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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기연 Jan 09. 2024

디자인 프로세스에 대한 단상-5

ep 05. 존재에 대한 원초적 질문

세상에 필요 없는 존재는 없다. 필요의 크기가 대상에 따라 조금씩 다를 뿐이다. 세상의 모든 반복되는 일에는 공통되는 요소가 존재한다. 그걸 단계별로 정리한 것에 이름을 붙이고, 앞뒤 순서를 배열한다. 공통되는 것은 모으고, 개별적인 것은 묶었다. 그리고, 이름을 붙인다. 이것이 디자인 방법론 중에서 시간에 따라 배열한 것은 디자인 프로세스라고 부른다. 디자인을 배우는 학생, 디자인 경험이 부족한 루키 디자이너, 전체적 시선을 갖고 싶은 중견 디자이너 등 저마다 목적으로써 디자인 프로세스는 기능한다.     


      

라면을 끓이는 법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라면은 모두 몇 종류일까 궁금했다. 인공지능 bing에 물어보니 약 400종류라고 한다. 현재도 계속 신제품이 나오고 있어서 정확한 숫자를 알 수 없다고 한다. 실로 놀라운 숫자다. 라면을 예로 든 것은 디자인프로세스에 대한 생각을 마무리하면서 비유를 들기 위해서다.

 라면은 그다지 어려운 요리가 아니다. 라면 끓이기는 디자인방법론과 디자인 프로세스에 비할 수 있다. 400여 종류의 라면이 있지만 기본적인 요리법은 물을 끓인 후 라면을 익히는 것이다. 아주 단순한 것에서 출발한다. 베스트셀러인 진라면이나 신라면 같은 국물 있는 라면을 끓이는 요리법을 보자. 우선 물을 약 500ml 정도 넣고 끓인 후 면과 수프를 넣어서 약 5분간 더 끓인다. 끝. 이게 일반적인 요리법이다. 뒷면에 있는 요리법이 가장 맛있게 끓이는 방법이지만, 기호에 따라서 계란을 풀거나 파를 넣거나 김치를 넣는 나름의 방법도 존재한다.     


 라면을 끓이는 방법론(Methodology)은 물을 끓이고 라면을 넣어서 조리하는 것이다. 국물 있는 특정 라면을 끓이는 요리법(Method)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 개인적으로 일반적인 요리 순서를 따르지 않는다. 물을 올리고 끓기 전에 수프를 넣고, 이후에 면을 바로 넣는다. 아주 작은 단계에서 순서를 바꿨지만, 대세 요리법(Methodology)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만약 그 행위에 찬물 라면 끓이기라고 이름을 붙인다면, 그건 수많은 방법(Method)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약간 변화된 프로세스(Process)이기도 하다. 계란 역시 터트리지 않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풀어서 넣는 것을 선호하기도 한다. 언제 넣느냐 하는 시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꼬들꼬들한 면발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푹 익힌 면발을 좋아하기도 한다.


 사람에 따라, 기호에 따라, 순서에 따라 수많은 라면 끓이는 방법이 존재한다. 마음만 먹는다면 무궁무진한 방법이 존재할 수 있다. 여기에 국물 없는 라면류는 큰 요리법(Methodology)은 동일하지만, 방법(Method)은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컵라면이라고 하는 아주 독립적인 부류도 있다. 면의 종류에 따른 분류도 있기, 수프에 따른 종류도 다양하다. 또한, 중량, 제조사, 유통 형태, 브랜드 등 수많은 종류의 라면이 있고, 개별 라면마다 정해진 조리법과 응용이 가능한 무수히 많은 조리법이 존재한다. 그러나, 결국 인스턴트 라면을 먹기 위한 요리법(Methodology)은 단순하다. 물을 끓이고, 라면과 수프를 넣어 일정 시간 끓여서 먹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통합적인 방법론(Methodology)이다.      


  디자인 역시 방법론은 단순하다. 세상에 없던 것을 계획에 따라 아름답게 만들어내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우리에게 친숙한 더블다이아몬드를 다시 한번 유심히 보자. 이게 과연 디자인만의 방법론, 디자인만의 프로세스인가? 아니다. 이건 모든 창의적 문제해결을 위한 방식에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다. 앞서 살폈듯이 방법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사고를 하는 방식인 확장(Divergent Thinking)과 수렴(Convergent Thinking)으로 보기에 디자인방법론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른 단계별 관점에서 본다면 발견하기(Discover), 정의하기(Define), 발전하기(Develop), 전달하기(Deliver)의 순서로 볼 수 있기에 디자인 방법이나 디자인프로세스도 된다. 헛갈리면 안 된다. 서비스디자인계에서 먼저 공표했다고 이것이 디자인만의 프로세스라고 오해하면 안 된다. 생각해 보면 라면의 종류만큼이나 많은 디자인 분야가 존재한다. 제품, 포장, 시각, 환경,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서비스까지. 디자인이라는 이름이 붙은 많은 수의 디자인이 있고, 그 모든 방법에는 공통적인 단계가 있어서 우리는 디자인 프로세스로 치환할 수 있다.     

 디자인 프로세스는 어찌 보면 편한 존재다. 반복되는 성격의 디자인 과정에서 초심자나 베테랑에게 서로 다른 관점에서 필요성을 어필한다. 경험이 부족한 디자이너에게는 단계별 해야 할 일과 순서를 알려주고, 경험이 많은 디자이너에게는 전체적인 디자인 프로젝트의 흐름을 계획하고 점검할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 디자인 프로세스의 순기능은 탁월하다. 그러나, 프로세스를 맹신하거나 문자 그대로만 받아들이는 태도는 아주 곤란하다. 더욱이 방법론과 방법은 철저히 구분되어야 한다.


 이 중에서 디자인 프로젝트의 가이드가 되는 디자인 프로세스는 어디까지나 유동적으로 대해야 한다. 변동 없는 방법론(Methodology)은 바뀌지 않는다. 마치 라면에 수프를 넣는 시점을 바꿀 수 있듯이 디자인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세부 사항은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수많은 디자인 프로세스의 범람 속에서 기준을 잃지 않으려면 디자인 방법론과 방법에 대한 확실한 자기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디자인 프로세스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탄력적으로 프로젝트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 단계를 줄이거나 늘이는 것은 물론이고, 데이터 수집은 프로젝트 끝까지 계속 수행해야 한다. 디자인의 대상이 손에 만져지는 자동차 그릴에서 눈에 보이지 않은 사용자 경험 등 그야말로 폭이 엄청나게 넓기 때문이다. 디자인 프로젝트는 수단처럼 사용해야 한다. 마치 내비게이션처럼 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기도 하고, 현재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기도 한다.      


     

튜닝의 끝은 순정

큰 의미가 없이 이름 짓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만들어내는 수많은 디자인 프로세스 때문에 누군가는 혼란스러워한다. 마치 개별 회사나 유명 디자이너 개인의 상품처럼 결국 같은 개념을 무수히 쏟아내고, 대중은 따라가기에 바쁘다.

 방법론과 방법(프로세스)의 구분 없이 혼용해서 쓰는 사람들 때문에 상호 간 의사소통이 힘들고 의미 없는 진입장벽이 생기기도 한다. 제 아무리 멋들어진 요리법을 개발해서 이름 붙인다고 해도 결국은 라면을 먹기 위한 근본적인 요리법은 하나다. 특정한 단어를 조어해서 쓰면서 진입장벽을 치는 행위는 무책임하다.

 튜닝의 끝은 돌고 돌아 기본인 순정으로 회귀한다. 세상 대부분의 일은 반복적이다. 디자인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모든 것은 디자인을 잘하기 위함이다. 그것도 한정된 자원으로 디자인 해야 하는 기본 조건에서 효율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디자인의 역할이 본선으로 가기 위한 예선 통과의 파트너라고 본다. 예선을 통과해야 본선으로 가서 클라이언트가 목적한 바를 겨룰 수 있다. 기술이나 능력이 있으나 표현에 서툴러서 진정한 경쟁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본선에서는 본질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승부해야 한다. 물론, 그 무대에서도 디자인이 함께 한다면 더욱 큰 경쟁력 확보가 가능하다.

 디자인프로세스는 이 먼 레이스 중 중요한 부분을 담당한다. 그 중요한 역할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수단으로 디자인 프로세스를 대하기 바란다.


 새로운 디자인 프로세스나 방법론이 나오면 필요 이상으로 맹신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이 순서대로, 이 방식대로 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디자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아예 디자인이라고 하지 않는 극단주의자들도 있다. 방법론 이상주의자들이다. 그러나, 말 그대로 프로세스는 프로세스일 뿐이다. 핵심을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디자이너의 넓고 현명한 시선이 필요하다.

 완전무결한 방법론, 결점 없는 프로세스는 논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디자인 프로젝트를 위안 가이드와 내비게이터만으로도 디자인 프로세스의 역할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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