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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너머의 세상

by 송기연

안경은 참 신기하다.

눈앞을 가로막는 실재하는 물건이 있는데, 오히려 그걸 통해 더 잘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너무 억지스러운 발상인가? 안경의 역사는 13세기 이탈리아에서 볼록 렌즈를 사용해 노안 교정의 목적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볼록렌즈의 초점 성질을 이용해 노화한 시력을 교정하겠다는 발상은 이후 인류사 전체에 큰 도움을 주는 의미 있는 출발이었다. 이는 다양한 요인으로 저하된 시력을 보정하는 기능적 역할을 넘어, 인간의 삶 자체를 편리하고 안전하게 개선해 왔다.


개인적으로는 안경을 쓴 지 40년이 넘었다.

처음 안경을 쓰기 시작한 초등학교 5학년 무렵에는 안경 쓴 친구가 많지 않았다. 안경 쓴 모습이 어린 마음에 스스로 폼난다고도 생각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시력의 변화, 파손, 유행 등 다양한 이유로 안경을 바꿔왔다. 이 글을 적으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내 몸과 함께 시간을 보낸 물건이 안경 외에 또 있었나 싶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기까지 거의 대부분 시간을 안경을 낀 채 생활했다. 신체 중 가장 약한 안구 바로 앞에서 지금까지 내 시력을 보정해 준 고마운 존재였던 것이다.





인간은 5대 감각기관이 있다.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이 그것인데, 그중 가장 큰 역할은 시각의 몫이다. 연구에 따르면 인간이 받아들이는 외부정보의 약 80% 이상이 시각을 통해 처리된다고 한다. 우리 눈은 한 번에 여러 정보를 받아들인다.

물건의 형태, 색은 물론 풍경과 여러 상황이 눈을 통해 인지된다. 진화적 관점에서도 원시시대 선조들은 시각을 통해 포식자와 사냥감을 구분하고, 위험을 빨리 인지함으로써 생명을 보존하거나 생존을 위한 먹이를 찾을 수 있었다. 이는 단순한 기능이 아니다. 우리가 눈으로 직접 본다고 생각하는 시각은 여러 복잡한 단계와 과정을 통해 인지된다. 우선 빛이 눈의 각막과 수정체를 통해 들어오면 이후 망막, 광수용체, 간상체와 원뿔체를 거쳐 전기신호로 변환되고, 이는 다시 시신경으로 이어진다. 다시 시상과 대뇌피질, 시각피질로 전달되고, 이후 전두엽에 연결되어 인간의 행동과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그 정보는 다시 해마와 연계되어 시각정보가 기억과 감정으로 연결되는 정말 복잡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즉, 우리 눈에 비친 세상은 약 1.3kg에 해당하는 인간의 뇌가 어두운 머리 안에서 만들어내는 전기적 신호에 의한 가상의 세상이라는 말이다.


게다가 세상은 빛과 착시, 뇌의 해석에 의해 조금씩 다르게 인지된다.

빛은 굴절, 반사, 간섭, 회절, 분산등을 통해 다양한 왜곡현상을 만든다. 이는 여러 착시현상을 불러일으켜 우리 뇌가 이를 적극적으로 재해석하고 다시 보완하는 과정을 거치게 한다. 한마디로 단순히 '본다'라는 것은 엄청한 활동이다. 그리고, 안경은 이 복잡한 활동을 가장 효율적으로 보완해 주는 직접적인 역할을 한다. 철학에서도 경험론, 인식론, 현상학, 실존주의 등 다양한 관점에서 우리가 눈으로 보는 세상을 설명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세상을 동일하게 경험할 수 없는 가능성이 높을 수 있다고 생각이다.




안경은 완전 맞춤형이다.

교정을 위한 대부분의 안경은 나에게 딱 맞는 맞춤형이다. 안경 선진국인 대한민국의 안경제조기술은 세계적이다. 다양한 방법으로 측정된 현재 시력을 기반으로 교정 목표시력을 정확하게 구현해 낸다. 내 몸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옷을 입으면 좋은 기분이 들듯, 내 시력에 딱 맞는 안경을 쓰면 세상이 상쾌해 보인다. 새로 교정한 안경을 처음 쓸 때 약간의 어지러움은 곧 적응된다. 안경은 또한 패션아이템이기도 하다. 다양한 디자인의 안경테는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무궁무진한 선택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셀룰로이드를 대체하는 아세테이트가 발명되면서 더욱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의 제품이 나오고 있다. 실용성과 미적 충족이 동시에 가능해졌다. 대량 생산으로 가격도 저렴해지면서 안경의 대중화가 이루어졌다. 또한 기술의 발전으로 얼굴에 꼭 맞는 안경이 스캐닝, 3D 프린팅으로 가능해졌다.


얼굴에서 안경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안경은 한 사람의 이미지를 크게 결정하는 아이템이다. 안경 쓴 사람에 대한 인상과 기억에서 안경은 큰 역할을 수행한다. 나 역시 50대 중반으로 향하면서 나를 상징하는 안경의 필요성을 느꼈다. 대량 생산제품이 아닌 나만의 안경이 갖고 싶었다. 부산 센텀에 위치한 안경수제 공방을 알게 되면서 그 소망이 이루어졌다. 세계적인 디자인 거장 디터람스의 안경을 갖고 싶었던 나는 넷플릭스 다큐화면 캡처를 통해 그의 안경모 양을 컴퓨터로 드로잉 했다. 이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약 한 달 동안 내 손으로 깎고 다듬어서 나만의 안경을 가지게 되었다.



안경 너머의 세상이 있다.

그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또렷하고 명확한 모양을 갖고 있다. 나의 오랜 친구인 안경은 나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게 가능하도록 도와준다. 잠시 안경을 벗고, 브런치 화면을 바라봤다. 커서가 깜빡이는 것은 희미하게 보이지만, 써놓은 글자 주위는 몽글거린다. 그리고, 다시 안경을 끼고 바라본다. 내가 바라본 대상은 그대로지만 안경을 쓰고 안 쓰고의 차이는 극명하다. 덕분에 나는 어렵지 않게 대상을 인지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첨단 AI기술로 세상의 모든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안경을 만들 수 있을까?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많은 사람들의 삶은 더 풍요로워질까, 아니면 반대로 더 불행해질까? 어쩌면, 그런 안경은 이미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다만, 그건 우리가 알고 있는 안경의 형태가 아니라 책의 이름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책이라는 안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그 속에서 지식도 얻고, 통찰과 깨어남의 세상을 경험한다. 겉으로 보이는 현상을 넘어, 내면까지 선명하게 보이는 또 다른 안경이지 싶다.


오랜 친구인 눈앞의 안경과 함께 내면의 시력도 함께 높여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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