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은 예술과 다르다.
예술과 디자인의 차이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는 보는 관점에 따라 천차만별로 나뉘기도 하고, 그 기준 역시 모호하다. 예술이 세상과 완전히 격리되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디자인 역시 예술적 영감 없이 모든 과정을 자판기에서 물건 뽑는 진행되지 않는다. 이 두 영역은 서로 닮은 듯 다르다.
디자인은 현실세계와 밀접하게 관계하면서 존재한다.
디자인이라는 말은 편리하다. 수많은 분야를 붙이기만 하면 그럴듯한 표현이 된다. 산업분야가 아니어도 말이 된다. 인생디자인, 관계디자인 등 뭔가를 계획하고 만드는 모든 분야는 디자인의 대상이 된다. 이렇게 보면, 디자인의 영역은 거의 무한대로 넓어진다. 그렇지만, 디자인의 기본영역은 산업분야다. 디자인이라는 단어 앞에는 '산업'이 생략되어 있다. 산업디자인이라는 표현은 기업, 자본주의, 기획, 판매, 이익 등 돈 버는 일과 밀착되어 있다는 말을 우회한 것이다. 즉, 산업디자인은 경제, 자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말이다.
자본주의를 선택한 사회에서는 돈의 흐름이 중요하다.
한정된 전체 자본이 어디로 흐르는지 알아야 한다. 돈의 움직임은 자본시장을 순환시킨다. 자본시장을 순환시키는 돈의 흐름은 경제현상으로 나타난다.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금리, 외환, 주식 등 투자 상황은 현상으로 나타나고, 이 현상의 이면에는 사회의 니즈가 있다. 디자이너들은 여기에서 통찰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래야 디자인의 기회가 생기고, 이것이 생존으로 이어진다. 가장 먼저 관심이 있어야 한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시장의 요구 → ② 가치(자본)의 이동 → ③ 디자인 기회 발생
즉, 경제흐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금리, 환율, 주가를 통해 그 사회 경기의 변화를 알 수 있다. 이것은 곧 산업의 흐름으로 이어지고, 시장의 요구가 된다. 디자인의 기회도 여기서 출발한다. 지난 1월 20일 미국의 제47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취임식이 있었다. 이것을 기점으로 전 세계는 본격적인 큰 변화가 맞이한다. 후보시절 그의 공약과 연설을 통해 우주항공, 인공지능(자율주행), 로봇, 조선, 에너지, 관세변화 등을 가늠할 수 있었다. 취임 첫날 서명한 행정명령 46개는 변화의 첫출발이다. 일론 머스크와의 관계를 통해 인공지능, 로봇, 자율주행 이슈는 산업디자인과 직접적 연관이 있다. 암호화폐, 보편관세, 이민정책 등은 미국 내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줄 수 있고, 방위산업과 에너지 산업은 친환경과 전력생산 등에 명확한 시그널을 준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경기변화는 국내 경기에도 영향을 미친다. 많은 이슈에서 디자인 기회를 포착하거나 변화를 감지해야 한다.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2025는 단순한 가전박람회가 아니다. 2025년 1월 6일 오후 6시 30분에 시작한 NVIDIA 젠슨황의 기조연설은 전 세계가 지켜봤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세계가 움직였다. Cosmos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물리엔진과 Physical AI는 디자인 산업에 엄청난 영감을 주었다. 이후 산업디자인의 새로운 역할을 기대할만한 재료였다.
디자인은 혼자만의 예술이 아니다.
항상 협업대상이 필요하다. 시대를 선도할 수 없어도, 최소한 빠르게 바뀌는 시대변화에는 발맞춰야 한다. 그것이 디자인의 역할이고, 누구도 그것을 대신할 수 없다. 생각해 보자. 지난 1930년대에는 폭발적인 산업디자인 수요가 있었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라디오, 세탁기, 텔레비전 등은 누군가 새로운 형태를 부여해야 했다. 저마다 다양한 형태의 제품이 쏟아져 나왔고, 그 수만큼 디자이너들이 필요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부족의 시대는 풍요의 시대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서 디자인은 상향 표준화되었다. 산업디자이너의 역할은 근래 그 설 곳을 잃어가고 있다. 제조업의 키는 중국으로 옮겨간 지 오래다. 그러나, 세상은 반복된다. 인공지능 AI의 발달은 소프트웨어 영역을 넘어, 오프라인으로 나오고 있다. 똑똑해진 소프트웨어는 진짜 세상의 기본원리인 물리법칙을 깨닫고 있다. 중력, 힘, 가속도, 질량을 구현하는 로봇이 생산되는 현실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제 다시 산업디자이너가 필요한 시대가 왔는지 모르겠다. 인공지능 AI로 구현되는 물리적 제품이나 로봇 등에 새로운 개념을 불어넣어야 한다. 다만, 이것은 기술과 변화의 트렌드를 완벽히 이해한 디자이너만이 해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 돌아가는 흐름과 변화를 알아야 하는데, 그것의 바로미터가 경제다.
인공지능은 디자인의 친구인가, 적인가?
이제 이 정도 수준의 문제가 아닌 세상이 되었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패하지 않는다. 한때 인공지능 AI가 대체할 수 없는 직업군에 제품디자이너가 1위에 오르는 일이 있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행복했다. 그러나, 그 예측은 오래지 않아 보기 좋게 깨졌다. 지금은 다양한 디자인 AI의 시대다. 개발된 AI만 잘 활용해도 수준급의 디자인 시안을 뽑아낼 수 있다.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물리적인 현실 세계에서 구현가능한 디자인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것 역시 인공지능 AI가 디자인할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흐름의 파도 위에 올라타려면 전체를 보는 눈이 필요하다. 그래야, 발 빠르게 바뀌는 시대에서 디자이너로 살아남을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교양은 경제흐름에서 찾아야 한다. 이제 다시 형태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해야 할 대상이 줄을 서고 있는 시대가 되었다.
다시, 산업디자이너의 역할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기회를 놓칠 것인가, 잡을 것인가?