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의무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교육기본법 제8조(의무교육)를 보면 제1항. 의무교육은 6년의 초등교육과 3년의 중등교육으로 한다고 되어 있고, 제2항은 모든 국민은 제1항에 따른 의무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되어있다. 무상교육이 고등학교로 확대된 것은 2021년이다. 문제는 교육의 내용이다.
초·중·고의 목표는 전인교육이다.
하지만, 실제는 현실과는 좀 다르다. 특히, 고등학교는 특성화고등을 제외하고는 대학진학을 위한 입시학원 성격이라 할 수 있다. 초등학교부터 하는 선행교육은 이후 좋은 대학을 위한 빌드업이 되어버렸다. 꽃 같은 청소년 시절은 입시라는 단어의 다른 표현인지 오래다.
대학은 어떨까.
예전에는 대학을 진리의 상아탑이라 불렀다. 이는 세상을 떠나 오로지 학문에만 전념할 수 있는 장소라는 의미다. 고등학교가 입시학원이 되었듯, 대학은 직업훈련기관이 되었다. 문송이란 표현은 공대보다 불리한 전공이라는 의미다. 죄송하다는 것은 아마 지금까지 키워준 부모에게 하는 표현일 것이다. 대학의 전공학과는 순수학문보다 응용학문이 우대받는다. 나아가 취업이 잘되는 신규 학과에는 학생들이 몰려들고, 이는 높은 경쟁률로 나타난다. 이제 학과의 구분은 졸업 후 직업(장) 선택 가이드 정도가 되었다. 문송을 외치는 학과는 너 나 할 것 없이 일찌감치 공무원이나 공기업 시험에 매달린다.
변화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다윈의 자연선택설처럼 변화를 통해 환경에 적응한 종은 끝내 살아남았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빠르게 바뀌는 트렌드와 기술, 사회변화에 적응한 대학은 살아남아 발전하고, 그렇지 못한 곳은 도태되거나 위기상태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자의적 선택이다. 그러나, 변화를 통해 지금까지 살아남은 대학의 선택은 유효했다. 예전과 다르게 대학의 위상은 변했다. 전공학과는 시대에 맞게 개명까지 하면서 악착같이 살아남았다. 새로 신설된 학과는 그에 맞는 생존전략으로 학생을 유치하고 있다. 이제는 순수한 학문연구를 위해 대학진학을 하는 학생은 찾아보기 어렵다. 취업에 유리한 학과가 중요한 전공선택 기준이 되었다. 교수도 마찬가지다. 대학도서관이 유일하게 고급정보가 있는 곳이고, 교수가 교원 이상으로 우대받았던 시기가 있었다. 그 시기 교수는 학자를 넘어 지도자, 인생의 멘토가 되었다. 지금도 최고의 교육기관에서 연구와 교육을 병행하지만, 그 위상은 예전과는 달라졌다. 세상의 고급정보는 대학도서관에서 스마트폰과 클라우드로 공유되고, 교육 콘텐츠는 유튜브에 모두 들어있다. 이런 시대의 변화는 자연스럽지만 아주 빠르게 이어지고 있다.
대학의 커리큘럼 역시 바뀌고 있다.
순수한 학문연구에서 전문 직업인 양성이 주요한 교육목표와 인재상이 되었다. 학과의 평판은 연구결과가 아니라 졸업생의 취업률이 되었다. 이에 대해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대학에서는 순수인문학과 자연과학은 발 붙일 수 없는 것일까. 이 몫은 이제 대학원으로 옮겨간 듯하다. 그러나, 여전히 어떤 대학은 석, 박사 과정도 학부의 연장선으로 운영된다. 안타까운 일이다.
지식, 기술, 태도는 모든 교육기관의 공통목적이다.
학자가 되길 원하는 사람이 아니면 누구나 사회로 나와야 한다. 그리고, 사회구성원으로 제 몫을 하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야 한다. 애매한 스탠스는 그 누구의 만족도 이끌어내기 어렵다. 작금의 교육시장은 예전과는 다른 사회환경에 적응하려 부단히 애쓰고 있다.
차라리 교육제를 다시 개편하면 어떨까.
거의 20년에 가까운 청년시기를 막연한 교육으로 채운다는 것은 사회적 낭비다. 의무교육인 중학교까지는 전 국민이 공통으로 전인교육을 받는다. 이후 고등학교는 기본 3년제로 하되, 옵션을 2년을 둔다. 3학년 과정을 마친 학생 중 직업기술 교육을 원하는 학생은 추가로 2년을 더 할 수 있다. 4학년과 5학년을 거치면서 졸업을 하는 학생과 추가로 2년을 심화과정으로 다닐 수 있다. 정말 필요한 사람만 대학을 가는 것이다. 4년제 학부과정에도 자유전공이 있다. 고등학교 4학년과 5학년을 이 과정으로 운영하면 어떨까. 많은 학부생들이 적성에 안 맞는 대학을 다니면서 청춘을 방황하는 것을 많이 목도했다. 여러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겠지만.
혁신의 모든 원형은 황당함이다.
다이슨의 날개 없는 선풍기도 초기 아이디어는 이랬다. 기존 질서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발상을 하는 것은 아름다운 사람의 특성이다. 아름다움은 자유로운 자기스러움을 말한다. 대학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했지만, 여전히 대학의 교육과정은 사회인이 되기 위한 아주 중요한 과정이다. 그 교육을 담당하는 교수 역시, 이론과 실전을 겸비하고 청춘들의 미래를 일선에서 고민하는 중요한 자리다. 대학이 예전과는 달리 진리의 상아탑이 더 이상 아닐 수 있어도, 진리가 학문이 아닌 다른 곳에 있을 수 있다.
아직 그 역할은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