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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솔 Mar 14. 2023

사랑하는 사람vs사랑 주는 사람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을 본 소감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최신 애니메이션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은 베를린 국제 영화제 때 790석의 티켓 매진 기록을 세웠다.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에 이어 최신작에 어떤 새로움과 희망의 메시지가 있을지 기대하며 영화관으로 향했다. (*스토일러 있음)


“이 근처에 폐허 없니? 문을 찾고 있어” 규슈의 한적한 마을에 살고 있는 소녀 ‘스즈메’는 문을 찾아 여행 중인 청년 ‘소타’를 만난다. 그의 뒤를 쫓아 산속 폐허에서 발견한 낡은 문. ‘스즈메’가 무언가에 이끌리듯 문을 열자 마을에 재난의 위기가 닥쳐오고 가문 대대로 문 너머의 재난을 봉인하는 ‘소타’를 도와 간신히 문을 닫는다. “닫아야만 하잖아요, 여기를!” 재난을 막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수수께끼의 고양이 ‘다이진’이 나타나 ‘소타’를 의자로 바꿔 버리고 일본 각지의 폐허에 재난을 부르는 문이 열리기 시작하자 ‘스즈메’는 의자가 된 ‘소타’와 함께 재난을 막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꿈이 아니었어.” 규슈, 시코쿠, 고베, 도쿄 재난을 막기 위해 일본 전역을 돌며 필사적으로 문을 닫아가던 중 어릴 적 고향에 닿은 ‘스즈메’는 잊고 있던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데…


내가 본 주인공은 스즈메나 소타가 아니었다

역동적인 로드무비형 스토리는 관중들의 지루함을 덜어주고 화려한 영상미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시그니처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용감한 소녀 스즈메와 신비한 능력을 지닌 소타는 남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재난을 막기 위해 협업하며 사건을 해결하는 와중에 로맨스와 유머 코드가 적절하게 녹여있다. 주인공 외에 스즈메의 이모(이와토 타마키), 소타의 친구(세리자와 토모야) 등 조연의 등장도 작품의 재미를 더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분석하고 싶은 캐릭터는 다이진이라 불리는 고양이다. 스즈메와 소타 앞에 처음 등장한 다이진은 풀이 죽고 앙상하게 마른 꾀죄죄한 모습이었다. 불쌍한 길고양이인 줄 알고 스즈메가 준비한 생선을 먹고 “우리 집 애가 될래?”라는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아 털에 윤기가 도는 말끔한 모습으로 바뀐다. 사랑받는 존재가 되고 삶의 희망을 보게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다이진은 자신의 정체를 알고 다시 요석으로 되돌릴 수도 있는 토지시인 소타를 의자로 변신시킨다. 영화는 이때부터 본격적인 스타트라 볼 수 있다.


스즈메와 소타는 이상한 능력을 갖춘 다이진을 잡으려고 규수에서 도쿄까지 좇아 가지만, 다이진은 얄미운 말을 하며 그들을 ‘방해’한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다이진이 그동안 재난을 억누르고 있던 요석 중의 하나였다는 것이다. 스즈메의 호기심에 자유를 얻은 다이진은 전국을 누비며 사람들의 환호와 사랑, 관심을 받는다.


그 순간 나의 부모님이 떠올랐다. 자녀는 물론 생활고에 눌려 청춘을 보냈던 그 사람들이 다이진이나 다름없었다. 지금은 앙상하고 비틀거리는 나이가 되었지만, 젊음을 되찾는다면 윤기가 도는 모습으로 거리를 종횡무진하지 않을까?



해피 엔딩 VS 새드 엔딩

소타가 요석으로 변하고 다이진을 대체하여 도쿄의 미미즈를 해결하자, 다이진은 이 작품에서 최대 빌런으로 남는다. 전부 얄미운 고양이 탓이라 생각하게 되고 도쿄의 지하 수로에 떨어진 스즈메는 자신이 다이진을 좋아할 이유 따위는 전혀 없다며 두 번 다시 나타나지 말라며 다이진을 내쫓는다. 다이진은 큰 충격을 받은 듯 삐쩍 마른 볼품없는 모습으로 돌아가 사라진다.


촉촉해진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다이진이 고양이가 아니라, 같은 인간이라면 스즈메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사실 다이진은 그들을 괴롭히는 존재가 아니라, 미미즈(재난)가 일어나는 뒷문의 위치를 안내해 주었다. 가끔은 얄미운 대사를 하거나 빈정거려도 스즈메를 만날 때마다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자세였다. 그는 스즈메를 진심으로 좋아한다.


그랬다. 영화 속의 주인공 스즈메는 양다리다.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잘생긴 소타와 폐허에서 발견한 신비로운 요석 형태의 다이진. 스즈메는 호기심이 많고 열정이 넘치는 인물이다. 다만, 아직 가치관이 명확하지 않은 미성년자다. 소타가 의자 형태로 요석이 되는 것과 뒷문을 열고 요석이었던 다이진을 막무가내로 뽑은 것. 결국 모든 사건의 시발점은 스즈메였다.


사건이 꼬이고 요석이 되어 몸이 굳어가는 순간도 소타는 자아가 없어 보인다. 반면, 따뜻한 한마디에 동요한 다이진은 사랑을 쟁취하고자 애교를 부리고 장애물(소타)을 처리하는 데 전념한다. 이 작품은 전형적인 로맨스물이었다. 소타가 요석이 되어 갇히게 되자 스즈메는 자신의 어릴 적 트라우마를 가두었던 최초의 뒷문을 찾아가게 되고 사다이진과 다이진의 도움을 받아 결국 소타를 구출하고 다이진을 원래 있던 곳으로 보낸다.


뒷문으로 나온 소타와 스즈메는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스즈메의 이모(이와토 타마키), 소타의 친구(세리자와 토모야)와 재회한다. 영화는 해피 엔딩으로 막을 내리지만, 울적한 기분이 가슴을 채우는 세드 엔딩처럼 느껴지는 건 나뿐일까? 만약 스즈메가 요석 상태였던 다이진을 뽑지 않았다면, 다이진도 변함없이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며 계속 지냈겠지. 잠시나마 현세대의 변화를 바라보며 자유를 만끽했던 시간이 다이진한테는 충분한 보상으로 남았을까?


영화의 결말은 소타가 스즈메와 재회하지만, 연인관계로 발전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요석이 되어 다시 뒷문을 관리하는 다이진도 스즈메와 다시 만날 날이 업을 거로 생각한다. 동행했던 남자친구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모른다고 했다. 글쎄. 감독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사랑”일까? “추억”일까? 아님, “환경문제”였을까?




이 글은 ‘나무위키’에 등록된 ‘다이진’ 인물 소개를 참고하여 작성하였음.

다이진 - 나무위키 (namu.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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