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파트너사인 관계로 프로젝트 마무리하고 쫑파티 겸 준비한 워크숍은 처음부터 우리 부서에 대한 감사나 향후의 동고동락을 기대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클라이언트인 우리 부서를 같이 데리고 갔던 것은 대표가 본인의 입지를 다지고 소위 ‘회식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여성 직원이 많은 우리 부서를 희생양으로 끌고 간 거나 다름없었다.


펜션에 마련된 노래방 공간은 대표라는 사람이 취해서 고래고래 소리 질렀던 기억으로만 남는다. “파트너사와 오랜만에 모였으면 뒤풀이 때 합석해서 인사도 나누며 덕담을 주고받아야 하지 않냐!”며 똘똘 뭉친 우리 부서를 강제로 술자리에 앉혔다. 울며 겨자 먹기로 합석했더니 우리 부서의 여성 직원을 그 사람 회사의 남성 직원 사이사이 끼워 앉히는 게 아닌가? 취한 남성 직원들은 ‘뉴페이스’의 합석에 눈빛을 반짝거리며 잔을 건넸다.


나랑 S는 이미 떠난 사람이라며 무시당했다. 심지어 자기 소개하는 타임에 내가 누구인지 알 필요 없다며 ‘X밥’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어처구니없는 발언에 반발할 멘트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날 밤은 우리 부서의 모든 사람한테 있어서 긴긴밤이었다.


유유상종, 더러운 물은 냄새가 지독하다.


이튿날, 펜션을 정리하고 헤어지기 직전에 단체 사진을 찍자고 사람들을 한 군데로 불렀다. 하지만, 우리 부서의 모든 여성 직원은 함께할 의향이 없었다. 그날, 단체 사진에는 나랑 유일한 다른 남성 직원이 그 대표의 워크숍 단체 사진에 덩그러니 찍혀 있다.



똥은 더러워서 피한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어젯밤에 대표뿐만 아닌 남성 직원의 스킨십이나 성희롱 발언이 있었다는 것과 여성 직원이 우리 부서의 여성한테 지나치게 스킨십을 했다는 증언이 속출했다. 50명이나 되는 회사에서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할 [성희롱 예방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경험했던 날이다. 비록 나랑 S는 떠났지만, 여전히 현 직장에 남아 앞으로 그 대표를 만나고 업무를 봐야 한다는 상황에서 해결책은 ‘신고’였지만, 본사에서는 사무실 이전과 접촉을 최대한 자제하는 해결책을 내세웠다.


결국, 대표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진 못했지만, 어느 정도 불쾌한 환경과 멀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미 퇴사한 나와 S는 그 대표와 지냈던 기억을 조금씩 지웠다. 굳이 남겨둘 가치가 없는 것들이고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트라우마다. (참고로 S는 퇴사 후 창업했고 나는 같은 계열의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따지고 보면 신고하고 처벌받길 원한다. 하지만, 본사에서 감싸주는 이상, 그리 쉽게 이뤄지지 않을 거라 알기에 우린 떠나기로 했다. 쓰레기 더미를 멀리하니 바깥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되었다. 진득한 슬라임 같은 것들이 뭉쳐서 악취를 풍긴다면, 하루빨리 그곳을 벗어나는 게 상책이다.


직장 내 권한이 낮아도 우린 자아가 있다. 옳지 않은 걸 알면서 눈감고 참다 보면 당사자는 뻔뻔해지고 당당해진다. 이익을 위해 직원을 뽑았지만, 가치를 창출할 사람들이 떠난다면 결국 망한다.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없다. 그대가 저지른 악행의 업보는 파멸이니라.





사진 : ttomagr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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