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력은 조금만 뒤로
이 말은 언뜻 생각하기에 적극적이고 좋은 태도다.
그러나, 풍차에 달려드는 돈 키호테의 무모한 실행력이라면, 이를 조건 없이 응원하기는 어렵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특별히 뭔가를 잘하고 싶다면 이 과감한 실행력은 잠시 뒤로 미루는 것도 좋을 것이다. 당연히 일상 속 사소한 결정이라면 적극적인 실행력은 대부분 환영받는다.
이 논리를 조금 중요한 일에 대입해 보자.
대부분 영역에는 잘하기 위한 방법이 있다. 이를 단순히 요령 정도로 폄하해서는 안된다. 공부나 운동, 일 등 많은 영역에 적용된다. 간단한 요리에도 여러 레시피가 존재한다. 이러한 방법은 보편적 방법과 개별적 방법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런 방법을 알고 익히고 나면 그다음이 성실과 실행이다. 그래야 빠르게 잘할 수 있다. 우직한 성실함만이 일을 잘하기 위한 거의 유일한 방법이던 시대는 지났다.
80~90년대 교육을 살펴보자.
이때는 근면성실이 중요한 덕목이었다. 개근상이 우수상 못지않은 대우도 받았다. 성적이 다소 나빠도, 책상에 오래 앉아있는 학생은 성실함을 칭찬받았다. 지금 관점에서 본다면 방법론 없이 용감한 돈 키호테였다. 디자인 교육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선 그림을 사진처럼 잘 그려야 했다. 학교뿐만 아니라 기업에서도 그랬다. 나는 1996년에 대우자동차에 디자이너로 입사했다. 내 기억으로 신입사원 시절의 첫 3달 정도는 오로지 선만 그으면서 보냈었다. 2절지에 5mm 간격으로 매일 가로줄을 그었다. 출근 시간은 오전 6시 30분이고, 퇴근시간은 저녁 9시였으니까 식사시간을 제외하고는 12시간 이상을 줄만 그었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근무여건이었다. 출근하면서 꺼낸 새 볼펜은 퇴근 무렵이 되면 안 나왔다. 본격적으로 스케치렌더링을 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거의 6개월이 흐른 뒤였다. 그 사이에 가로선은 세로선으로, 원으로, 타원으로 변했을 뿐이었다.
중년이라면 아마 홍콩 무술영화의 큰 흐름을 기억할 것이다.
부모가 악당에게 죽임을 당하고 난 뒤, 주인공은 힘들게 무림고수 사부를 만나거나 무술비법이 그려진 책을 통해 실력을 연마한다. 무림고수 사부를 만나서 무술을 익히는 장면에서는 항상 초반에 물 긷기나 중심 잡기, 무거운 돌 옮기기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은 빨리 무술을 익혀서 복수를 해야 하는데, 사부는 통상 무사태평이다. 별다른 이유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영화가 중반 이후가 되면 본격적으로 무술을 전수해 준다. 이후 그 스승도 악당에게 패하거나 죽는다. 분노한 주인공은 악당에게 덤비지만 초반에는 밀린다. 이후 어떤 계기로 각성한 주인공은 전수받은 무술을 사용하면서 화려하게 복수를 하는데, 이때 힘들게 익힌 체력이나 무술자세가 실전에 드러나면서 스승의 깊은(?) 뜻을 알게 된다. 내 머릿속에는 이런 주인공은 성룡이었다.
현재도 도제식 교육이 있다.
특성화고의 마이스터 교육이 그것인데, 이는 스승이 제자에게 가르침을 주는 교육방식이다. 도제식 교육은 특정 분야에서는 아주 효과적이다. 대신, 예전 홍콩영화와는 다르게 이런 사전 훈련은 왜 하며, 이후 어떤 역량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체계적으로 나와 있다. 가르치는 스승이나 배우는 제자가 모두 이를 잘 알고 있는 상태에서 교육이 진행된다. 이는 당연히 효율적인 교육효과로 이어진다. 국가직무능력표준 NCS는 총 24개 분야에서 직무와 관련된 체계를 만들었다.
성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좋은 요소다.
또한, 강한 실행력은 어디에서나 환영받다. 다만,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는 약간의 순서가 중요하다. 최소한 실행 전에 해당 분야의 방법론과 지식, 정보가 선행되어야 한다. 어느 단계에서 실행이 시작될 것인지를 정하면 된다. 이 말은 어떻게 하면 빠르고 효율적으로 잘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보편적인 방법을 알고, 자신에게 맞는 개별적인 방법을 맞춤형으로 갖춘다면 강력한 실행력은 날개를 달 것이다. 그리고, 치열한 이 사회에서 원하는 성공을 거머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