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전우와 헤어지다
전 직장에 입사한 지 1년 만에 친구 S를 같은 회사에 취직시켰다. 배구동호회에서 만난 한 살 어린 여자였고 같은 부서에 363일 늦게 입사한 직속 후임이다. 옛말에 “친구끼리는 동업하는 거 아니다.”라고 했다. 그게 어떤 이유일까 궁금하기도 했고 내게 필요한 믿음직한 상대라 생각했다. 직장이라 생각하지 말고 즐거운 분위기로 함께 놀자는 멘트로 S를 “조수”로 발탁했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처음으로 애니메이션 제작을 맡았던 시기에 서포터 할 후임이 입사해 고마웠다. S가 입사하자 신입 때 맡았던 업무를 S에게 넘겼다. 마침 S가 대학원 졸업 후, 미래가 막막하고 자원봉사 했던 커뮤니티가 경제적 수요를 만족시킬 수 없어 취직 준비 중이라 고민을 털어놨던 시기다. 잠깐 쉴 겸, 알바라고 생각하며 일하면서 최종 진로를 결정하라고 구슬렸다. 그렇게 S의 진로 고민 여정은 장장 5년이나 걸렸다....
입사 초기는 모든 게 새롭고 신기해서 즐거웠다. 부서 동료들은 전부 또래였고 비전공자들로 이뤄진 팀이라 서로 가르치며 공부하는 분위기였다. S가 입사한 뒤로 그녀의 친구, 내 고등학교 동창, 대학교 후배… 연달아 지인들을 영입했다. 회사에 출근하는 게 아니라 20대 초반의 대학교 동아리 모임을 하는 기분이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함께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해 서로 다독이며 야근했던 일상은 행복했다. 졸업했지만 여전히 대학교 캠퍼스에 머무는 기분이었다. 평등한 관계에서 출발한 우리는 서로 의지하며 성장하는 단계였다. 공사 구분이 딱히 필요하지 않은 시절이었고 모두가 업계의 공정을 배우고 사회 시스템을 터득해 가는 시기였다. 하지만, 우린 나이가 들었고 조직은 점점 겉과 속이 다른 관리 시스템 진행형이라는 걸 체감했다.
초기 구성원이 4명이었던 우리 부서는 퇴사 직전에 9명까지 확장되었다. 그 사이 팀장으로 승진했고 S는 부팀장의 역할을 맡았다. 새로 온 신입의 고민 상담을 해주며 기존 구성원의 일상과 진로 고민을 들어줬다. 3년 전의 그때가 그리웠다. 아무리 바빠도 한 가지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감독과 클라이언트의 눈치를 보면서 최선을 다했다. 회사가 전쟁터라면 우린 둘도 없는 전우가 되어 싸웠다.
회사 측면의 모든 결정을 최대한 S와 공유했지만, 부서관리 측면의 정보를 상사에게 보고하듯 미주알고주알 말하지 않은 날도 많아졌다. 결국 우린 숨김없던 친구 사이에서 조금씩 각자 비밀을 가진 사이로 틀어졌다. S도 나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잦았고 나중에 각자 본인 스타일로 업무를 처리하게 되었다.
고학력, 출중한 미모, 쾌활한 성격, 넘치는 열정은 S의 뚜렷한 장점이었다. 내가 알고 있던 그녀의 빛나는 모습이 어느 순간 수그러들었다. 출근하면 동료처럼 대했고 퇴근하면 친구 관계로 일상을 공유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우리 사이에는 미세하게 틈이 생겼다.
다사다난했던 프로젝트의 쓴맛을 보고 S가 그만두고 싶을 때, 우린 호프집에서 술을 마시며 갑질하는 클라이언트와 능력 없는 대표를 안주로 삼았다. 그녀가 힘들어할 때 겉으로는 위로하면서 사실은 떠날까 봐 두려웠다. 홀로 남아 쓸쓸할 날이 두려웠고 S가 담당했던 업무를 맡아야 하니 걱정했다.
S가 심적으로 지쳐 있고 전공을 살려 새로운 출발을 축복해주진 못할망정, 이기적으로 홀로 남을 나의 미래를 떠올렸다. 그때부터 팀장의 권한(?)을 내세우며 S의 급여 조정을 희망한다고 인사팀과 임원진에 알렸다. 프로젝트를 완성하며 한 단계 성장한 모습에 윗선에서도 흔쾌히 승낙했다. 다시 밝게 웃는 표정을 보니 한동안 안심했다.
하지만, 연봉 약발은 오래가지 못했다. 신입을 가르치며 받는 스트레스와 스스로 원하는 꿈을 이루고자 하는 욕구는 S를 힘들게 했다. 연봉 조정을 했으니 그다음 솔루션은 연말 인센티브와 해외 워크숍이었다. 그 다음다음의 타협점은 맡은 프로젝트만 마무리하고 떠나길 바라였다… 시간은 그렇게 일 년 단위로 흘렀고 2022년 5월에 마침내 퇴사했다. 같은 해 7월, 나도 그 회사를 그만두었다.
S는 퇴사하고 잠깐의 휴식기를 거쳐 창업했다. 좋아하는 영역을 스스로 꾸려 나갈 욕구와 열정이 다시 차올랐다. 비록 5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그사이 잃어버린 눈부신 아우라가 되살아나는 중이다. 나 또한 전 직장과 같은 업계의 회사에 취직했다. 전 직장과 협력 파트너사지만, 이곳에는 나의 ‘친구’가 없다. 우린 온전하게 공적인 관계다.
이제 와서 돌이켜 보니 “친구끼리는 동업하는 거 아니다.”라는 말이 절반은 맞았다. 동업을 시작하고 승승장구하면 좋겠지만, 그 사이 조금이라도 트러블이 생기면 허심탄회하게 “친구” 관계로 얘기를 나눠야 했다. 어떤 게 고민이고 앞날은 어떤 계획을 세웠으며 언제나 응원하고 지지해 준다면 썩 나쁘지 않은 결과를 얻었을 것이다.
동료든 친구든 공사를 철저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었다. S가 힘들어할 때, 난 공적인 관계로 그녀를 타일렀고 사적인 조언은 별로 못 해준 게 미안했다.
해마다 퇴사할지 말지 고민해 봤던 경험자다. 5년 뒤, 10년 뒤 이루고자 하는 꿈이 무엇인지 방황했다. 수없이 그만두고 싶었던 마음을 스스로 위로하며 억눌렀다. 이곳이 아니란 걸 알면서 항상 이성적이라는 핑계로 생각하며 판단했다. 현실 앞에 무릎 꿇었다. 그게 옳은 방식이라 여기며 그 사고방식으로 S의 발목을 잡았다.
토끼였던 그녀를 곁에 묶어 두었다.
요즘 다양한 시도를 하며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추진 중인 S를 배우자가 거북이라 비유했다. 옳은 길을 걷고 있지만, 거북이걸음이라 느린 거라고. 시간이 필요할 거고 꾸준히 걷다 보면 종점에 다다를 거라 말했다. 차츰 본인의 방향을 찾아가고 첫 도미노를 쓰러뜨린 사업가로 거듭나고 있다. 조금 느리고 힘겹고 앞이 안 보여도 S는 분명 해낼 거라 믿는다.
자신이 가진 무기가 무엇인지 알고 캄캄했던 주변을 빛나는 세상으로 완성하리라 믿는다. 5년을 거쳐 진정 불편한 게 무엇인지 깨달았고 이루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명확하다. 인간관계를 다루는 노하우와 현실, 환상, 희망의 가치를 알고 승승장구할 날이 올 거라 믿는다.
그대가 걱정하는 일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고
그대가 바라는 일은 결국 이뤄지리라.
포토그래퍼: 이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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