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변수의 출현
며칠 전 한 기업이 사회공헌 활동을 하기에 앞서 파트너 단체와 함께 현장 실사를 하는 자리에 함께 다녀왔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사업 평가를 맡아 실제 실사 및 전후조사를 어떻게 해서 정량적인 결과를 보내주는지 살펴보기 위함인데, 대상자 분들을 정량적인 자료가 아니라 실제로 만났다.
오전 중에 이동과 식사를 하고 몇 군데 실사에 동행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집은 오래 된 빌라에 볕이 들지 않는 집이었다. 창은 있었지만 반지하에다 건너 빌라와 1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방과 거실이 구분되지 않는 공간에 들어섰을 때 곰팡이 냄새와 제대로 말리지 못한 옷에서 나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도저히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 심각하게 밖으로 나가야 하는가를 고민했다.
하지만 함께 갔던 기업의 사회공헌 담당자와 파트너 단체 분들은 아무렇지 않게 필요한 질문을 하고 집안을 구석구석 살폈다.(물론 나도 티는 전혀 내지 않았지만, 내 생각일 뿐이다) 그러는 사이 고맙게도 예민했던 후각이 무뎌졌다. 동시에 충격에 휩싸였다.
모퉁이마다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문구들이 붙어 있고, 저주의 말들?도 적혀 있었다. 놀라운 것은 십 미터 내외 좁은 골목길에 3-4개가 붙어 있었다. 조금씩 길이 꺾이거나 건물들의 위치로 인해 발생한 사각에는 여지없이 붙어 있었다. 물론 이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크고 검은 비닐에 담긴 쓰레기가 덩그러니 빌라와 빌라 사이 길가 한복판에 버려져 있었다.
무뎌진 후각 뒤에서 날카롭게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 던져졌다.
기업들의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검증하고, 사회공헌 사업을 평가하고, 원조기관과의 파트너십을 확산하는 사업, 해외 사회공헌을 촉진하는 방안 마련하고 CSR 동향을 조사하고 있지만, 과연 나는 내 필드의 냄새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나의 경험치는 얼마나 될까?
실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냄새가 잊혀지지 않았다.
나는 어느새 글로벌 기업들의 혁신적인 CSR 활동, Fancy한 슬로건과 캠페인, 사회 변화를 촉매하는 사회공헌들을 보며 눈만 높아져서 여느 기업들이 많이들 하는, 혹은 기본적으로 하고 있는 사회공헌을 너무 가벼이 보고 있었다. 내가 말하고 다녔던 소위 좋은 사례에서 풍기는 냄새가 무엇인지 나는 몰랐다.
햇빛이 들지 않는, 방 구분도 없는 집. 나와도 옆 빌라와 채 1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다닥다닥한 골목 속 반지하에 있는 집에 살면 빨래는 어디에 널지? 지하에 통풍도 안되니 환풍기를 달고 제습기를 켜도 습기가 차니 눅눅한 냄새가 나겠지? 바로 건물 앞에 구석자리마다 쓰레기들이 버려지는데 여름엔 얼마나 더 냄새가 날까? 질문이 이어지고, 퍼즐이 조금 더 맞춰지고 실상이 구체적으로 그려졌다.
그 날 이후 '냄새'라는 변수가 머릿 속에 추가되었다. 올해 들어 기업에서 사회공헌이나 CSR하시는 분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이런 저런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같이 기획하는 자리들이 늘고 있는데 중요한 프레임을 하나 얻게 되어 기쁘다. 그야말로 대오각성. 무릎을 탁!
무엇보다 좀 더 겸손하고 조심해야겠다. 더 관찰하고 더 들어야겠다.
;경험하여 아는 것이 일천한 자보다 위험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더 많이 생각하고 아이디어를 내야겠다.
;많은 것을 고려하되, 방정식의 차수는 최대한 낮추자.
냄새가 향기가 되고, 공공행복이 실현되기를 여전히 원하고 노력하겠다.
;부족하지만 실현되어야 개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