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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기연 Jan 07. 2024

디자인 프로세스에 대한 단상-3

ep 03. 디자인의 영역


지금 하는 것이 디자인인가? 아닌가? 이 문제는 누구나 생각하지만 누구도 확답하기에 애매한 부분이다. 왜 이렇게 애매한 것이 많을까. 칼로 무 자르듯이 자를 수 없는 것이 디자인의 기본적 속성이라면 디자인 영역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나름의 답을 해야 한다. 크게 두 가지 영역으로 나눠서 생각해 보자. 하나는 디자인 정의에 따른 디자인 업무 영역과 디자인 분류 영역이 그것이다. 명확한 영역의 경계는 업무 진행상 여러 가지 곤란한 상황에 대해 대비할 명분이 된다. 이후 디자인 프로세스와도 관련 있으니 이번 기회에 나름의 기준을 정해두자. 필자의 기준은 이렇다.          



디자인 업무 영역

디자인 업무영역에 대한 질문은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어디서부터 디자인 업무의 출발이고, 어디가 정확한 디자인 업무의 마지막인가? 일의 시작과 끝이 애매하다는 것은 정만 곤란한 일들이 발생할 여지를 둔다. 디자인 업무는 크게 두 종류의 성격으로 나눌 수 있다.     


1. 인하우스 디자인 업무

2. 외주 디자인 업무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인하우스 디자인 업무는 회사에 소속된 디자이너가 수행한다. 인하우스 디자이너는 회사에 소속된 회사원이다. 큰 규모의 회사에서는 디자인 업무만을 담당하면 되지만, 대부분 회사에서는 디자인 업무도 하는 회사원일 확률이 높다.

 신규 제품디자인 개발을 한다고 하자. 내부에 디자인 업무도 하는 직원이 있으니, 이 신규 개발 프로젝트의 담당은 정해졌다. 이 회사가 중소기업이라고 가정하면 해당 제품의 시장조사부터 양산을 위한 품질육성, 즉 출시 전까지의 과정을 ‘개발’이라고 칭할 것이다. 디자인은 이 중 한 과정이겠지만, 보통은 디자인을 독립적인 과정보다는 개발의 일부분으로 보는 경향이 크다. 디자인의 정의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세상에 없던 것을 계획대로 아름답게 만들어내는 것     


 대상이 세상에 없던 것인가? 그렇다. 신규로 개발하는 제품이다. 계획이 있는가? 있다. 스타일링, 개발, 제조, 품질, 사양 등의 구체적인 RFP가 있다. 아름다운가? 그렇다. 그렇게 진행할 예정이다. 사용자인 구매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도록 아름다운 브랜드와 제품이 되도록 할 것이다. 이 기준으로 본다면 이것은 디자인이다.

 다만, 이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는 앞과 뒤에 몇몇 단계가 존재한다. 전 과정을 개발이라고 할 때, 앞의 과정은 시장조사, 경쟁자 분석, 고객인터뷰, 제품기획(원가, 품질, 마케팅, 유지보수 등) 등이 있다. 그리고, 디자인 이후에는 구조설계, 금형 개발, 시사출, 조립, 품질육성이 있다. 제품디자인과는 별개로 브랜드 개발, 포장디자인이 있을 수 있고 개발 후 홍보, 영업, 마케팅 활동이 있다. 또한, 출시된 제품의 반응과 유지보수, 애프터서비스도 필요하다. 더욱 세세하게는 생산에 따른 재고, 원자재, 원가절감, 배송, 보관도 있다. 그야말로, 제품을 하나 생산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이 모든 과정이 디자인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러나, 회사에 소속된 인하우스 디자이너는 디자인도 하는 회사원이다. 그래서, 주요한 디자인 활동을 포함한 제품개발의 전 과정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최소한 디자인에 대한 기구설계(이것도 애매한 표현이기는 하다)와 시제품 품질육성까지를 넓은 의미의 디자인 활동이라고 본다.     


 디자인은 요리와 같다. 요리도 좁은 의미에서는 음식을 만드는 과정으로만 볼 수 있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식사 자리에 대한 기획부터 재료구매, 손질, 본격적인 요리, 식사, 정리까지를 포함할 수 있다. 디자인을 행위 관점에서 본다면 스타일링을 중심으로 볼 수 있지만, 요리처럼 스타일링을 위한 전, 후 과정이 상황에 맞게 정리된다. 대부분 디자인 프로세스의 첫 출발에 시장조사가 포함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으로도 보인다.     


  또 하나의 사례는 외주 디자인의 경우다. 이 케이스가 디자인의 영역을 명확히 해야 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왜냐하면 외주 디자이너는 인하우스 소속이 아니기에 더욱더 명확한 업무의 시작과 끝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너무 인정주의다. 업무의 영역에 있어서는 보다 더 냉철해질 필요가 있다. 그것이 오히려 깔끔한 업무 마무리를 위해서 더욱 도움이 된다.

 외주 디자인 개발의 업무 범위는 계약서를 기준으로 한다. 제품디자인 개발의 경우 통상 시장조사에서 목업까지가 대부분이다. 목업은 구현 정도에 따라 비용이 천차만별인 경우가 많아서 대부분 별도 계약을 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목업을 디자인 견적에 포함하기도 하는 서비스 정신 때문에 용역 종료 시점에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 목업을 외주용역으로 처리한다는 기준에서 그렇다.

외주 디자인 개발을 계약서대로 준수한다면 서로 문제가 없겠으나, 많은 경우 계약서 외의 항목을 당연하다는 듯이 별도로 요구하기도 한다. 이럴 때 디자인 업무 범위는 늘어지게 된다. 디자인에 대한 정의가 세상에 없던 것을 계획대로 아름답게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할 때, 이것을 광의의 의미로 시장출시 전 품질육성까지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책임의 확장은 인하우스 디자인일 때는 가능하다. 외주 용역일 경우에는 반드시 업무 외적 영역이므로 별도로 계약해야 하지만 권장하지 않는다. 디자인은 계획에 맞게 하는 것이다. 한정된 자원 내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아름답게 구현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해당 디자인을 실체화할 수 있는 기술과 자금이 요구될 때 가능하다. 쉽게 말하면 애플의 뛰어난 디자인을 제공해도 생산기술이나 자금, 설비 등이 없으면 아예 못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프로젝트 초기에 클라이언트와 레벨을 맞추는 과정이 반드시 요구된다. 이는 동양적 사고와 서양적 사고의 차이에서 오는 것인데, 이후 더블다이아몬드 프로세스의 각 단계를 설정하는 챕터의 공감하기(Empathy)에서보다 자세히 설명하겠다.     


  아무튼, 디자인 용역의 소속에 따라 디자인의 광역적 범위는 달라진다. 디자인의 일차적 정의에 따르는 범위는 그 소속 여부에 상관없이 시장조사에서 스타일링과 설계, 목업까지다. 제품디자인 외 다른 디자인 분야에서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목업을 프로토타입으로 대치하면 된다. 그 외 광역적 범위는 양산 전까지이다.

 공통으로 대부분 디자인의 출발은 시장조사다. 시장조사에 따른 분석은 데이터로 나타나는데 이것을 기준으로 정량적인 분석과 정성적 분석이 이루어지고, 구체적인 기준은 RFP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후 스타일링을 통해 조형미를 부여하고, 이를 빠른 시간내에시간내에 프로토타입으로 만든 후, 양산을 위한 설계과정을 거쳐 시사출을 통해 품질육성을 한다. 이것이 통상적인 디자인의 업무 영역이다.

 디자인 업무영역을 벗어난 부분은 디자이너의 선택사항이다. 프로젝트의 사안에 따라, 디자이너는 디자인 외적인 업무영역도 진행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외주 디자인 용역의 사례다. 인하우스 디자이너는 특히, 중소기업 규모에서는 모든 것을 다 해야 한다. 그만큼 프로세스 전반에 걸친 시각과 디자인 이후의 상황도 주지하고 있어야 한다. 개념을 더욱 명확히 잡아둬야 할 확실한 필요가 있다.     


  이런 두 가지 경우 디자이너는 어느 단계부터 투입되어야 할까? 경험 많은 디자이너라면 아마 제품개발 초기부터 참여하기를 바랄 것이다. 그 프로젝트의 형태가 어떤 것이든 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런 사례를 찾기 쉽지 않다. 대부분 클라이언트나 사내 결정권자에 의해 기본적인 RFP가 설정된 경우가 많다. 그에 대한 검토가 디자인의 시각에서 우선되어야 한다. 이때 큰 영향력을 가진 결정권자의 참여는 디자인에 투입될 예산을 집행하고 전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아닐 경우도 많다는 말이다. 특히, 제품디자인의 경우에는 큰 예산이 들어가는 금형이 필수적이다. 경험이 많지 않은 클라이언트의 경우 의욕이 앞선 나머지 현실적이지 못한 요구를 하는 경우도 흔하다. 경험 많은 디자이너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 제품은 디자인만 좋다고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한다. 개발하고 만드는 그 어려운 과정을 거쳐도, 시장에서의 경쟁이라는 더욱 치열한 경쟁이 남아있다. 그것이 아무리 싸구려 제품이든 고급 사치품이든 마찬가지다. 대충해서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이런 복잡미묘한 디자인을 할 때 업무영역을 명확하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려운 것 없다. 기본적인 디자인 업무영역은 명확하다. 다시 한번 상기해 보자. 디자인은 세상에 없던 것을 계획에 맞게 아름답게 만들어내는 것이다. 

  즉, 디자인의 출발은 조금씩 다를 수 있겠으나 시장조사 활동부터다. 디자인의 마무리는 계획에 맞게 디자인이 됐는지를 확인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 확인하는 단계는 실체화된 디자인을 두고 해야 한다. 그것도 품질육성이 끝나서 시장에 출격을 기다리는 단계가 되어야 한다. 제품디자인이라면 워킹 목업이 될 것이다. 다른 디자인 분야도 제품디자인의 워킹 목업이다. 여기서 디자인은 일단락된다. 평가 기준은 RFP다. 이후 프로토타입에서 양산을 위한 프로토타입까지는 품질육성의 시간이다. 이 과정은 디자인이 아니다. 다만, 필요에 따라 디자인 외적 영역으로 용역에 추가할 수는 있다. 정리해 보자.     


디자인의 시장은 시장조사고마무리는 워킹 목업이다.“          


                         

디자인 분류 영역

이것도 디자인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는 분야가 많다. 비교적 근래 회자되기 시작한 서비스디자인이 대표적으로 그렇다. 디자인의 분야를 아주 넓게 해석한다는 것은 장단점을 가진다. 장점은 디자이너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고, 단점은 디자인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시장이 붕괴하는 것이다.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유행의 주기가 짧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디자인이 중요한 산업의 위치에서 멀어질 위험한 시기가 많았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산업이 마찬가지고 현재도 대표적인 AI 분야가 그렇다.

 어떤 산업영역은 이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전략으로 아예 진입장벽을 높이기도 하고. 어떤 영역에서는 이를 완전히 무장해제하기도 했다. 디자인 산업 역시도 선택해야 했고, 후자의 전략을 따랐다. 그 결과 디자인 분야는 거의 무한대로 확장되었다. 이 전략이 우리나라에서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는 주목된다.

 왜, 이것이 디자인인가 하는 질문은 너무나 현실적이다. 그만큼 넓어진 디자인 영역이라 주장(?)하는 의견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선, 법적 분류부터 살펴보자. 

  산업디자인진흥법 제2에는 말하는 산업디자인은 제품디자인, 포장디자인, 환경디자인, 시각디자인, 서비스디자인의 5가지다. 그런데, 실제 우리가 현장에서 경험하는 디자인의 종류는 훨씬 다양하고 복잡하다. 이는 디자인이 살아남기 위해 전통적인 디자인 분야 외에 아주 세부적인 분야까지 별도의 이름을 붙이면서 시작되었다. 이것이 우리 질문의 핵심이다. 이런 것까지 디자인이라 할 수 있는가? 반대로 전통적인 디자인 분야는 구분이 명확할까? 안타깝게도 전통적인 디자인 분야도 그 구분이 모호해졌다.

 제품디자인은 예전 같으면 금형을 통한 대량생산 제품만을 의미했지만 요즘은 디지털화된 서비스를 통칭하기도 한다. 프로덕트 디자인이라는 표현으로 구분 지으려는 흐름도 보인다. 과거 공업디자인, 산업디자인, 제품디자인으로 구분 아닌 구분을 했었던 것이 다시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산업디자인진흥법에서 정의한 대로 ‘산업디자인’은 모든 디자인 분야를 아우르는 표현이다. 산업 분야의 디자인이 아닌 디자인의 존재 비중은 아주 미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포장디자인은 과거 시각디자인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포장디자인이 주로 종이에 인쇄하는 방식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포장 인쇄에는 여러 가지 시각디자인 요소가 들어가는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포장디자인은 제품의 수만큼이나 존재한다. 또한, 디자인 대상이 아닌 수많은 상품에도 그 수만큼이나 존재한다. 아마, 산업디자인 분야에서 종류로만 본다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그리고, 디자인 산업 초창기에는 디자인을 제품개발 마지막 단계에서 하는 꾸미기용 포장으로 인식했다. 그래서 현재 한국디자인진흥원(KIDP)은 1970년 한국디자인포장센터에서 출발했다. 

  시각디자인 역시 확실한 정의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예전에는 제품디자인의 반대개념으로 인식하는 사례가 많았다. 손에 만져지지 않는 개념인 아이덴티티를 위주의 영역이 주를 이루고, 근래에는 경험디자인 분야(UI/X)와 편집디자인, 웹, 모바일 등 신규 영역이 존재한다. 그러나, 어떤 디자인 분야든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라는 점에서는 시각디자인이 전체디자인 분야를 대표할 수도 있다. 

  환경디자인 역시 모호하다. 환경을 이루는 요소는 엄청나게 많다. 주로 야외(outdoor)에서 행해지는 디자인 활동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물리적으로는 건축, 조경, 거리 등 공공 영역도 포함하며 근래에는 도시계획 등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대상으로는 도시와 같은 넓은 개념에서 전통시장, 마을, 거주지 등으로 특정화된 장소를 지칭하고, 도시재생, 시장 활성화 같은 영역에서도 활용된다. 

  서비스디자인은 디자인 영역 모호화의 주요 원인이다. 나쁜 개념이 아니라,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 주어진 환경을 잘 활용한다면 디자인 분야는 더욱 넓어지고 전문화 될 수 있다. 다만, 이 글을 쓰는 목적인 디자인론, 디자인방법론, 디자인방법, 프로세스의 구분이 안되고, 각종 이름의 디자인 영역이 등장하게 되면서 디자인 춘추전국시대가 열리게 된 출발점이 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경험, 보다 구체적으로는 행정기관의 복지정책, 기업의 비즈니스모델, 특정 경험기반 상품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호모 사피엔스의 경험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것을 대상으로 하는 분야에 ‘디자인’을 모두 붙인다면 서비스디자인의 영역은 무한대다. 당연히, 구분이 어렵고 분별되기 어렵다. 


  전통적인 디자인 분야 특히 법제화된 디자인 영역서도 구분은 모호하다. 여전히 기술이 위주지만, 발명의 시대에서 경험의 시대가 되었다. 이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디자인은 분류의 모호함을 생존전략으로 삼았다. 죽지 않고 살아남아야 했고, 그 생존전략을 선택한 디자인은 이제 결과를 목전에 두고 있다. 그 위험한 선택은 전통적인 분류 방식만으로는 더 이상 생존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진입장벽을 낮추고, 여러 가지 형태의 디자인을 탄생시켰다.

살을 내어주었으나 살아남아서 후세에 존재를 남길 것이다. 어쨌든 디자인 외형은 커졌다. 이는 특정한 누구의 선택이 아니다. 이제 몫은 우리의 것이다. 디자인의 이 새로운 생존전략을 그냥 모호함으로만 두면 살아남기 어렵다. 이 전략을 가슴과 머리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 디자인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구분, 그리고, 단계별 해야 할 일과, 하면 좋은 일을 알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디자인방법론, 디자인 방법, 디자인프로세스를 다시 한번 비교하면서 개념을 명확히 하고, 더블다이아몬드 프로세스의 각 단계를 꼼꼼히 들여다보면서 생각을 마무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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